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화문을 열다
  「오다 오다 우리 오다/원불교 터전 닦으러 우리 오다」 어-어, 어-어 「오다 오다 우리 오다/부처님 터전 닦으러 우리 오다」 어-어, 어-어. 여자교도들은 삼태기에 잔자갈을 담아 나르고 남자교도들은 소리에 맞춰 다짐돌을 공중에 높이 올렸다가는 쿵 내려찧고 했다. 점심때가 되자 밥이 담긴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지게에 지고나와 주춧터를 닦은 위에 그릇그릇 벌여놓았다. 「점심들 합시다.」 감역을 하던 노제천씨(현 부지부장)의 우렁찬 소리에 모두들 이마에 솟은 땀을 훔치며 모여들었다. 기왓장 하나하나까지 교도의 손닿지 않은 곳 없이 전 교도가 합심하여 세워놓은 영도교당의 터다지던 정경이다. 이때 점심을 하여 나르며 교도들을 격려하던 사람은 故황만덕씨(前 지부장)로 초창의 주역이었다. 황지부장은 병상에서도 교당의 유지를 늘 걱정하다 입적하니 황지부장의 인연으로 윤재관씨(현 교당고문)와 주제식씨(현 지부장)가 새로운 교당주역이 되었다. 
◇교당의 연혁
 영도교당은 18년 전 초량교당의 연원으로 교화의 문을 열었다. 이산두화씨(현 경남교도)는 영도에 교당을 내기위해 여러 방면으로 인연을 찾던 중 같이 교당에 나가던 김정진행씨(현 주무) 동생이 영도에 살고 있음을 알아냈다. 이씨와 김씨는 영도구 신선동2가34에 사는 김만유행씨(현 부산진교도)에게 원불교를 소개, 원기43년 7월 18일에 그의 이층 방에서 당시 초량교무 박은국씨(현 원남교무)가 첫 출장법회를 가졌다. 44년 6월 박은섭 교무(현 제주교무)가 초량교무로 새로 부임, 출장법회를 계속하니 50여명이 모였다. 이어 46년 4월 20일 박지홍씨(현 교무)가 초대교무로 발령되어 이해 6월에는 대지 1백55평(현 위치)을 매입하고 10월에는 융타원 김영신 법사(현 수위단원) 초청 첫 강습회를 가지니 1백50여명이 모였다. 47년 9월에는 故황만덕씨를 중심으로 법당 56평, 식당 11평의 대역사를 12월에 끝을 냈다. 이에 안정을 찾은 영도교당의 교화는 더욱 활발하여져 학생회 결성(48년 2월 26일)도 했다. 그러나 건축의 과로로 박지홍 교무가 휴무를 하게 되자 49년 7월 3일에 제2대 교무로 서세인씨(현 동래교무)가, 다시 50년 4월 25일 3대 교무로 백수정씨(현 홍천교무)가 부임, 10월에는 지부로 승격을 했다. 51년 4월 15일 박덕수씨(현 화곡교무)가 부교무로 부임했으나 백교무의 건강악화로 제4대 교무 대역을 맡았다. 다시 53년 4월 8일에는 제5대 교무로 초창의 초석을 다졌던 박지홍씨(현재)가 재부임 하게 되니 부교무에는 김광인씨(현 청학교무)이다. 몇 년 사이에 교무가 4명이나 바뀌는 속에서도 교도들의 법을 향하는 마음은 조금도 동요됨이 없이 용솟음쳐 55년 12월 5일에는 연원교당으로 청학동(부산영도구)에 법신불을 봉안, 출장법회를 시작하여 56년 3월 18일에는 김부교무가 승진 발령되며 독립교당으로 떨어져 나갔다. 3대 부교무로 유신옥씨(현 안양교무, 66년 2월 23일) 제 4대 부교무로 한순인씨(현재 58년 3월 15일)가 부임하여 청년회 결성(75년 11월 12일) 어린이회가 결성(58년 8월)되어 교화는 이제 반석위에 올려졌다.
◇교화현황
 1천여명의 교도를 갖고 있는 영도교당은 주 법회에 일반 70여, 학생 40여, 청년 30여, 어린이 40여명이 참예하며 정초 3주간의 기도회에는 매일 40여명, 월예기도회에는 35여명, 아침좌선에는 5~6명이 참여하고 있다. 「전 교도들이 모두 가족적 분위기로 자기 일보다 교중 일에 앞장 선다」는 박교무의 이야기대로 교당은 전국의 유수교당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교도 O씨는 5년간이나 정기일기를 쓰며 교무의 감정을 받아 공부해가고, P씨는 교당 일에 있어 한 사람의 교역자노릇을 하고 있단다.
◇앞으로 교화계획
 영도교당은 반백년 대회 때 전개한 교화 3대 운동에서 ①반백년 대회 공로패 ②교당불리기 표창 ③연원달기 표창 등을 수상했다. 대외활동으로는 어린이회원들이 경로당 노인초청위로회, 교도선행 친목단체인 원선회. 유남인화(원선회 회장) 현재 49명의 회원으로 ①3월 대각개교절 봉공행사 ②5월 방생법회 ③12월 좌선의 달 행사 등을 벌여왔다. 회원들은 월5백원씩 회비를 내고 있는데 금년 대각개교행사절에는 청소부를 초청, 위로회를 계획하고 있다. 또 5월에는 어버이날 행사로 불우노인들을 위한 계획에 한창이다. 교당유지나 교화터전이 안정을 얻은 영도교당은 이제 대외봉공의 행사로 「지역사회뿐 아니라 원불교 3대 사업 전개에 전교도가 전력할 터」라 다짐들 하고 있다.
<사진> 부산 시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영도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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