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6일은 본교의 61회 대각개교절이다. 60년 전인 1916년 3월 26일 이른 새벽, 소태산대종사께서는 20여년의 구도 생활 끝에 마침내 일원대도를 스스로 깨쳤다. 그로부터 60년, 우리 교단은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착실한 발전을 거듭해왔다. 한국사회의 신흥종교 중에서 가장 건전하고 유익한 사회의 기림과기대를 받기까지에 이른 것이다. 우리 교단의 역사 60년, 인간으로 치면 회갑을 맞는 나이다. 한 인간이 회갑을 맞게 되면 인생으로서 원숙기에 접어들고 또 자신의 일생을 결산해보아야 할 때이다. 그래서 교단 회갑년도를 기념하는 몇 가지 중요한 역사적 과업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제 우리 교단은 개교 반백주년 기념성업을 넘어서서 회갑년도를 고비로 교단 발전의 원동력이 무엇이었나를 엄숙히 반성해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그 원동력의 불꽃이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는가도 냉철히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교단 60년의 역사는 땀으로 시작해서 땀으로 얼룩지고 땀으로 발전한 것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소태산대종사께서 스승의 지도 없이 20여년간 구도생활을 한 것은 과거의 어느 성현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린 것이다. 또한 「혈인 기도」보다 「영산 방언공사」가 먼저였다는 사실도 우리 교단이 땀으로 시작한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 이후 우리 교단은 오직 선후진과 재가출가의 땀으로 발전을 거듭해 왔던 것이다. 땀이란 보배로운 것이요, 노동이란 인간의 기본적 생활 무기이며, 땀을 많이 흘린 사람이 곧 훌륭한 인간인 것이다. 그러기에 과거의 禪師들이 한결같이 禪과 노동을 둘로 보지 않았다. 특히 백장선사는 늙어 입적에 들기까지 一日不作一日不食의 수행 태도를 견지했던 것이다. 우리는 인류의 역사에서 노동을 신성시하고 중요시할 때, 그 사회는 발전하고 윤리 도덕이 빛났으며 반대로 노동을 천시할 때, 그 사회는 퇴보하고 윤리 도덕도 타락했음을 보아왔다. 소태산대종사께서는 일찍이 「晝作夜禪」 「靈肉雙全」 「産業是佛法 佛法是産業」의 수행 태도를 천명했다. 대종사께서는 평소 제자들에게 지위의 고하에 관계없이 공동작업에는 빠짐없이 참석하도록 가르쳤다. 또한 공동 작업에는 송장까지도 참석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스스로 앞장서서 땀 흘리며 진두지휘했던 것이다. 현재 우리의 교세 현황은 대종사께서 열반할 당시보다 괄목할 발전을 가져왔다. 그러나 산업기관(특히 육체노동을 주로 하는)은 교세의 발전과 반비례하는 쇠퇴 현상을 가져왔다. 아무리 시대상황의 변천을 감안한다 할지라도 노동정신의 쇠퇴가 이러한 현상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땀 흘리는 교단, 땀 흘리는 원불교인이라야 사회에 공헌할 수 있고 무궁한 발전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근로풍토를 새롭게 조성해야 할 것이다. 수행인에게는 밥 먹는다는 것 못지않게 마음공부가 중요하고 마음공부 못지않게 땀 흘리는 공부도 해야 하는 것이다. 즉 노동은 모든 수행인에게 일상생활의 기본태도요, 필수조건이 되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노동을 하는 태도는 곧 기도하는 자세, 즉 事事佛供의 태도가 곧 노동하는 자세인 것이다. 세 번째 농촌 교당은 농촌 새마을운동의 전진기지가 되어야 하고 피폐한 산업기관(수계농원, 만덕산농원, 완도농원 등)을 중점적으로 육성해야 할 것이다. 모든 교역자는 1년에 몇 시간 아니면 수 년 만에 몇 달씩 의무적으로 이들 산업기관에서 노동하도록 법제화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대종사께서 도를 깨치기까지 흘린 그 땀을 우리도 흘리면서 마음공부에 노력하고 교단 60년의 역사에 흘려온 그 땀방울이 식지 않도록 우리도 흘려야만 할 것이다. 땀 흘리기에 바쁜 사람은 남과 싸우고 시기하며 미워할 틈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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