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35주년을 맞는다. 그러니까 햇수로 치자면 36년이니 이는 저 지나간 왜정 36년의 암흑기와 맞먹는 세월이기도 하다. 보편적으로 한 사람의 나이가 서른다섯이라면 당당한 장년으로서 원대한 그 이상과 더불어 양양한 전도가 열리리가 기대하는데, 이른바 자유해방으로 비롯하여 어느덧 청년기를 넘어서가고 있는 이 나라의 실상은 어떠한가? 언제나 제 얼굴 제 모습을 확인하고 제 마음을 제대로 돌이켜 본다는 것은 아닐 수 없다. 광복의 의미 또한 5천 만 우리 겨레가 반만 년의 역사적 주체성과 한 생명의 공동체의식을 저마다 스스로 재인식하고 나라의 긍지와 민족의 이상을 불러일으켜 세워놓는데 그 참된 가치와 보람이 있지 않은가 한다.
1945년 8· 15의 해방은 한 말로 말하여 망국민의 신세를 면했다는 벅찬 감격의 소용돌이 속을 헤어나지를 못했다. 이것은 물론 자연 발생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그때의 이 겨레의 벅찬 기쁨은 새 역사의 전기를 반만 년 역사의 주체성 회복을 위한 신생의 기회로 삼아 이를 적용하지 못한 채(자주독립과 연결시키지를 못하고) 국토분단이라는 비극을 빚어낸 꼴이 되고야 말았다. 그래서 8· 15의 광복은 말이 광복이지 해방감에 들뜬 민중의 일시적인 감격에 그쳐 버렸고 그 대신 타의에 의한 국토 분단과 민족 분열의 또 하나의 암흑사가 그 어둔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 첫 장이 되고야 말았으니 진실로 약소민족의 비야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통절하게 느끼게 된 셈이 되었다.
이제 35년이라는 짧지 않은 연륜을 헤아리게 되는 국토 분단과 민족 분열의 현실, 그 비극의 역사 이 마당에서 우리들은 진정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바로 우리 민족사의 주제요 본론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 민족의 생명의 작업이라 할 수 있는 통일의지가 해를 거듭함에 따라서 도리어 약화 내지 망각되어가고 있지 않나하는 것이다. 이게 국토의 통일과 아울러 대 민족 단합의 문제는 추상적 당위의 논리나 감상적인 데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이것은 말하자면 생명의 회복과 다름없는 차원에서 제기되는 절실한 오천 만 이 겨레의 궁극적인 원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러한 온 겨레의 저 밑바닥에 깔려있는 원력을 들으려 하지 아니하고 민중의 평화적 통일의지를 가까스로 가로막는 어떠한 형태의 권모술수도 결코 이 한 길을 그르치지 못한다는 것이며 반드시 이 나라 남북분단의 비역사를 잇는 것으로 그 통일의 실체가 확연히 구현된다는 것을 이에 분명히 말해두고 싶다.
35년에 걸친 저 북한 땅의 일이야 여기에서 새삼 얘기할 거리조차 없다. 다만 그 어느 때 그 어디에서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평화의 정착 없이 통일을 성취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안으로 전쟁의 위협이나 정치적 악순환이 부질없이 되풀이되는 한 대립과 분열만이 격화될 뿐 퇴폐와 멸망을 자초하는 도리밖에 더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이 해방 35주년의 발자취가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교훈이 아닌가 한다. 평화와 통일은 그 어디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곧 민중 그 자체가 평화와 통일의 상징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민족의 대단합은 먼저 화합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화합의 바탕에서 평화가 탄생되고 평화의 정초에서 통일이 이뤄지는 것은 순리이다.
정산종사 「건국론」의 일단을 인거하여 광복 35주년의 참 뜻을 되새겨보고자 한다.
『………… 건국은 단결로써 토대를 삼고 단결은 우리의 심지가 명랑함으로써 이룩되며, 명랑은 각자의 가슴 속에 갊아 있는 장벽을 타파함으로써 얻게 되나니, 그 장벽이란 각자의 주의에 편착 하고 중도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주로 조화하는 정신이 없는 것이요, 각자의 명예와 아상에 사로잡혀 저편 존중하는 마음을 갖지 못하는 것이요, 불같은 정권 야욕에 끌리어 대의정론을 무시하는 것이요, 시기와 투쟁을 일으키며 간교한 수간으로써 대중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이요, 일의 본말을 알지 못하고 한편이 충동에 끌려서 공정한 비판력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요, ………… 단결의 책임을 남에게 미루고 각자의 마음에는 반성이 없는 것이니, 우리가 이 모든 장벽만 타파한다면 단결은 자연히 될 것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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