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청년과 밝은 미래의 창조

 개교60주년을 기념하는 청년토론대회가 4월 17일 「원불교 청년과 밝은 미래의 창조」라는 주제로 종로교당에서 있었다.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의 입장에서 밝은 미래의 창조를 모색한 토론회에서는 이제성 교무(원남, 진리적 종교의 신앙 면에서)와 박청수 교무(사직, 사실적 도덕의 훈련 면에서)의 주제발표를 토대로 5개 분과로 나뉘어 분과 토의도 가졌다. 이날 오후5시 종로교당에서 있은 주제발표에는 4백여 청중이 성황을 이루었으며 분과토의는 장소를 바꾸어 오후8시부터 학생수련원(사직공원 내)에서 합숙하며 진행되었다. 분과토의에는 1백여명이 참가, 이튿날의 주제발표자에 대한 질의문답도 있었다. 여기에 주제발표 내용을 요약한다.
진리적 종교의 신앙 면에서
편리한 생활의 추구가 위기 초래
인과신앙 통해 생의 본질 깨쳐야
이제성
 사회학적 입장에서 본 미래사회는 어두울 뿐이다. 그것은 산업제일주의의 가속적 변화가 가까운 미래에 세계체계의 위기를 몰고 올 가능성이 크다는 데에서 그렇게 전망된다. 뿐만 아니라 과학과 물질의 발달로 생활은 편리해졌으나 편안한 생활을 보장하지 못하는 데에서 사회적, 생태학적 입장에서도 인류의 미래는 어둡게 전망되는 것이다. 인구문제, 환경의 오염, 자원의 대량소비로 인한 고갈 등이 위기의식을 조장시키며 기술주의의 문명은 정신적 삶의 영역인 명상의 모든 가능성을 추방했다. 인생을 편리하게 살기를 원하는 주의로 탈바꿈될 때 한 인생의 중심과 무게가 기술과 돈에 의존하게 된다. 현대문명에서 가장 타락된 것은 생의 개념이며 물질은 현대인의 우상이 되고 있다. 여기에서 인간의 정신적 위기가 있게 된다. 그렇다면 종교에서 보는 미래사회는 어떤가.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내밀라는 가르침처럼 종교는 역설적인 면이 있다. 따라서 미래에 대한 전망은 밝기만하다. 석가모니는 멸후 3천년이 지나면 미륵불이 나와 용화회상을 이룬다했고 예수이후 2천년이 지나면 새로운 예수의 재립시대가 온다고 전망했다. 한편 원불교의 소태산대종사는 용화회상이란 지극히 밝은 세상으로 풀이하고 낙원세계를 예고하고 있다. 대종사는 낙원세계건설을 위해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 그러면 진리적 종교의 신앙이란 무엇인가. 크게 밝은 신앙이다. 신앙의 대상을 보여줄 수 있고 설명할 수 있고 증명할 수 있는 신앙이다. 만일 증명할 수 없다면 진리적 신앙이라 할 수 없다. 현대와 미래의 신앙은 신을 거부하고 불타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원불교에서의 진리적 신앙은 곧 일원상신앙이다. 이는 ①법의 근원이 곧 성품이요, 마음이 곧 부처임을 믿는 것으로 직관과 반조를 통한 존재를 넘어선 초월의 신앙이다. ②인과의 묘리가 지극히 밝고 지극히 공편됨을 믿는 것으로 생의 본질적 의미의 신앙이다. ③죄와 복의 권능과 주재자는 사은임을 믿는 것으로 섬기는 조화와 만물선용의 신앙이다. 이러한 신앙을 통해 인간은 무한한 자기 가능성과 죄의식을 느껴 겸허한 삶을 누릴 때 편리추구의 생활방식은 편안한 생활을 아울러 영위하게 될 것이다.
사실적 도덕의 훈련 면에서
원만한 인격일 때 밝은 미래 가능
성불제중의 서원 부단히 가꾸고
박청수
 진리적 종교의 신앙이 인생관, 우주관, 가치관, 사생관을 새롭게 확립하게 한다면 사실적 도덕의 훈련은 인격을 개조시킨다. 觀이 확립되고 개조된 인간은 정신의 세력이 확장된 인간을 뜻하며 이 사람은 고해를 여의고 낙원의 권속이 된다. 따라서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 새 인격을 이룬다면 원불교 젊은이는 밝은 미래를 창조할 것이고 또한 밝은 미래창조의 역군이어야 한다. 그러면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훈련이란 어떠한 변화를 목적으로 시도되는 계속적 반복을 뜻한다. 따라서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란 인간개조(중생에서 佛)를 위해서 생활 속(動靜 간)에서 실질적으로 쌓는 도덕적 수련(수행)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위해서는 ①진리적 종교 신앙의 바탕 ②불완전한 자기 발견으로 겸허한 정신적 자세 ③성불(자기발전)의 願의 잉태가 밑받침 되어야 한다. 훈련의 표본은 일원이고 표본을 닮기 위해서는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의 삼학의 수행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정신수양으로 自性無亂의 성품을 회복하여 자주력을 얻고 사리연구로 自性無病의 성품을 회복하여 般若智를 얻으며 작업취사로는 自性無罪의 성품을 회복하여 정의실천력을 얻기 때문이다. 훈련은 정기훈련과 상시훈련으로 구분된다. 정기훈련은 일정한 기간을 택해 훈련에 임하는 것이고 상시훈련은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훈련이다. 따라서 사실적 도덕의 훈련은 일상생활 속에서, 다시 말하면 때와 곳을 가리지 않는 무시선무처선 공부(動靜間不離禪)이며 이러한 훈련의 계속으로 우리 육근의 작용은 일원상처럼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게 나툴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경지는 진공이 體가 되어 묘유의 用이 나투어지는 경지이며 진공묘유의 수행으로 원만한 인격이 갖추어진 사람은 스스로 밝은 미래를 창조할 수 있고 또 남의 밝은 미래도 창조할 수 있는 힘이 있게 된다. 이를 바꾸어 표현하면 스스로 밝은 미래를 창조함은 성불이며 남의 밝은 미래를 창조함은 제중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불제중의 서원을 계속시키기 위해서는 信ㆍ忿ㆍ疑ㆍ誠의 정진이 끊임없이 계속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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