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손 끝에서 태어난 방한 아이템

"바느질도 하다 보면 도를 닦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서둘러서 되는 게 아니거든요."

30년 넘게 손누비 바느질을 전수해 오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07호 김해자 누비장의 말이다. 바느질을 일일이 손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릴 뿐 아니라 정성이 깃들지 않으면 안된다는 그의 설명이다. 보통 목도리 하나를 만들려면 대략 1만 땀 정도의 바느질을 하는데 숙달된 전문가라도 사흘은 너끈히 걸린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손누비의 장점을 물었더니 "재봉틀은 2겹 바느질인데 손누비는 한 겹이라 가볍고 덜 뻣뻣하다" "몸에 착 달라붙는 느낌을 줘 선이 살아 있다" "땀과 땀 사이에 공기층이 형성돼 보온력이 좋다" "우리 고유의 맵시가 그대로 살아 있다" 등의 자랑이 끝이 없다. 이불, 옷, 가방, 목도리, 지갑, 모자 등 생활에 쓰이는 거의 모든 것을 누벼서 만들 수 있고, 오래될수록 멋이 나는 것이 또한 누비의 장점이라고도 했다.

현대에는 이런 바느질 법이나 기타 자수, 조각보 같은 무형문화재가 점차 소멸되는 추세로 국가에서는 누비장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기능을 전수하도록 하고 있다.

승복인 납의에서 비롯

요즘 같이 추운 겨울날 현대처럼 패딩이나 방한용 옷감이 없었던 조선시대에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어떤 방한 아이템을 착용했을까.

관심이 있거나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드라마와 사극에서 종종 나오는 겨울복장에서 누비로 된 두루마기와 저고리 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누비라는 것은 옷을 만들 때 옷감과 옷감사이에 솜이나 털, 닥종이(한지를 만들때 쓰는 재료) 등의 보온재를 넣거나 그런 것도 없으면 그냥 보온내의처럼 세로줄로 바느질 하여 보온층을 만들어 내는 바느질 방법이다.

쉽게 말하면 평면적인 천(옷감)에 사람이 인위적으로 바느질을 해서 천을 겹겹이 만들거나 천 사이에 보온재를 넣어서 옷 사이에 온도가 유지되는 보온층을 만드는 바느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기록을 살펴보면 누비(縷緋)는 겉감과 안감 사이에 솜을 넣고 함께 홈질하여 맞붙이는 바느질법이라 되어 있다.

<아언비각>에 누비는 승복(僧服)인 납의(衲衣)의 오류라고 지적하고 승려들이 해진 옷을 기운데서 비롯되었다고 하였다. 서기전 7세기경 불교가 인도에서 발생한 당시부터 불제자들은 고행의 한 수련방법으로 세상 사람들이 내버린 여러 가지 낡은 헝겊을 모아서 누덕누덕 기워 만든 납의라는 옷을 입었다. 이 납의는 믿음이 깊은 불교신자에게는 경외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한 천으로 만들되 납의에서와 같이 기운 흔적을 살린 옷이 신자들 사이에 생겨나서 '납의'라고 하다가 '누비옷'이라 일컫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누비 솜씨는 복식문화의 발달에 따라 더욱 섬세해지고 여러 복식에 원용되는 가운데, 오늘날과 같은 누비법이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추운 기후관계로 더욱 발달된 것으로 여겨진다. 누비는 방법은 홈질로 평행·직선 등으로 누비는데, 누비의 넓이와 솜의 두께에 따라 종류가 나누어진다.

조선시대 〈궁중발기〉에는 오목누비ㆍ잔누비ㆍ납작누비ㆍ중(中)누비ㆍ세(細)누비ㆍ누비ㆍ세중(細中)누비로 구분하고 있다. 이외에 줄누비ㆍ마름모누비ㆍ꽃누비ㆍ기하학누비ㆍ회문(回紋)누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홈질이 촘촘한 잔누비는 홈질줄의 간격이 1㎜ 정도인 것도 있으며, 정교하기 이를 데 없어 민예 또는 수예로 전승이 아쉬운 기법 중의 한 가지이다. 누빌 때는 보조기구로 밀대를 쓰면 편리하다. 밀대는 대나 나무를 길이 25㎝, 지름 2㎝ 정도의 원통형으로 다듬어 만들고, 자개나 화각 등으로 장식하기도 한다. 이것을 누비감 밑에 받쳐놓으면 안팎의 감이 밀리지 않아 정교한 바느질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구분은 누비질의 간격에 따라 잔누비(3mm간격) 세누비(5mm) 중누비(2.5cm 이상의 드문 누비) 등으로 나뉘는데 8폭 치마를 세누비로 만들려면 8×38은 304cm이니 608줄을 누벼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땀 한땀에 가족 안위 기원

누비는 천을 일정한 간격으로 홈질하는 단순한 작업이지만 누비기 전에 줄을 긋는 데서 이미 지칠 정도로 만만치가 않은 작업이다. 보통 누비 줄은 바느질 전에 초크로 그리거나 다리미로 자국을 내주어야 한다. 김해자 누비장은 "광주 이씨 출토복식(유물 114호)을 재현하기 위해 무명천에 다리미로 누비자국을 냈더니 굳은살이 석달을 갔지만 그런 고되고 단순한 작업이 좋았다"며 "전통 유물을 재현하면서 오히려 작품은 더 세련되어갔다"고 말한다.

누비는 누빈 넓이와 솜의 두께와 바늘땀은 대체로 비례하는데, 솜을 얇게 두면 누비의 넓이와 바늘땀이 좁았고, 솜을 두껍게 두면 누비 넓이와 바늘땀이 넓었다. 여기서 잔누비는 솜을 얇게 두어 누비폭을 좁게 촘촘히 누빈 것이며, 세누비도 같은 것이다. 오목누비는 솜을 두껍게 두어 좀 넓게 누벼 오목오목한 효과를 낸 것이다. 납작누비는 솜을 비교적 얇게 두고 넓게 누벼 납작한 효과를 낸 것이다. 중누비는 솜을 적당히 두어 중 정도의 넓이로 누빈 것이다.

또한 피륙의 보강과 보온을 위한 기법으로 조선시대 초기의 유물에서 누비옷을 볼 수 있는데, 그 이후에는 치마ㆍ저고리ㆍ포(袍)ㆍ바지ㆍ두의(頭衣)ㆍ신발ㆍ버선ㆍ띠 등 옷가지와 침구ㆍ보(褓)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쓰였다. 이들은 대개 솜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지만, 장식성에도 상당한 비중을 두었다. 조선시대 이전의 누비는 실물이 발견된 것이 없어 그 기법이 어떠했는지 확인할 수 없다.

시중에 나와있는 누비 제품은 대부분 기계누비이다. 손누비와 기계누비는 구분이 쉽다. 재봉틀로 박은 기계누비는 박음질처럼 실선이 계속 이어져 줄이 골진 것이 특징으로 골과 골 사이가 뚜렷하다보니 다소 뻣뻣하다. 반면 손누비는 홈질이라 바느질땀이 나타났다 들어갔다 하기 때문에 촉감이 부드럽다.

입었을 때도 옷이 결리거나 각이 지거나 하지 않고 몸에 잘 감긴다. 바늘땀 사이가 막힌 기계누비와 달리 손누비는 바늘땀 사이로 공기가 흘러 더 따뜻하다.

오늘날 누비는 공장에서 대량생산으로 기성제품에 기계바느질로 만들어 내는 게 대부분이지만 실과 바늘만 있던 조선시대에는 한땀 한땀 어머니들이 누비옷을 만드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간다. 자녀의 무병장수와 지아비의 안위를 기원하며 기도하듯 정성을 들여 만든 손누비야 말로 오늘날 명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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