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도 총회가 지난 11월 22일과 23일 양일간에 걸쳐 개최되었으며 24일의 수위단 회의를 마지막으로 일단 막을 내린 셈이다. 금년 추계 교무훈련의 해제(31일)와 함께 막이 열린 총회는 27일의 교정위원회의 와 그 다음날인 중앙교의회· 그 밖에 교화· 육영· 법은· 후생 등 각종 사업회의 연도회의가 잇달아서, 자못 바른 일정을 치루기도 하였다. 일 년에 일정한 기간을 정하여 한 번 갖는 회의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다사다난한 의제를 내어 걸고 시간적으로 분주할 수밖에 없는 가운데에서도 모두가 대체적으로 신중을 가하였다 할 수 있다.
어떤 회의의 성격이 중요한 것이라고 해서 그 회의 자체가 반드시 복잡하다거나 지루한 것이라고 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도리어 복잡하고 지루한 것이라도 그 내용을 원만하게 수용하고 종합하고 합리적으로 간추리고 정리하고, 그리고 뜻 있게 접약하고 승화시켜서 문제의 핵심과 그 지향성이 두루 소통하여 헌거롭게 풀려나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작업이 형식화하고 기계화해서 문제 자체가 획일적으로 처리되거나 요식행위로써 끝내버리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들이 모이는 각종 회의가 「원불교적인 공사 정신」을 주축으로 한 종교회의라는 입장에서 저마다 스스로 조화와 질서를 이루는 주체가 되어주고, 뿐만 아니라 신앙과 수행, 봉공과 구원을 동시에 수행해 나가는 공통적 유기체로서 오로지 화합과 중지를 기울여 사체를 밝게 인식하고 사물을 바르게 향도하여 이 교단과 세계가 다 같이 향상하여야 한다는데 궁극적인 주안이 있으니만큼, 물론 우리들의 회의의 성격은 저 집단적 이기주의의 구조적 합리주의와는 그 차원이 사뭇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즈음의 원불교의 각종회의는 차원이 높은 요식행위로 나아가고 있는 느낌이라고 솔직하게 토로하는 이가 있다. 이것은 분명히 합리적인 전통 속에만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하는 일종의 종교적 매너리즘으로서 지금 어디엔가 모르게 이 교단이 굳어져가고 있다는 증거를 말해주는 것으로서 좀 반성해 볼 필요가 없지 않다. 너무나도 간추리고 간추려서 평이 간명을 위주하다 보면 오히려 핵심을 잃고 할 일을 망각하기 쉬어 안일무사에 떨어지는 수가 허다하다. 이것이 종교인이 갖는 약점이라면 약점이다.
이번 총회에서 중요하게 심의처리된 것이라면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총부의 새해 예산이라 할 수 있다. 이 예산안 역시 당무자들의 깊은 사려와 슬기, 인고와 노력의 가치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고 집약된 것이어서 별다른 하자가 없었다. 비록 가난한 살림살이지만 그런대로 빈틈없이 짜여 졌다는 사실, 옛 어른의 말씀과 같이 『적다고만 탓하지 말고 고르지 모살까 걱정하라(불환과이환불균(不患寡而患不均))』는 삶의 경험이 충분히 반영된 것일까? 어쨌든 중앙교의회 본 회의에서 문동현 의장은 한 말로 총부의 새해예산을 「정신적 예산」이라 하고 송구해마지 않았다. 종교가 부자일 수도 또 부자가 될 수도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래서 그들이 살아나가는 예산 규모 역시 정신적 혹은 상징적인 의미 이상일 수도 없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예산성과 관련해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생산의 문제이다. 특히 우리 교단과 생산성의 관계는 일체 양면의 공동체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은 교단사적인 모든 일들이 이를 증명한다. 영육쌍전이나 불법시생활의 참 모습, 그리고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 생생 약동하는 생명의 실체로서 파악되고 그렇게 화해오는 그 힘은 곧 생산성이다. 끊임없는 생산성, 복지의 터전을 일구어내는(복전개발) 그 일은 아무리 어려운 때라도 중단될 수 없다. 생산의 중단은 바로 진리의 중단이며 생활의 중단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이 생산성 개발에 적극적인 참여와 투자를 하여 창립정신이 재현되는 계기를 여기에 살려서 교단의 새로운 저력을 삼아야 하겠다. 목전의 이익이나 일시적인 효과, 일종의 업적 위주 성과 위주의 결과주의는 중생제도의 영원한 생산성을 잇는 힘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중생을 착취하는 수단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총회를 계기로 한 해의 살림살이도 일단 마무리가 되고 새해를 향한 새로운 출범이 기약된다. 아무리 어려운 경제적 상황 가운데에서도 할 일은 해야 되고 또 반드시 제 나름으로는 하였다고 본다. 교화에 있어서 부산 광주의 교구회관이 지어지고 내외로 20여 교당이 새로 생겼으며, 영산성지의 정비와 대종사 탄생가 복원사업 변산 제법성지 복원사업 등은 금년의 괄목할 만한 업적이라 할 수 있다. 이것으로써 무슨 결과를 평가하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것들이 정신의 소산이요, 정신적인 가치일 때에만 영원하고 귀한 것이 된다. 살림살이란 곧 정신을 계발하고 정신의 힘을 키워내자는 작업이니만큼 오늘날 그 마무리를 더욱 잘해야 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