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자유민주주의와 민족 국가 확충의 문제, 경제성장과 산업사회의 팽창, 기술혁명, 상술적 대중문화의 범람, 공해의 가중 현상, 통일안보의 강화와 우리들은 다양하고 특이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하고 특이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그 자체의 의미와 가치 그 실체를 올바르게 인식해야 한다는 것, 나아가서는 이 시대가 여기에 정면으로 내세우고 있는 민족적 세계적 정시의 공동 주제가 과연 무엇인가를 파악하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즈음 우리들의 주변에서는 현재의 상황이나 미래의 꿈이 매우 불투명하고 불확실하다는 이야기들이 나돌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나, 내외의 정세가 불투명하고 불확실하다고 해서 주저하거나 당황할 것은 조금도 없다고 본다. 현재나 미래에 대하여 의구심을 일으켜 불신한다는 것은 새 시대를 열어 나가는 이념과 좌표 그 자체가 모호하고 희박하다는 증좌를 보여주는 소극저기 타성에 지나지 않는다. 더더구나 지금 우리들은 우리 겨레의 공동 이상 공동 과제를 여기에 붙들어 세우고 그 역사적 의지를 활성화하여 이에 겨레의 온갖 사랑과 힘을 한데 모아야 할 때이다. 그 언제 그 어디에서나 속속들이 비춰주며 두루 소통하는 그러한 슬기와 진퇴에도 생사에도 걸림이 없이 진리와 바른 뜻을 행하는 그러한 용기만이 새 시대를 열어나가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제 새 시대를 여는 전야의 질풍과 노도는 안팎으로 거세어져 가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각 분야가 한결 같이 흔들리며 차츰 수련대기 시작하고 있다.
요즈음의 학원사태 노사쟁의는 그 한 단면이다. 민주화 근대화 안정 성장 발전의 문제에 있어서도 그 주종관계와 우선순위에 대한 논란이 심상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일련이 현상들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를 어떻게 극복 처결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 직면한 문제 해결의 당위라고는 하지만, 그러기 때문에 먼저 딛고 넘어가야 할 관문이 있다. 어느 것이 우선적이고 어느 것이 부수적이라는 식의 가치판단은 반드시 옳고 적합하다고만은 볼 수가 없다. 민주발전이나 경제성장 안보태세의 강회가 동시성 상관성으로 얽힌 역사의 기틀인지라 서로가 중요하고 저마다 상보적인 위치에서 유기적으로 도움이 되어야 하며 그 어느 것을 소홀히 하거나 그 어느 한쪽에만 치중하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렇게 되고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 바탕에서부터 그 일 그 사체(事體)를 근원적으로 파악하여 형평을 도모할 때 그것은 궁극적으로 한 길이라는 사실이다. 그 하나 되는 뜻을 깨닫고서 만이 그 일을 할 수가 있다. 더욱이 민주주의는 상호존중과 이해와 협동을 통하여 균형을 이루는 인간정신이지 생물적인 경쟁과 쟁취로써 얻는 그러한 수단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래서 그것은 흑백과 양극으로 갈라져 팽팽히 맞서 싸워 이기고 지는 데에서 무슨 결판이 나는 것도 아니다. 이제 우리들은 서로가 한 발자욱을 물러서서 생각하고 자제하고 참회할 줄도 알아야 한다. 서로가 양보하고 화합하고 다가서주고 넘어서고 관용하고 조화하는 데에서 분명히 한 길은 열릴 것이다. 이것이 대승의 길이며, 새 시대를 열어나가는 도덕적 순서가 아닌가 한다.
특히 민주화 자율화의 문제에 있어서도, 가령 어느 특정인의 의도나 각자의 이해관계에서 좌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제 그것은 진리의 차원에서 혹은 종교적으로 혹은 교육적으로 인격화하고 생활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도덕적 명제인 것을 자각해야 한다. 나와 민주주의 사회와 민주주의 나라와 민주주의 세계와 민주주의의 상호관련성에서 오로지 갈라질 수 없는 하나 되는 생명 공동체를 찾고서야 비로소 우리들은 민주주의의 근원적인 뜻을 알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 그것은 인류 평화의 산 증인으로서 이제 구김 없는 새 시대의 장을 열어야 한다.
원불교신문
webmaster@wo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