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해를 보내며

원기 65년, 1980년의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이렇듯 대자연의 순환은 어김이 없다. 만물은 소리 없이 있지만 시간의 고동은 끊이지 않는다. 이제 한 해를 돌아보며, 지나온 발자욱이 남긴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자 한다. 도시 무엇 때문에 그러는 것이냐. 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은 인간의 순리에서다. 되돌아보고 싶고 돌이켜 볼 줄을 아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더구나 종교인에게 또는 수도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종교인, 수도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참회」와 「구원」이 없는 생활을 어떻게 상상이나 하겠는가? 참회라는 것은 말하자면, 깊은 우물을 샘물을 호올로 쉬임없이 길어 오리는 일이 아닌가 한다. 깊은 우물의 샘물은 결국 자성이다. 이 자성의 샘물은 아무도 나를 대신하여 길어 올릴 수 없는 것이다. 외롭거나 고되거나 어쨌거나 자기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작업이다.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도 아니요, 누가 하지 말라고 해서 마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가 마지못해서 하는 스스로의 뜻이다. 스스로의 아픔에서, 혹은 스스로의 즐거움에서 그렇게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러한 순리, 이 순리가 저마다의 자성에 심층적으로 작용함으로써 구원을 얻는다. 우리들은 그 언제 그 어디에서나 참회 없이 구원을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구원에 대한 확연하고 구체적인 약속이 없는 종교는 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는 것이다.
무엇을 되돌아보는가. 돌이켜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저마다 자기라는 존재 때문이며, 죄(罪) 때문이다.  자기의 정체를 꿰뚫어 보고 내가 지금 어디에 있으며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가를 알아내야 한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완전할 수가 없다. 나만은 절대적으로 죄가 없노라고 단정하지 못한다. 이러한 겸허한 깨달음에서 참회의 작업은 시작되고 구원의 빛을 간구하게 된다. 모든 죄업은 탐· 진· 치의 마음으로부터 일어나고, 탐· 진· 치의 마음은 나라고 하는 존재의 중심에서 싹이 튼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나라고 불리우는 존재가 멸해야만 죄 또한 멸하고, 존재의 그림자나 죄의 그림자마저 찾아볼 수 없는 경지에까지 참회의 길은 다져야 한다. 돌이켜도 또 돌이켜봐도 돌이킬 것이 없는 마음을 다시 돌이켜서 스스로의 구원을 기약하는 것이 아닐까? 참회는 영원의 한 길을 개척하는 작업, 영원으로 열린 이 한  길, 여기에 구원이 있다. 참회는 새 생활의 개척자, 구원은 곧 새 생화이다. 언제나 새로운 생명이 약동하는 새 생활이다.
그러면 우선 지나간 한 해의 뜻을 여기에 정리해보고자 한다. 지나간 1980년이야말로 대내외적으로 격동과 격변의 시기, 아마도 이러한 상태는 80년대 전반에 걸친 몸부림일는지 모른다.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세계적인 새로운 역사의식이 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나 마디로서 말할 수는 없지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종합적으로 지양해서 새로운 사회보장을 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확립을 목표로 하는 것이 그것이다. 과거의 낡은 역사의식의 개념 속에는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 하는 대립이 전제되어 있어서 이것이 아니면 저것에 사로잡히는 판이다. 말하자면, 자본주의의 정립에 사회주의의 반정립이 맞서고 여기에서 다시 종합으로서의 새로운 사회보장제도가 나온다는 역사의식, 이러한 새로운 역사의 흐름은 종래의 많은 관념적 진보주의자들이나 이원론자들의 행동과 사고에 새로운 계기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역사의 흐름은 80년대의 서장을 여는 이 해애 좀 더 뚜렷해진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동향은 최근 중공을 위시하여 사회주의 제국에서, 또는 호주나 미주에서 현저히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물론 예외일 수가 없다. 민주복지사회를 지향하는 새 시대니, 정의사회구현 등등의 표현 그 자체가 새로운 역사의식으로 통하는 맥락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이제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문화도 종교도 새로운 역사의 흐름을 맞고 있다. 이 흐름은 그 누구도 거슬리지 모살 것이다. 도도히 흐르는 생명의 대하로서 순리와 조화, 상생의 새 역사를 향하야 이 대하는 끊임없이 흐르고 흐를 것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들 종교인은 진리와 역사 앞에 용사(容赦)없이 자기를 온통 내 던져 바치는 경건한 참회의 바탕에서 이 새 역사의 흐름을 맞아들ㄹ여야 한다. 만유를 수용하여 모두가 살아나가는 차원 높은 방향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온갖 순리가 한 마음속에서 서로 토하고 모든 진실이 한 울안에서 아울러지는 세계. 이제 새 역사는 곧 참회의 역사로서, 구원의 역사로서 내일의 밝음을 여는 새로운 장으로 펼쳐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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