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신보가 지난 12월 6일을 기하여 순간 첫 호를 내게 되었다. 처음 격 주간으로 시작한 것이 원기 54년 6월 1일이니 실로 11년 만에 순간으로 발돋움을 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우리 신보를 이끌어 준 역군들의 노고와 교단 내외의 호법동지, 애독자 여러분의 끊임없는 격려· 성원이 없었던 들 오늘날과 같은 전환과 성장은 기약할 수 없었을 것으로 안다.
십 년이 지나면 무엇인가 눈에 보이게 달라지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새삼스럽게 말할 것도 없이 자연의 정칙이기도 하다. 외형상에 있어서나 내재의 면에 있어서 항상 새롭게 변화하고 성장하고 향상되어가는 모습, 이야말로 살아있는 증거이며 살아가는 진실이다. 우리 신보는 「원불교 언론」으로서 그간 얼마만큼 성장하여 왔는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원불교 언론의 살아있는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를 이제 스스로가, 이 중대한 전환의 시기에 즈음하여 다시 한 번 돌이켜보고 점검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신보는 반백년(원기 54년) 교단의 발전사 속에서 태어났다. 그리하여 일원의 새 원음으로 새 세상을 열어 베풀어나가는 새 종교 새 생명의 맥락으로써 이 교단사와 더불어 성장해 왔다. 「원불교 신보」는 원불교 교단의 공기(公器)로서 새 역사의 증인이요, 새 시대의 소리(언론)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이것은 한낱 자가 도취의 과대망상적인 자만 자부에서가 아니라, 실로 저마다 스스로의 깨달음에서 지워진 우리들의 지중한 사명이며, 위 없는 긍지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돌이켜보자면, 짐은 무겁고 길은 멀다(임중도원(任重道遠)) 하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 아닐 수 없다. 지나온 십 년의 발자취가 그렇거니와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이 또한 평탄한 것만은 아니리라. 굴곡과 험로, 돌풍과 격랑은 어차피 끊일 사이가 없겠으니 이것이 진겁(塵劫) 속에서 지새는 사바세계의 역사라면, 전 생명력을 이에 기울여서 진리의 참 뜻을 지키며 새 역사의 새 빛을 이루어 나가겠다는 저희들에겐들 어찌 모진 아픔이 없고 세찬 몸부림이 없겠는가? 비록 새로운 창성이 있는 가운데에도 종말적 좌절이 없을 수가 없고, 우렁찬 현창(顯彰)의 날개 아래에도 왜곡과 무명의 그림자는 도사리며, 과감한 진취의 바람 속에도 비굴과 정체의 높은 매워지질 않는다. 이러한 가운데에서 우리들의 사명과 역사(役事), 이 걸음은 잠시인들 쉴 수가 없고 또 그 어디엔들 머무를 리 없다. 하물며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리겠는가. 일체를 받쳐주고 일체를 얻을 것이다. 그렇다. 일체를 다 나의 것으로 포용하고 융섭(融攝) 하고 소화하고 작용하면서, 한 걸음 한 관문을 넘어서야 한다. 오로지 무한을 수용하고 무한을 넘어서는 길을 향하여 묵묵히 걸어야 한다. 바른 법과 큰 원칙(정경대원)을 믿으며 깨달으며, 여기에 이 한 길을 열어나가는 것이 「원불교 언론」의 길이 아닌가 한다.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것이야말로 원불교 언론의 실체적 기능이어야 하겠다. 원불교 언론의 상층적 구조는 원불교 교단관이다. 올바른 교단관을 통하여 사물의 본질을 밝고 정확하게 꿰뚫어야 한다.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기능으로 눈· 귀· 코· 입· 몸· 마음을 작용하여 진리의 참 뜻을 온통 드러내어 하나의 세계, 영원한 평화의 낙토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여기에 새 시대 우리 언론의 기조정신을 천명한다.
첫째 변함이 없는 원칙성이다. 바른 법, 진리의 그 바탕이 아니면 일어설 수 없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대해장강의 그 끊임없는 면면 도도한 흐름은 그 연원이 깊고 멀어서 헤아릴 수 없는 까닭이다.
둘째는 성숙한 비판력이다. 이 세상 한 물건도 버릴 물건이 없다. 모두들 살리고 활용하는 것이 내가 사는 길이다. 모두를 다 바쳐 애오라지 진리를 살려내는 길만이 모두가 다 같이 사는 길임을 자각하여 밝은 슬기 충만한 은혜로서 서로가 서로를 포용해나가야 한다. 내가 나를 버리고, 네가 너를 버리고, 서로가 서로를 버릴 때 궁극적으로 균형은 깨어지고 불행은 가중한다.
셋째는 차원 높은 방향이다. 우리들은 하나의 공동체로서의 주체성을 승화해 나가야 한다. 진리의 공동체(동원도리)로서의 나, 생명의 공동체(동기연계)로서의 나, 역사의 공동체(동척사업)로서의 나를 그 언제 그 어디에서나 새롭게 발견하여야 한다.
이리하여 우리들은 진실에 참여하고 정의에 이바지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봉공과 구원의 길을 통하여 「실존과 허무」의 늪에 사로잡힌 현대의 과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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