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한 인간상 정립에 기여를

 5월은 종립 원광대학교의 개교를 기념하는 원탑제가 있는 달이자 청소년의 달이기도 하다. 전자가 교육하는 기관의 창설을 기념하는 축제인데 대하여 후자는 요즘 날로 시끄럽게 문제화되어가는 청소년들을 선도하자는 뜻이니, 그 성격은 다르나 일맥의 공통점을 가진 두 행사가 있는 달이라 하겠다. 종립대학교에서 실시하는 그 교육의 힘은 그것이 크면 클수록 청소년 달의 목적자체를 변경시켜 놓을 수도 있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청소년이 가져야 할 태도와 이에 대치하는 우리의 태도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대범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자유로운 생활에 대하여 아무런 외부조건이 간여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자유롭다는 개념에 있어서도 무정량의 자유, 아무런 교화조건이나 부담 없는 자유를 희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회적동물이라는 성격 때문에 원만한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제약을 거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의 개인적 이익이 존중되어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공동사회에 있어서는 공동 이익이 개인적 이익보다 우선해야 함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개인적 이익을 공동 이익보다도 앞세웠을 때 개인적 이익과 공동 이익은 공히 손상을 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청소년의 달이 마련되고 연례적으로 청소년선도가 강조되는 것은 오늘날 일부 청소년들이 현장에 대한 불만과 저항을 내세우면서 그들만의 가치기준을 들고 나와 기성질서에 대하여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청소년만의 자유분방을 시도하면서 인간의 행, 불행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결과로서 청소년 자신의 이익과 인류전체에 대한 이익을 손상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것은 아직 청산되지 않고 면면히 계승되어 있는 전통적 가치관을 혈기를 이용하여 급진적으로 전복하려는 데서 온 무리와 갈등으로 생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전통적 관습이나 관념이 무한한 세월에 타당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양면성을 지닌 가치 관념을 급진적 또는 저돌적으로 번복시켜 놓는다 하더라도 반드시 구질서에 대한 미련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이를 통제수단에 의하여 억지로 유지한다 해도 그 생명은 극히 짧은 것이 되고 만다. 청소년들이 기성세대에 대하여 관념이 경험의 연속에 대한 단절을 강요한다 해도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일반대중의 뿌리 깊은 감정이나 향수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이나 지구적인 효력을 얻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청소년들이 갖고자 하는 질서는 기성질서에 대한 점진적 개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어야 하며 현 질서를 초월한 별세계의 것이어서는 신구질서의 충돌에서 오는 공동 이익의 손상만을 남기고 만다는 것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편 기성세대는 통일성 있는 교육의 방향을 확립해야 한다. 현대교육이 옛날의 사숙과는 달라 1인의 영향 하에 피교육자를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교육자의 손을 거쳐 1인의 피교육자가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의도적인 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학교교육만 하더라도 교육관조차 각양각색인 수많은 교육자의 손을 거치면서 시대 따라 환경 따라 또는 교육자에 따라 상이한 교육을 하고 있으니 피교육자에게 신념에 찬 어떤 인간상을 심어주기란 참으로 힘 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피교육자는 교육에 대한 사회의 논의를 상식적 피상적으로 흡수하여 자기를 교육하는 교육자의 교육방법을 비판하고 있으니 혼란과 불신은 더욱 고조되어 가고 만다. 다행히 종립교육기관은 확고한 교육이념과 동요되지 않는 교육방침으로 선명한 인간상을 정립, 이에 도달하기 위하여 매진하고 있으니 이 속에서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을 기대해 마지않는다. 청소년의 달에 영향력 큰 교육의 힘을 발동하여 바람직하게 성장한 무수한 인재가 이에서 배출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