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2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6월 1일, 우리 「원불교 신보」는 창간 12주년의 생일을 맞았다. 사람의 나이로 치자면 이제 겨우 열두 살 째 난 소년인 셈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 원불교 신보는 생리적인 연령의 차이에서 어쩔 수 없이 어리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적어도 12년이라는 연륜은 우리 원불교 신보는 정신연령이라는 것은 자연적 생리의 경험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역사의 나이이기 때문에 그것은 어디가지나 「스스로 하는 뜻」으로 나아갈 수밖에는 없다. 스스로 하는 뜻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물론 그 어디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하는 데에서 결정된 따름인 것이다. 스스로 하는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명이라는 짐이다. 우리들에게 세계적 사명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파악하고 스스로 진리가 안겨주는 짐을 짊어지고 나선 것이다. 사명은 곧 진리가 세계 앞에다 내세우는 명령이다. 이것을 깨닫고 스스로 하는 뜻으로써 이끌어 나가는 것, 지금 우리 원불교 신보의 사명은 이 격동하는 세계사 앞에서 얼마만큼 자라고 있는가. 오늘날 세계적 사명의 자리에 참여하지 아니하고는 그 누구이든 그 어디에도 설 땅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알아야겠다는 욕구나 그의 의지는 결국 무엇을 의미하는가. 「할 일」이 있는 까닭에 살아야 한다. 삶은 곧 명(命)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안 되는 스스로의 하는 뜻이다. 그래서 「쓸 데 없는 존재는 죽음의 존재다.」, 나는 정작 나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찾아내어 거기에다 나의 존재의의를 걸고 나아가야 하는 것, 사명으로 하는 바가 없이는 생존할 자격이 없다. 지금 내가 여기에서 해야 할 일이 과연 어떤 것인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를 바라고, 스스로 하는 뜻으로 만인의 자유를 실현하려면, 인류공동체의 한 무대에 올라가서 여기에서 다 같이 해야 할 일을 맡는 것이다. 세계적 사명으로 나에게 주어지는 일이 곧 내가 할 일이다.
역사라는 것은 인류 자각의 반향이라 할 수 있다. 인류의 자각적 진화의 행진이 오늘날 이렇듯 여기에까지 이르게 된 데에는 생물은 생물대로, 인류는 인류의 나아갈 길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희생적 대가를 치루어왔다. 이리하여 「하나의 세계」를 지행하여 나아가야겠다는 「인류 공동체 의의」의 발달은 어느 한 민족이나 어느 한 나라가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마치 한 바다가 많은 시내와 계곡, 여러 강과 여러 갈래의 지류가 한 데로 합류하여 되었듯이 잡다한 가지가지 계통의 사회적 요소와 문화적 성향이 뒤섞이고 어우러져 가지고 서로 작용하고 영향을 주어 마침내 종합되어진 것이어서 마침내 그의 저력은 한 없이 솟는 것이며, 그의 파장은 또한 끊임없이 번져가는 것이다. 사회나 문화만 그런 것도 아니다. 실은 개인의 심신, 인격, 개성마저도 그 어느 하나 개재독존(個在獨存)인 수 없다. 여러 종족의 여러 가지 혈통과 복잡한 유전 성격 등의 얼키고 설켜서 개인으로 나타나고 거기에서 인격으로도 형성되는 것이다. 우리의 인격이라는 것도 이렇게 따져보면 결코 순연한 것이 못 된다. 그것은 결국 복합적 특질을 떠나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살았다 하는 것은 삶의 뜻을 발견하고서야 비로소 긍정하는 것이다. 인류가 갈라설 수 없는 하나의 공동체임을 깨닫고서야 개재적 독자성을 알고 다른 모든 존재를 이해할 수도 있으며 바로 나의 이 한 몸으로 전체를 대표할 수도 있다. 삶의 뜻은 그야말로 전적인 것이다. 이기적, 개인적인 것은 이기적 개인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전적인 삶의 뜻대로의 힘을 가지지 못한다. 진리의 뜻을 이 전적인 삶, 그 전체의 뜻을 대표하는 진리이다. 사명이라는 그 명(命)을 내리는 자는 전체의 뜻을 대표하는 진리이다. 내가 살기를 요구하고 스스로 하는 뜻으로 자유하기를 바란다면 그 전체의 뜻과 내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 세계적 사명으로 나의 할 일을 하여야한다. 내가 세계적 사명으로 일을 한다는 것은 전체에 대하여 사랑으로 봉공(보은) 함이다. 그러므로 세계적 사명 없이는 한 시도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 세계는 걷잡을 수 없이 격동하고 있다. 지역과 전통과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와 강대국과 약소국 등 집단이기주의의 갈등으로 빚어진 이 종말적 투쟁으로 인하여 인류의 평화를 기약하는 그의 공동이상은 아직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와중에서 나타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것은 세계적 사명이 결여된 데에서 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들이 마음에 인류의 공동 이상이 비치고 진리에 대한 사랑이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불붙을 때 비로소 집단이기주의를 목표로 거침없이 내닫는 물질문명이 마침내 허상임을 스스로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적 사명의 자각이야말로 우리들을 재생시키는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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