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은 문화의 달이다. 계절적으로 10월은 만가을이라 추수철이어서 한 해의 결실을 축복하는 기쁨도 감추지 못하려니와 서리 찬바람 속의 조락(凋落)을 바라보면서 깊은 사색에 젖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하늘은 드높고 물은 맑으며 대기는 상량하기만한 가을이다. 여기에다 또한 10월은 개천절과 한글날이 들어있어서 우리네의 종교와 문화의 시원적 향기를 가득화 담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들은 종교와 문화에 대하여 한 번 생각해보기로 하자. 종교와 문화는 원래 하나라고 보아야 한다. 말하자면 종교 자체가 곧 문화라는 것이다. 종교는 문화의 종극적 창조이며 표현이었다. 그래서 문화는 「종교문화」였다. 이럴 정도로 종교와 문화는 밀착돼 있다. 뿐만 아니라 종교로서도 종교 진리의 상징이나 생활화 구원의 실현이 문화라는 방법을 통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종교 안에서의 「문화관」이지 종교 밖에서의 문화는 이와는 정반대의 입장이다. 종교를 문화사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통례가 바로 그것인데 종교의 문화냐 문화의 종교네 하는 것은 구태여 따질 필요조차 없다. 어찌됐던 간에 종교와 문화는 서로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가 없게 된 사이이니 말이다.
모든 종교인이 향유하는 신앙과 수행의 차원 높은 정신생활이 예술적 가치에 의하여 창조된 것을 우리들은 일단 종교문화라 규정할 수 있다. 종교 미술 종교음악 종교문학을 위시하여 종교 연극 무용 영화 조각 공예 건축 등 종교의 궁극적 자비와 사랑의 정신이 젖어있는 종합 작품이 발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종합작품이 저마다에는 자기 종교의 특징이 새겨져 있고 다 같이 진리의 뜻이 깃들어있다.
이렇듯 종교문화는 어디까지나 종교문화일 수밖에 없다. 오늘날의 관능적 향락적 이기적 병폐적 욕망을 자극하고 이를 충족시키려드는 세속적 문화, 그 속성이라 볼 수 있는 찰나적 단절적인 취향을 넘어서서 그것은 오로지 초연하면서 자재하는 영원성의 바탕에서 아름다운 생명의 실체로 끊임없이 소생하는 현존적 가치를 또한 무한한 이 시간적 질서를 통하여 베풀어주는 것이다. 문화가 찰나적 단속적(斷續的) 가치를 지양하고 종합적이며 연속적 생명을 지향하는 것은 문화가 곧 종교와의 공통성을 갖는 증거다. 문화가 추구하고 창조하고자 하는 모든 성능이나 일체의 실상이 다름 아닌 종교 그 자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종교와 문화 이 양자는 진리를 펴나가는 그 전달의 기능과 진리적 문화를 형성해 나가는 창조적 기능을 통하여 동시적으로 서로가 일치하며 종교· 문화의 향상 발전을 위하여 다 같이 기용(機用)하며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현실은 어떠한가. 종교와 문화의 거리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버렸다. 그 이유는 여기에서 말하지 않더라도 다 아는 일이지만 이것은 참으로 인간의 비극이 아닐 수 없는 노릇이다. 인간은 정신적 주체를 잃고 이제 무력해져가고 있으며 이러한 인간상실의 상황에 있어서 종교의 존재는 솔직히 말하여 불안의 상태를 못 벗어나고 있다. 오늘날의 종교나 문화는 지나칠 정도로 물량화 되어가고 있다는 현실적 비판에 대하여 누구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종교· 문화가 물량화 하는 데에 따라서 종교· 문화 본연의 생명 기능은 폐쇄적인 수밖에 없고 종교· 문화의 생명 기능이 폐쇄될 때 그 존립 자체는 부조리와 불안을 못 면하는 상태에서 방황하기 마련이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이 새 시대의 슬로건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 되는 뜻, 그 하나 되는 정신이 마침내 살아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 하나 되는 뜻 그 하나 되는 정신이 소재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것은 영과 육의 쌍전이며 일과 진리의 병행이며 물질과 정신의 조화 병행이며 종교와 문화의 조하이며 종교와 문화의 일치이며 인류 공동체의 완성, 그러한 자각에서 용솟음치는 새로운 생명 새로운 활력 새로운 진취 또한 이러한 정신개벽의 근원적 바탕이 아니고서는 그 참된 회복을 기할 수 없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인류의 역사에서 볼 때 인류는 언제나 불안 공포와 고독 절망에서 방황하여 왔고 동시에 인류는 이와 같은 순환적 숙명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죽을 힘을 다하며 살아왔다. 인류의 역사는 저 종말론이 시사하는 것처럼 말세적 윤회를 되풀이해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여온 희망의 행진, 그 힘찬 발자취였다. 어쨌든 불안과 공포 절망에서 허덕이는 중생을 위하여 종교나 문화는 그 구제적 사명을 다하는 것으로 사랑과 진리의 등불이 되어 주어야 하며 더욱 개벽되는 새 시대의 참신한 정의의 힘으로서 그것은 끊임없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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