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총부의 66년도 새해 예산안이 지난 12일 예산 위원회의에서 밝혀졌다. 그간 예산위원회에 의하여 짜여진 예산안은 22일의 교정위원회와 23일의 중앙교의회 본회의 등 양대 회의에 상정, 심의 의결을 거쳐 확정된다.
이번 세워진 새해 중앙총부의 대체적인 규모의 예산액은 약 3억 5천만 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액면으로 따지자면 물론, 이만한 예산약이 적다고만은 볼 수 없다.
그러나 예산이라는 것은 단지 화폐 가치상의 문제가 아니다. 한 나라면 나라, 한 단체면 단체, 한 종교교단이면 종교교단의 저마다 상응한 살림살이의 규모와 내용 등  그 총체적인 가치의 반영이라 할 때, 3억 몇 천 규모의 새해 중앙총부 예산은 요즈음의 인플레적(경제) 감각으로도 그러하고, 중앙총부 자체의 현실적 삶의 지속성 문제에 있어서나 교단사적 발전 양상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가위 전반적인 활성화를 가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도대체 예산이라 하는 것이 만사만리의 근본문제를 좌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또 천사만사의 성패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그럴만한 객관적인 요인의 부작용에 대하여서는 그 누구도 도외시하고 살아갈 수가 없다. 더구나 영육쌍전의 활동에 있어서 예산의 힘은 그 객체적 조화를 담당하는 요소가 된다는 엄연한 사실 또한 아울러 간과하지 못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예산문제는 그 삶의 지혜와 원동력을 동시에 일체적으로 집약 예시하여 주는 최선의 가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안으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중앙총부의 예산은 과연 어디에서 창출되느냐, 물론 그만한 세입원이 없을 수 없다. 그만한 세입원을 길어내어서 최선을 다하여 짜낸 것이 총부 예산이라 할 수 있겠는데, 해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어찌하여 총부의 예산은 언제나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제자리걸음이냐 하는 문제이다. 3억 규모의 산출고라는 것은 사실은 누진적인 인플레의 수준이 작용한 것이지 내용상의 확충과는 다른 것이다. 세입원이 고정적이라는 것, 물론 종교 단체가 은행이나 물질 생산업체처럼 돈을 벌어야 하고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 아닌 이상 우물에서 생수가 솟듯 그런 식으로 마구 돈을 물 쓰듯 쓸 수가 있도록 하는 수입원을 개발해내자는 것은 진정 아닐지라도 개벽의 새 시대 주세 종교로서 제생의세의 과업, 그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과연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 교단의 경제적 기반의 확보는 객관적으로 그 정당성이 인정되는 것이다. 또 당연히 그 일을 해내야 하고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고정적인 세입원이라는 것이, 일별하자면 영농, 교금, 특별, 기타 등등 수입으로 나타난 항목이데, 이것은 말하자면 우리 교단 창립 이래 농경시대의 전근대적 유산을 그대로 오늘날까지 물려받고 있는 셈이 된다. 세입 자체가 이렇듯 옅고 불확정적인 만큼, 그 개체적인 예산의 줄기들이 고루 뻗어 줄기차고 울창하여져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하는 나무를 바라보는 것처럼이나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총무· 교화· 교육· 공익· 재무· 훈련· 문화 등의 각 부서가 원불교의 중앙집권적인 행정을 담당하고 있는 종교 행정 관료집단이 아니라면 자리나 지키고 고식적으로 사무 체계나 정리하면서 안주해보라는 식의 예산 배려는 물론 지양되었을 줄 알지만, 아주 근소하고 미미한 것이래도 좋으니 이제는 세상을 위하여 무언가를 주지 않고는 못 배긴다는 적극적인 배경에서 모든 예산이 되어져야 하고, 그것은 교화· 교육· 자선· 문화를 통하여, 서로가 유기적으로 융섭 하고 봉공하며 베풀어주는 구원의 기틀이 되도록 예산의 힘은 그 깊은 밑바탕 되어야 하겠다.
이제 생각하면 한 마디로 말해서 청빈한 예산을 놓고 온갖 좋은 일은 다하라고 이런 저런 감언이설을 하는 것은 분수에 벗어나는 것인 줄 안다. 아만 한 가지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는 아마도 2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논의되어온 「중앙총부의 유지대책」이 그동안의 예산상에는 어느 정도나 반영되어왔느냐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여러 방면에서 연구를 거듭하여 왔고 무척이나 노력도 하여온 것으로 알고 있지만 미해결의 현안으로 남아있다. 근원적인 문제의 해결 없이 임시방편만으로는 항구적인 대책이 될 수가 없다. 그리고 이것은 언제까지나 현안문제로만 남겨놓을 수도 없다. 눈부시게 움직이고 발전하는 현실에 대비하여 보다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활력과 기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될 때이다. 물론 교단 경제 당국의 고충을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이 일은 경제 당국만의 과업이 아니라 전 교단적인 숙제라 할 수 있느니만큼 모두가 책임을 느끼고 한 가지씩이라도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여 해결해 나가도록 하여야 한다. 이소성대와 근검절약, 일심합력과 사무여한의 바탕 위에 마련된 초창기의 신용저축조합운동이나 개척운동(방언공사) 새 생활 봉공운동의 기본정신을 여기에 새롭게 돌이켜서 오늘날 세계적인 경제 난국을 헤쳐 나가는 슬기와 지침을 삼음은 물론, 정당하고 합리적인 경제관을 통하여 중앙총부를 구심점으로 하는 새로운 재무구조가 이루어져 나날이 새로워지고 발전하는 교단이기를 기원한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