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불교인의 죽음
지난 5월 어느 날 서울 정릉의 초라한 판자 집에서 60여세의 한 남자가 세상을 떠났다. 인간의 죽음은 상도라 한 인간의 죽음을 그렇게 슬퍼할 것은 없다. 그러나 낡은 판자 집에서의 어느 죽음은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는 한때 교육계에서 또 행정계에서 국가에 상당한 공헌을 한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한 때 이름이 잘 알려진 불교인이었고 한국불교와 중국불교의 유대강화에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의 업적에 비해 그의 죽음은 너무나 초라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그의 장례식도 초라했다. 이는 그의 평소 생활태도가 불러들인 결과이기는 하겠으나 한국의 불교인으로서 반성할 점이 없지도 않다. 그는 재승한 사람이었고 한국불교의 국제화에 대한 의욕이 너무 컸다. 그래서 그는 불교계의 한 종단에만 철저하지 못했고 몇 개의 종단에 동시적 관계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로 그는 한국 불교계의 세계시민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버림받은 고아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한 종단에 철저하지 못했던 그의 태도는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로 하여금 불교계의 고아로 만든 책임이 불교계에도 다소는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불교계의 아집과 배타성, 거기다가 파당성 등에 그는 환멸을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종교의 근본자세는 한 인간도 버리지 않고 다 제도하는 데 있는 것이다.
원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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