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자연으로 돌아가자.

이제는 완연히 가을이다. 그렇게도 기승을 부리던 더위가 시나브로 그 끈질긴 거동을 거둬들였다. 이 소슬한 가을을 위하여 지난 한여름은 무척이나 찌고 태웠던가 싶다. 아침저녁으로는 서늘바람이 일고 있다. 하늘은 점점 높아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뭇잎과 풀끝에 맺힌 아침이슬을 저윽히 눈여겨보는 순간, 이내 한 떨기의 청정심과 부딪는다. 이만한 범연한 일상에서도 마음은 정녕 숙연해지기만 한다.
9월 중의 절기를 보면, 8일이 백로 12일이 추석 그리고 23일이 추분이어서 좀 있으면 만가을의 숨결이 열려오는 것을 볼 수 있겠다. 춘하추동 사시의 절서(節序)가 우리나라처럼 분명한 곳도 없다고들 한다. 그 중에서도 가을은 세계적으로 일품이라는 것이 또한 세계의 나그네들이 이구동음으로 전하는 정평이기도 하다. 「춘유백화 추유월 하유냉풍 동유설(春有百花 秋有月 夏有冷風 冬有雪)」이라 할 만큼 그 계절마다에는 그 철에 알맞은 조화와 특색이 있다. 그래서 모두 다 아름답고 쾌적하고 하여 싫은 것이 없고 버릴 것이 없는 것이 이 강토의 자연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어진 환경은 그렇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다. 지금 우리들에게는 그렇게 안정된 처지에서 즐기며 찬미할 수 있는 자연도 정신적 여유도 누리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농경사회에서 산업화 과정으로 이행한 지 작금의 일이건만, 그 성장세가 급진적으로 나아감에 따라서 그 중에서는 얻은 것이 없지 않으나 참으로 소중한 것을 잃어가고 있다. 말하자면 생명의 터전이 부식돼가고 있고 마음의 고향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어디에서나 듣고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마음의 고향 생명의 터전 아니고는 한 시도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 인간이면서도 인간의 이기적 탐욕은 마침내 마음의 고향을 저버린 결과를 불러왔다. 그리고 물질주의적 고도 산업화의 물결은 급기야 생명의 터전, 자연의 생태를 빼앗아 가고 있다. 온갖 인간의 노력도 경제성장도 궁극적으로는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어떠한 형태의 이기적인 의지나 자연 정복적 성장의 과정도 결코 자신을 위해서 남을 위해서 사회전반을 위해서 또는 미래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말살하는 종말을 자초하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가을은 우리들 인간으로 하여금 무언가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들은 인간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이다. 되돌아 볼 줄 알고 멈출 줄 알며 생각할 줄도 안다. 생각하고 멈추고 되돌아보는 시간이 가을이 마련해 준 자리이기도 하다. 아무리 숨 막히게 바쁜 줄달음침도 여기에 일단 멈추고 쉬어서 무한한 미래를 위하여 전체를 되돌아보고 보다 높은 창조와 보다 뜻있는 개발 성장을 위하여 진정 그 마음을 크게 비워버리기도 하고 크게 생각을 굴리는 여유와 지혜를 성취해야 할 것이다.
성장 개발의 결과만을 향한 일련의 의욕에 몰두하고 부심(腐心)하는 버릇을 여기 돌려서 우리들은 대자연으로 돌아와 이제 무너져 가고 있는 자연과 그 아픔을 함께 하며 생명에 대한 두려움과 은혜를 깨닫는 원초적인 공부와 자연을 보존하고 회복하는 문제에 뉘우침이 있어야 하고 깊고 원대한 계획을 차분히 세워나가야 한다. 그만한 개발과 그만한 성장을 통하여 얻고 누리는 것이 있다면 이에 그 보본에 대한 열의와 그 적극적인 작업도 아울러 뒤따라주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이다. 만일 그 이익이니 결과만을 취하여 가는 것으로 목적을 삼아 근원에 대한 보은의 도리를 망각하게 될 때 천지는 배은을 한 인간들에게 그만한 책벌, 호리도 위차 없는 인과로써 응징할 것이다.
자연과 인생을 나눠서 볼 수 없듯이 우리들의 생명의 터전, 마음의 고향도 서로가 떨어질 수 없는 하나다. 생명의 터전을 터나 마음의 고향이 있을 리 없기에 마음의 고향은 곧 생명의 터전이다. 이 생명의 터전, 마음의 고향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터이다. 대 자연은 그만큼 무시광겁으로 순환을 거듭하여 왔고 또 그것을 계속하고 있다. 이것이 끊임이 없는 무한의 숨결이다. 이 무한의 숨결이 곧 우리들의 자연이자 우리들의 생명인 것이다. 이와 같은 진리의 뜻으로 비추어 볼 때 이 천지 만물 일초일목과 저 영장인 인간으로부터 하루살이 벌레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한 구석 그 어느 한 티끌도 저 헤아릴 수 없는 은혜와 또 저 헤아릴 수 없는 생명의 공동체 아닌 것이 없다 할 것이니, 여기에서 우리들은 일체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그 일거수일투족이 마침내는 여기 대 자연과 대 생명의 진실을 자각하고 저마다 자기로부터 전개하는 모든 삶의 내용과 그 방향이 모름지기 보본과 보은의 길이 되어주어야 할 것이다.
일상적 타성으로 인하여 이 가을을 그저 흘려보내어서는 안 되겠다. 우리들은 대 자연으로 돌아가서 잃어져가고 있는 우리들의 소중한 생명의 터전, 마음의 고향을 회복하는데 일과를 정하고 보다 충실하고 보람 있는 내일을 위하여 마땅히 예비하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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