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회 법인절을 맞으면서

 『명예도 재물도 권세도 생명까지도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은 다루기 힘드는 사람이거니와 이 다루기 힘드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큰일을 해내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
 인간에게 가장 귀한 것이 생명이요, 여타의 것은 생명이 있은 후에 필요하게 되는 부수적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요, 관념이다. 제아무리 권세가 좋고 재물이 좋다고 하여도 생명과는 바꿀 수 없다는 것이 통념인데 유달리 그 소중한 생명을 초개같이 버리겠다는 사람은 별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물론 생명이 필요 없다는 사람 중에는 생에 염증을 느낀 자도 있으니 그러한 무가치, 무의미한 부류는 제외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깊이 인식하면서도 보다 큰 목적 내지 가치를 위하여 그것을 버리기를 주저하지 않는 숭고한 정신을 갖는다면 두려움도 괴로움도 능히 극복하여 소신대로 일을 해낼 수 있는 저력이 갖추어질 것이다.
 7월 26일로써 55번째 맞는 법인절은 바로 이 생명도 필요 없다고 하는 9인 선배의 지극한 정성이 백지혈인으로 이적을 나타냈던 날이다. 해마다 맞이하는 이 법인절이지만 해가 갈수록 그 깊은 뜻을 되새기게 되고, 9인 선배의 유덕을 흠앙하게 되는 것은 교단적으로 그만치 법인정신이 갈구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교세는 일취월장 발전을 거듭하여 70만 교도를 옹(擁)하게 되었고, 이제 해외포교에도 힘 쓸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70만의 대식구를 가졌다는 것은 과거 소수인의 소규모 교단일 때와는 판이하게 그 운영방법이 달라야 함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비대 속에 내허의 위험이 있다는 것을 깊이 각성해야 할 것이요, 타국에 진출하여 교역에 종사할 사람들은 교단 초창기의 사정과 흡사한 상황하에서 활약해야하는 어려움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니, 국내외를 막론하고 전체 교역자와 전체 교도가 법인정신의 재현으로 신심의 고취와 교단단결의 공고화를 기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뜻에서 우리는 법인정신을 재확인하고 체질화하기까지 혈심노력 할 것을 다짐해야 할 것이나 이에 그 정신을 되새겨 보기로 하자.
 첫째, 우리는 무아봉공의 대 희생정신을 본받아야 하겠다.
 고해에서 신음하는 중생제도를 위하여 이 몸 하나 아낌없이 바치겠다고 하는 순일무구의 고귀한 정신을 우리는 법인성사에서 역력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종교가 새로운 회상을 개척하려할 때, 큰 시련과 희생이 뒤따랐던 사실을 우리는 역사에서 많이 보고 있다. 이차돈의 죽음이나 천주교 탄압의 사실을 통하여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지극한 희생정신 없이는 대회상은 이룩될 수 없는 것이다. 9인 선배가 한결 같이 혼연히 죽음 길을 택하여 내어디딘 그 거보(巨步)는 우리 교단의 오늘을 약속하는 제1보였던 것이다.
 사무여한의 그날의 결의가 교사에 맥맥이 흘러 변하지 않는 한 우리 교단은 그 사명을 완수함에 조금도 부족이 없을 것이요, 이를 영원히 보전하는 것은 우리 후진의 쌍견에 무겁게 지워진 책임이라는 것을 깨달아야할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진리구현의 대신봉정신을 본받아야 하겠다. 오욕과 대립과 갈등 속에 번민하는 현실세계를 타개하여 진리를 펴는 대사업을 감당하실 대종사의 능력을 확신하고 따르던 9인 선배의 그 철저한 신념을 우리는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우리의 갈 길은 오직 외길 일뿐…. 진리의 터득과 그 구현이라는 이 외길에는 생사의 분별도 계교사량(計較)(思量)도 작용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 그 정신을 다시 한 번 받들고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주의 본원에 귀합하고 성불제중의 대서원 이외에는 여념이 있을 수 없으며 대서원의 성취를 위하여는 어떠한 수단방법도, 생명까지도 돌보지 않으면서도 묵묵 사부(師父)를 받들고 믿고 그 가르침을 실천에 가면서 뒤따른 9인 선배의 행적은 우리들의 오늘의 생활에 재현시켜야 할 귀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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