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우, 병든 이웃을 위한 무료 대 진료」시내(이리) 곳곳에 세워진 선전탑을 바라보면서 뜻있는 시민들의 마음은 한결 흐뭇하였을 것으로 안다. 이번 대각개교절을 기하여(3월 26일부터 4월 26이라지 1개월간) 교립 원광대학교 학도 호국단에서는 전라북도 일원에 산재하는 무의(無醫) 마을 지역과 도시 변두리의 영세민들을 대상으로 무료 진료를 실시하고 있다. 중앙총부 공익부와 본교 의료기관이 협조하여 이루어진 이번 무료진료는 「가난한 이웃, 병든 이웃」을 위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비록 아직은 미미한 선물이기는 하지만 이 지역사회에 「은혜와 상생의 씨앗」을 심는 작업이 될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이번 무료진료에 참가한 의료기관은 본교 의료기관 외에도 「원불교 의료인 협회」회원기관인 김내과 김외과 강외과 호남의원 인제의원 동아의원(이리 시내 소재)으로 이들은 이리시를 비롯, 익산 옥구 부안 진안 등 5개 지역에서 매우 큰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원광대 부속 한방병원은 지난 3월 이후 2개월간을 무료침구를 계획 실시하여 오고 있고 공익부 직영 원광한의원도 지난 3월 하순부터 총부 인접 마을인 북일동 계문동 주민들에게 임상병립검사 한방침 투약을 실시하였으며 4월부터는 매주 일요일 변두리 순회 진료를 계획 실시해오고 있다. 원광대 의대 부속병원은 지난 3월 하순 익산군 여산면 진료에 이어 4월 11일에는 삼기면에서 내과 치과 진료를 마쳤고 원불교 의료인 협회 팀은 지난 3월 하순 옥구군 임피면에서 외과 정신신경과 치과 등 치료, 350명 투약 1,600명의 진료를 마쳤으나 4월 12일은 부안군 변산에서 19일은 진안군 좌포에서 교당에 임시 진료소를 설치 진료에 나선다. 이밖에도 이리보화당에서 처방에 따른 한약을 무료로 지어주고 있다.
이 정도의 일을 가지고 자화자찬을 한다거나 그 무슨 유별난 일아 하여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떠들지 아니하고 또 필요 이상으로 선전할 것도 없이 스스로 하는 것이요, 조용히 베풀어주는 것이다. 대각개교절의 참 뜻을 더욱 깨닫고 이를 기리기 위하여 의료봉공의 길을 택했다는 것은 진정 그 무엇보다도 잘한 일이요, 앞으로도 이러한 사업은 이번과 같은 특정기간만이 아니라 되도록 자주 베풀어주었으면 한다. 사실 뜻만 있고 보면 이러한 일쯤 못해낼 리도 없는 우리 교단의 저력을 믿기 때문이다. 소위 종교가 베푸는 그 어떠한 일도 물량적 성과를 가지고는 평가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이번 무료진료사업에 있어서는 더욱더 그렇거니와, 다만 스스로 하고 조용히 베풀어주는 데에 말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값지고 소중한 뜻이 들어있다. 베풀어 주는 것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것은 아무래도 한 조각의 마음일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마음이 선행함으로써 너와 나의 마음은 한 가지 근원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그래서 너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 되고 나의 괴로움이 또한 너의 괴로움이 되는 그러한 한 가지 입장에서 그 마음을 서로가 열고 건네주는 일이다. 원불교적 특질이 「무아봉공」이라면, 우리들이 몸소 베풀어주는 모든 일에서 그만한 「덕(德)」은 스스로 나타나기 마련이며 또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가난한 이웃, 병든 이웃-」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오늘날 빈곤· 질병의 문제는 곧 세계적인 병폐로 지적되고 있다. 이 빈곤 질병은 개인에게도 사회집단에게도 나라에게도 다 같이 책임이 있고 나아가서는 인류 공동체의 공동 책임이라는데 그 개념이 집약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 누구도 남의 일이라 하여 외면을 하거나 회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바로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직접 당한 일이며 자기가 헤쳐 나가야 할 저마다의 「업장」이라 하는 것이다. 물론 역사적인 관점에 있어서는 이와 같이 개인주의적인 도덕만으로는 불충분한 것이 있다. 이 질병 빈곤의 문제는 객관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 소위 근대 자본주의나 계급주의 소용돌이의 희생물이라는 데 유의해야 하며 그 제일차적인 원인이 바로 이들 주류에서 오는 필연적 산물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간과할 수 없다. 그래서 오늘날 민주주의니 복지사회니 하여 제법 사치스런 표현들이 나도는 것도 실은 저들의 자기 가책에 대한 일종의 물질적인 보상을 말하는 것이며 다 같이 잘살지 않고 자기만이는 살 수 없다는 상생의 원리에서 저로서는 어쩔 수 없이 내놓게 된 방책이라고 봐야 한다. 가난한 이웃, 병든 이웃을 두고 어떻게 나만이 편안해질 수 있단 말인가? 하여튼 지금은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할 시기가 아니다. 또 그런 것을 따지자는 것도 아니다. 강자는 강자로서, 위정자는 위정자대로 이 빈곤과 질병으로 인한 생활의 악순환을 풀어주고 열어나가는데 스스로 책임을 통감하고 자기 희생저기 취선을 다해야 하며 종교인 또한 자기 종교의 입장에서 동체대비(同體大悲)의 깊은 사랑과 슬픔을 같이 함으로써 은혜와 상생의 이 한 길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의료봉공사업이 비록 한 지역에서 이루어진 적은 일 같지만 진정 세계적인 사명을 자각하고 나설 때 그 보람 그 긍지 또한 한결 크고 새롭다는 것을 비로소 자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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