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 교무 규정」제정에 즈음하여

제86회 임시 수위단회의(3월 12일 중앙총부 회의실에서 개최)는 교단적 현안 문제인 「재가 교무 규정」을 제정하였다. 그간 여러 차례의 공청회와 교단 각계각층의 의견 청취를 진지한 논의와 연구 검토를 거쳐 이제 비로소 공식적으로 제정절차를 끝마치게 된 「재가 교무 규정」의 제정 목적은 「출가 교역자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선교화의 협조 보완, 무연(無緣) 지역과 특수 교화 개척, 그 밖에도 교세 확장에 대비하여 다양한 교역 기능의 개발」에 두고 있다고 수위단회 사무처 당무자는 말하였다.
출가· 재가의 제도는 우리 교단 고유의 창안이 아닌 것은 잘 아는 사실이다. 출가· 재가의 제도적 성격은 이미 저 원시 불교 교단에서부터 발생한 산물로서 우금 2천 5백여 년래의 세계적 통(通) 불교 교단이 이어온 전통이며, 우리 교단에서는 이를 합리적으로 도입, 활용하게 되었다.
제도라는 것은 그 어느 시대, 그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고정관념의 도구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 시대와 그 사회생활에 적응하여 보다 가치 있는 기풍으로 제도적 장치를 넘어서서 앞서가는 진리를 늘 새롭게 창의적으로 자각하면서 그 뜻을 활용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교단의 출가· 재가의 제도적 성격은 너무나도 자명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 교단에서는 출가적 입장을 「전무출신」, 재가적 처지를 「거진출진」이라 규정한다. 이것은 각자의 특징이면서 출세간이나 세간의 궁극적인 목표와 그 이상은 서로의 환경적 경계가 다를 뿐이지, 그 의향성에 있어서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교단의 본질적 구성요소는 물론 「출가적 이상」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출가적 이상은 출자가 본위의 개념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우리 교단은 출가자만을 본위로 하고 재가자를 그 종속으로 삼는 이원 구조적 낡은 요인을 무효화하고 당초부터 문호를 개방하였다. 그래서 출가와 재가는 같은 목적, 같은 진리를 지향하는 하나의 뿌리이면서 저마다 지닌 특징적 가치를 근거로 교단사적 교리사적 발전원리를 통하여 세계를 불은화 하고 인류를 선법화 하는 사명을 다하는데 있어서 상호 보완적 기능이라는 것을 마땅히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어떠한 제도이든 그 제도가 갖는 그 나름대로의 성격이나 의미는 말할 것도 없이 다양하고 서로가 다르다는 것이 사실이다. 시대를 따라 더욱 그런 것이고 장소와 환경 입장에 따라서 또한 수시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제도는 말하자면 「의복」과 같다는 비유에서 그 적성이 주어진 것 같다. 의복은 우선 입은 사람의 몸에 맞아야 하고 철에 맞아야 하며 그 시대와 장소에서도 잘 어울리어야 하는 것이 의복의 가치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의복이라는 것은 외장(外裝)적 형식이지 그것으로써 인격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의복이 지니는 품위는 곧 그 인격의 반영으로서 안팎이 한결같아야 하는 것, 이를 테면 내재률과 외형률의 조화는 궁극적으로 바람직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제도 자체에 집착하거나 제도를 우선하여 거기에 일방적으로 치중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제도적 병폐는 흔히 집착과 일방적 치중에서 오는 것이며, 독단을 배제하고 합리적 보편적인 생명이 거기에서 새로운 질서를 이끌어주어야만 진정 자유 하는 인격의 활동이 보장된다. 자유 하는 인격의 활동을 보장 받을 수 없는 제도는 이미 제도로써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재가 교무에게는 대종사님 재세 시에 이미 실시된 것이 있었으나 제도적으로는 운용되지 못하였다. 출가· 재가 곧 전무출신과 거진출진 공동체로써 이루어진 것이 우리 교단의 실체라고 볼 때 재가 교무 제도는 이제 이질적인 것도 새로운 것도 아니요, 마땅히 그렇게 돼야 할 교단적 사명과 의무에서의 결과이다. 지난번 제정된 「재가 교무 규정」이 아직은 제도로써의 완벽을 기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 제도를 선행하는 진리의 뜻은 이미 드러나 있는 것이다. 이 진리의 뜻에 따라서 우리 교단의 사명인 「제생의세」의 목적을 성취해나가고 이 일을 끊임없이 완수해 나감으로써 이 제도 또한 항상 활성화하여 발전을 기약하는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나가는 우리들에게는 너무나도 할 일이 많다. 자연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국민으로서 또는 종교인으로서 다원화 되어가는 복잡한 삶을 살아나가야 할 우리들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양어깨는 언제나 한결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우리들은 우리들에게 지워지는 짐을 뜻있게 받아들이고 늘 어디에서나 우리들이 할 일을 깨달아야 한다. 아무리 불신의 땅,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도 진리를 일으켜 세워야 하고 선(善)을 붙들어 주어야 하며 은혜와 상생으로 서로가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가야 할 우리들의 사랑을 이끌어주는 교화의 지중한 사명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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