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부산회관」이 지난 4월 8일 그 신축회관 현장에서 종법사님 임석하여 성대한 준공 낙성식을 가졌다. 부산회관은 종전의 부산교당 자리인 신창동 소재의 2백 평 대지에 지하 1층과 지상 6층, 연건평 1천여 평이 되는 웅장한 현대식 건물로 세워졌다.
부산교구는 현재 산하에 37개의 교당을 두고 있다. 그 밖에도 부산 시내에는 부산 보화당(한의원)과 동래 수양원 등 두 기관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부산 땅에 처음으로 우리 원불교 교화가 정착한 것은 원기 19년(1934) 5월의 일이었다. 당시 「부민정」에 임시로 출장소가 설치되었고(초대교무 김영신 법사) 동년 9월에 부민정의 출장소가 다시 정식 「지부」로 승격되면서 이 지역 교도들의 정중한 초청으로 역사적인 「대종사 초도 행차」를 맞게 되었으니, 일정 치하의 암흑기와 해방 이후의 소용돌이 속을 헤쳐 나서 이제 금년으로 어언 46년, 그러니까 거의 반세기에 가까운 연륜을 헤아리게 된다.
돌이켜보자면, 오늘날 「원불교 부산회관」이 조성되기까지에는 지나간 46년의 연륜을 새겨온 그 발자취가 증명하듯이 이 지역 재가· 출가 형제들의 끊임없는 「혈심」과 「원력」이 한결 같이 그 공고한 기반이 되어 주고 자본이 되어주었다.
원기 30년(1945) 8월 민족의 해방을 맞아 우리 교단은 해외 구환 전재 동포를 위한 구호사업을 서울 부산 전주 이리 등지에서 대대적으로 전개(교도 동원 연일수· 1만 3천여 일/ 구호 받은 인원수 8십여 만 명), 건국 초기의 사회사업에 참여하여 실로 그 기여한 바가 컸다.
지금 새 회관이 들어서게 된 대지는 이전의 경남지부(부산교당 전신)의 자리로서 당시 전재동포구호의 공로를 인정하여 부산시 당국으로부터 불하를 받은 것이며, 경남교당 발족 이래의 발전적 계기에서 이곳은 사실상 부산교구 교화의 중심이 돼 온 것이다.
더욱 부산지방 교도는 원기 56년 고 항타원 이경순 종사(62년 부산교구장 63년 11월 중앙총부에서 순교(殉敎))의 경남교당 교감 부임과 함께 점진적으로 활착하기에 이르렀으니 부산회관의 꿈과 구상, 그 원력이 또한 이 시절에서부터 저변 확대되어 마침내 그 뜻을 하나로 합하고 그 힘을 한 자지로 뭉쳐서 교단 사상 길이 빛나는 성업을 성취하게 되었다 한다. 어쨌든 부산회관은 이 지역 재가· 출가 동지의 끊임없는 혈심과 원력의 총화이며, 부산교구 교화의 상징이 될 것이다.
이에 우리 교단은 부산회관 준공 낙성에 즈음하여 만공의 축복을 보내며 아울러 이 성업을 위하여 정신 육신 물질을 기꺼이 던져 봉공하여 주신 재가· 출가 여러 형제자매의 노고에 심심한 치하를 드린다.
부산회관은 부산교구의 사무처를 위시하여 대소의 법화장과 강의실 회의실 수양실 생활관 청년 학생 어린이회실 등을 두루 갖춘 종합시설로서 작년 3월에 기공하여 동년 12월에 완공을 보았으며 공사에 소요된 총자금만도 4억 6천여 만 원이라 하다. 이것은 오늘날 물량적 가치로 따진다 하더라도 과소평가할 수 없는 것이며, 뿐만이 아니라 그 이면을 통하여 속속들이 스며든 정신적 숨결과 의지 그 저력은 실로 물량적 가치기준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것이 있으리라.
공부와 사업을 이뤄내는데 반드시 무슨 정신적인 여건이나 물질적인 밑천이 갖추어져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빈 마음 빈손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순리가 아닌가 한다. 그렇게 하게 하는 배경과 원동력을 스스로 발견하고 그 동기를 내면적으로 깨닫는 것이다. 대종사께서는 「세상의 모든 사물이 작은 데로부터 커진 것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하셨다. 그리고 「이소성대는 천리의 원칙」이라고 일러주셨다.
부산회관은 이러한 대종사의 교훈을 충분히 실증하여 주고도 남을 것이다. 빈 마음과 빈손으로부터 시작한 그 원리를 저마다 그 행동으로부터 익혀가야 하다. 이제 「원불교 부산회관」은 신앙의 상징으로서 수행의 도량으로서 진리와 평화를 실현하는 인류 공동 이상의 등불이 되어주기를 다 함께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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