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보살(菩薩)이 장엄불토불(莊嚴佛土不)아. 불야(不也)니이다. 세존(世尊)이시여 하이고(何以故)오. 장엄불토자(莊嚴佛土者)는 즉비장엄(卽非莊嚴)일새 시명장엄(是名莊嚴)이니이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냐 보살이 불토를 장엄하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어찌한 연고인가 하오면 불토를 장엄한다는 것은 곧 장엄이 아닐새 이것을 장엄이라 이름하나이다."

불토라고 하면 청정한 상태, 무상, 무념으로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깨끗이 청소가 된 마음 바탕이 불토다. 색성향미촉법에 물들지 않은, 색수상행식 오온에도 물들지 않고, 상에도 법상 비법상에도 주착되지 아니한 이러한 깨끗이 청소가 된 우리의 본래 마음 바탕이 불토이다. 아무것도 없는데 거기를 무엇으로 장엄하느냐. 오직 정과 혜의 이보(二寶)로써 장엄을 해야 이것을 일러서 장엄이라 한다. 다시 말해 삿된 욕심, 사사로움이 없는 우리 마음에 어진마음, 의로운 마음, 예를 지키는 마음, 지혜로운 마음, 자비로운 마음, 계정혜, 사랑의 마음, 충효열을 충만하게, 이러한 것들로 장엄을 하는 것이다.

우리 총부 영모전, 기념관이 예전에는 더러운 곳이었는데 여기를 깨끗이 청소하고 나무심고, 훌륭한 영모전 기념관이 들어서니까 얼마나 좋은가. 우리 마음도 재색명리, 사상을 다 깨끗이 청소하고 정혜 두 가지 보배, 인의예지, 자비, 충효열을 충만하게 하는 장엄을 해야 땅값이 올라간다.

그런데 왜 여기서 장엄이란 말이 나왔는가? 지금까지는 없애라고만 했는데, 주착도 없고, 상대 없애고, 무상대도도, 법도 없애라고 했는데. 아무것도 없이하고 뭐하자는 것이냐. 그냥 쓸모없게 하자는 것이 아니다. 여기다 장엄을 해서 무한한 가치가 나오게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장엄을 해 놓고도 실상 내가 장엄했다 하는 상 그것이 없게 하자는 것이다.

육조대사는 장엄에 대하여 세간불토 장엄, 신불토 장엄, 심불토 장엄(으뜸장엄)으로 말씀하셨다.
세간불토 장엄은 절을 짓고 경을 만들어 보시하는 공양이다. 신불토 장엄은 일체인에게 공경을 하고, 심불토 장엄은 마음이 청정하여 부처님 마음을 차곡차곡 건설하는 것을 제일 으뜸이라고 하셨다.

만덕산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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