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고받는 사람 궁극적으로 누군가-

「사회복지법인 삼동회」가 지난 6월 29일 보건사회부의 인가를 얻어 정식으로 발족되었다. 이미 다 아는 바와 같이 사회복지법인 삼동회는 사회복지를 목적 사업으로 펴나가는 정부의 공인 법인체이다. 그 정해진 사업 종별 내용은 노인 복지 시설의 설치 운영 및 그 유지 관리와 성인 불구시설의 설치 운영 및 그 유지 관리 그리고 보육원 어린이집 탁아소 설치 운영 및 그 유지 관리 외에 사회 복지 구현을 위한 기타 사업으로 되어 있다. 삼동회는 교단의 기존 자선 시설인 신룡 전주의 두 양로원과 이리 보육원을 기간(基幹) 사업 기관으로 하고 있다.
우리 교단은 초창기부터 교단 3대사업의 목표를 설정, 진행하여 왔다. 오늘날 잘 알려진 교화· 교육· 자선이 그것이다. 교화의 기틀은 이미 원기 9년(1924) 원불교의 전신인 불법연구회의 창립과 함께 이루어지기 시작하였고 교육과 자선의 터전은 원기 30년(1945) 일제로부터의 해방 직후 전재 동포 구호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인 데에서부터, 그리고 바로 이듬해인 원기 31년(1946) 유일학림의 개설로부터 각각 그 초석이 놓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우리 교단 자선사업은 그의 30여 년의 성장사 속에서 이제는 이 세상과 더불어 없어서는 안 될 사회 공동체로서의 그만이 누리는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오늘날 우리 교단 산하의 자선사업은 다른 교화나 교육 사업과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여 같이 발전하여 왔는가 하면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선 사업 자체의 평가기준이나 그 비중이 이와는 낮은 것에서 원인이 되어진 것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교화나 교육이나 자선의 궁극 목표는 사실상 일체요 동심이라는 것이다. 종교의 바른 사명으로 진리가 하는 뜻에서 일으키는 일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상황이 다를지언정 베풀어주고 기여하는 그 마음이 조금도 다를 수 없다 할 것이다. 오로지 주는 마음은 평등성이요 사랑이어야 하는 까닭이다. 그러면서도 종교는 사회사업이 아니라는 것, 사회사업과 혼돈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사회사업을 종교의 전체 기능으로 간주하는 의식의 경향은 지양되어야 한다.
교단에서 하거나 사횢인 종교인이 하거나 그 누가 하든간에 사회사업 또는 자선 사업은 개인이 아닌 사회를 대표해서, 평상의 심리를 훨씬 넘어선 자선(慈善)이라는 특수한 행위를 통하여 주어져야 되는 체계를 무시할 수가 없는 상황이어서 자칫 잘못하면 알게 모르게 위선을 뒤집어쓰기 일쑤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주는 측의 태도와 받는 입장의 자세에서 빚어지는 갈등에도 정녕 기인하는 것이지만, 근원적으로는 거기에 반드시 깔려졌어야 할 기초적 도덕이나 윤리의 성향이다. 말하자면 그 베풀어주는 자가 그 누구이든 간에 반드시 받는 자의 처지에서는 상대를 의식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받는 자는 주는 자의 배경에서 무엇인가를 읽고 있다. 빼앗기는 심리와 갖고 누리는 철학의 대립에서는 아무 것도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약육강식이 자행되는 생존 경쟁 사회의 순환론 그 흐름부터 일단 맑혀지지 아니하고는 사회사업이고 자선사업이고 하는 것은 한낱 허위의식으로 빚어진 위선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갖고 누린다는 소유 내지는 탐욕의 개념 그의 가치관부터 근본적으로 다라지지 않는 한 사회도 교단도 향상되거나 새로워지는 것이 없겠다.
지금 우리 교단이 벌이고 있는 사회사업 또는 자선 사업은 일반적 통념을 극복하는 차원 높은 이념에다 뿌리를 내려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들에게는 스스로 제생의세라는 세계적 사명이 지워지고 있다. 우리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지침에서는 교화· 교육· 자선 그 어느 방향에서든 제생의세의 이 역사적 경륜이 펼쳐져야 된다. 주는 사람 받는 사람이 궁극적으로 누구이며 어디에 따로 존재하겠는가. 다 같이 이룩하여야 할 평등세계의 바탕 복지사회의 열매는 바로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서 성숙되어오고 있다. 오늘날의 교단과 모든 종교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여야 하겠는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주는 자와 받는 자의 이분법적 등식으로 갈라놓고 분열시켜 놓은 이 세기적 처참한 악법을 마땅히 종교는 이를 수용하고 용해할 줄 알아야 하며 진리의 이 한 길 열어 저마다의 마음속에서부터 복지의 터전이 펼쳐지도록 이끌어주어야 함은 물론이다.
특정한 사회사업이나 자선 행위가 없어져도 무방한 전체 복지의 낙토(樂土) 세계를 위하여 우리들은 오늘 땀을 흘려야 한다. 물질 위주로 복지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공도정신이 골라져서야 평등사회가 이룩되며, 투쟁 위주로 평화가 달성되는 게 아니라 은혜를 서로 느껴야 참다운 평화세계가 이루어지는 진리를 모두가 깨닫고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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