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성스럽고 고귀한 모습은 어떤 것일까? 부처님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일까? 아니면 대중 앞에서 법설하는 모습일까? 그것도 아니면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사색에 잠긴 모습일까? 과연 어떠한 모습의 인간이 가장 성스럽고 고귀하게 보일까? 그것은 땀 흘리는 모습이다. 무더운 여름날 뙤약볕 아래서 구슬땀을 흘리는 농부는 곧 부처님 모습이다. 이제 곧 애기를 낳으려고 마지막 진통을 겪으며 온 몸을 땀으로 목욕하는 산모는 가장 성스러운 부처님의 모습이다. 그러나 골프를 치고 양주를 마시며 시속 1백Km로 오토바이를 모느라고 흘리는 담은 부처님이 흘리는 땀이 아니다. 「청년들에게 권하고 싶은 세 마디 말이 있다. 일 하여라, 좀 더 일 하여라, 끝가지 일 하여라」 이렇게 말한 독일의 정치가가 있다. 그를 일러 사람들은 철혈재상이라 불렀다. 만약 우리나라에 좀 더 일찍 그러한 정치가가 나와서 이 나라를 다스렸더라면 그래서 우리의 청년들이 일하고 좀 더 일하고 끝까지 일했더라면 한국의 역사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아니 아세아의 역사, 나아가 세계의 역사까지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지금 한국 사회에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는 새마을운동, 그것은 우리의 민족종교다. 새마을 지도자, 그들은 민족종교의 교역자들이다. 예부터 땀 흘리지 않고 놀고먹는 자들을 가리켜 불한당이라 했다. 어느 사회고 불한당은 있다. 새마을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려면 불한당들을 추방해야 한다. 서정쇄신운동은 곧 불한당 없애기 운동이다. 어느 때나 불한당은 상당한 권력을 쥐고 있다. 선량한 서민들을 등쳐먹는다. 우리사회의 불한당 역시 마찬가지다. 악덕재벌, 부정공무원, 파쟁만 일삼는 부패정치배, 그들은 모두 새마을운동, 곧 민족종교를 좀먹는 불한당들이다. 그들이 땀 흘려 일하는 일꾼이 되도록 까지 새마을운동은 꾸준히 지속되어야 한다. 우리원불교 교단에도 또 우리들의 마음속에도 불한당들이 차츰 번식하고 있지는 아니한가 생각해보자. 땀은 흘리지 않고 권세와 대우를 바라는 자, 교단을 봉사하는 교단, 영원한 장래에 한없이 발전하는 교단으로 이끌어 가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일신의 이익과 편안을 도모하는 자, 교단의 장래는 아랑곳하지 않고 교단의 법을 마음대로 주무르려 하는 자, 이러한 자가 있다면 이는 모두 우리교단의 불한당들이 아닐 수 없다. 만일에 이러한 사람들이 활개를 친다면 우리교단은 사회에 공헌하는 교단이 되기 어렵다. 오히려 사회의 병폐가 될 뿐이다. 대산종법사는 지난 6월 10일에 교도의 공부 ㆍ사업 성적사정에 따른 특별유시를 내렸다. 법위사정과 사업성적사정은 한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이 아니다. 또 대우받기 위한 핑계도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각자의 마음에 도사리는 불한당 추방운동이 되어야 한다. 안으로 끊임없는 적공으로 하루속히 자기 자신을 불보살의 법보에 올려놓자는 것이요, 제생의세의 구제 사업을 더 많이 벌이자는 것이다. 마음공부하기에 바빠 사심 들 틈이 없고 제도 사업하기에 골몰하여 자신도 잊어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잠시도 땀이 마를 시간이 없는 것이다. 항상 땀으로 목욕하며 땀 속에서 사는 것이 곧 법위사정과 사업성적사정인 것이다. 그러기에 사무당국에서 하는 사정에 의지하지 말고 각자의 양심에 비추어 자기 스스로가 사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한 것이다. 아무리 다른 사람이 높이 사정한들 자기 양심에 부끄럼이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오직 진리 앞에, 대종사님 앞에 떳떳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공부사업 간에 잠시도 쉬지 않고 땀을 흘리는 것이다. 땀 흘리는 사람이 원불교의 부처님인 것이다. 이익이나 권세나 명예나 대우에 연연한 불한당 없애기 운동이 곧 법위사정이요, 사업성적사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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