- 평화는 마음공부에 바탕 한다. -

평화는 온 인류의 간절한 염원이다. 그러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들까지도 평화를 내세우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인심을 휘어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에 완전 평화가 유지되었던 날 즉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전쟁이 없었던 날을 추려보면 인류의 오천년 역사 중에 단 몇 해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면 이 평화에 대한 인류의 염원과 현실의 간격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토록 평화를 바라는 인류가 그토록 평화를 유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해답은 여러 가지로 나올 것이다. 전제군주의 침략 근성 「이데올로기」의 상충 경제 질서의 경색 등등 시대와 환경 따라 여러 가지 이유가 나올 수 있겠고 간혹은 몇몇 지배자의 지배욕 단기 격만 등까지도 원인으로 등장시킬지 모른다. 그러나 평화를 유지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우리의 심중에 도사리고 있다고 보는 것은 잘못일까. 인심(人心)이 천심(天心)이라는 말과는 같이 아무리 제국주의를 신봉하는 위정자도 모든 백성의 마음속에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신념이 공고할 때에는 감히 침략 전쟁을 도발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평화는 쌍무적인 것이다. 국제 사회에서 자기희생이란 민족 또는 국민을 희생시키는 것을 의미하므로 그것을 미덕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일방 국가의 침략을 타방 국가의 감수로 종결짓는 평화를 우리는 찬양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평화는 어디까지나 쌍무적으로 수호되어야 할 일이다. 7· 4 남북 공동 성명이 이 평화를 민족 앞에 약속하였다. 세계적으로 「무드」가 조성되어가는 평화의 구가(謳歌) 속에서 침략의 독아가 작용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서인지 또는 위장 속에 제2의 책략을 꾀하는지는 알 수 없다손 치더라도 그들이 우선 형식상 평화 수호의 약속을 했으니 다행할 뿐 아니라 남북 적십자 회담도 순조로운 전진이 있고 국제사회의 여론도 남북공동 성명을 환영하고 있으니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진정한 평화는 이러한 정치 활동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보다 사람의 마음에 의한 마음의 평화를 이루는 데서 얻어지는 것이다. 인심이란 장기의 전란 후에는 반드시 염전(厭戰)에서 오는 평화 갈구를 하게 되고 장기간의 평화가 지속되면 서서히 전란을 기대 또는 수용하는 변덕스런 위약성을 가졌다고 볼 수 없을까. 구두선처럼 원형이정의 원리 원칙을 평화 애호를 외치다가도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파괴에서 맛볼 쾌감추구의 본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평화는 이러한 변덕을 용납 않을 마음의 정리 신념의 구책이 절실한 것이다. 가마솥에서 끊는 물을 식히려거든 위에서 찬물도 붓고 아궁이에서 타는 불도 꺼야 하는 것이다. 찬물이 정치 활동이라면 타는 불을 끄는 것은 근본을 다스리는 마음의 공부라 하겠다. 모든 인류의 마음속에서 전쟁 요인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변함없는 평화는 존재할 수 없다. 역사가 순환한다고 하여 전란의 악순환을 언제까지나 방치할 수는 없는 것이니 우리 종교인은 평화 건설에 선구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남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전래적 습성에 젖어있는 인류로 하여금 눈을 뜨게 하고 원망 속에서 감사할 수 있는 요소를 발견하는 지혜와 미워할 일 가운데에서 사랑할 요소를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한다면 평화는 그 속에 있다고 하겠다. 가정이 그렇게 되면 가정의 평화가 국가 사회가 그렇게 되면 국가 사회가 국제간에 그렇게 되면 세계 평화가 보장될 것이다. 다음으로 평화의 소원이다. 경건한 마음을 모아 기원할 때 그것은 반사적으로 자신에 대한 다짐이 된다. 하나로 집결되는 정성과 다짐이 천지신명의 감응을 불러일으키도록 위정자도 지도층도 아니 온 인류가 조석으로 기도하며 우리의 마음속에서부터 평화를 염원하는 세계가 언제 이루어질지는 몰라도 먼저 우리 자신이 솔선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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