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고는 살아날 수 없다.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이제 또 한 해를 결산하게 되는 이 마당이다. 매사에는 그 원인이 있음으로써 그 결과가 있듯이 예산이 있고서야 결산이 있게 마련이다. 이 예산 결산은 절차상의 일로써 의례히 끝낼 수는 없다. 생명으로 영위하는 한, 인간은 달라지는 것이며 성장하는 것이다. 달라지지 않고는 자라나지 않는다. 생명의 본질은 달라지는데 있고 자라나는 데 있다. 살림살이에 있어서 예결 행위라는 것도 물론 당연하고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정신생활에서의 예측과 출자라는 것은 생명의 진화에 대하여 그 힘의 원천으로서 길을 열어주는 계기가 된다.
「현실 생활의 예산 결산과 수도생활의 예산 결산은 그 수입 지출을 대조하는 기준에 다른 일면이 있으니, 현실생활에서는 현실적 수입이 많아야 그 생활이 윤택하고 편안할 것이요, 진리 면에 있어서는 현실적으로는 손실이 볼 지라도 진리적 저축이 많아야 영원한 세상에 볼록이 유족한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수지의 참뜻을 알지 못하고, 어떠한 술책으로든지 다른 사람을 속여서라도 우선 당연한 수입만을 취함으로 이는 마치 빚진 사람이 더욱 채무의 구렁이로 들어가는 격이라 어느 세월에 그의 앞에 복록이 돌아 오리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수지의 바른 길을 알아서 자리이타의 정신 아래 현실적 수지도 잘 맞추려니와 마음과 말과 행동으로써 늘 남을 더욱 이익 주며 날로 달로 참다운 수지 대조로써 한량없는 복전을 개척하여야 한다.」
(정산종사법어 무본편 49)
우리들은 정신생활에서나 모든 일상의 생활에서 과연 정당하게 살아왔는가의 여부에 대하여 진정으로 돌이켜봐야 할 때다. 어떻게 정당하게 살아왔는가? 어떻게 부정당하게 살아왔는가? 마음과 말과 행동으로써 얼마만큼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회를 위하여 이익을 주고 봉공하여왔는가? 오로지 남을 이익 주는 것으로써 살지 않은 것은 진실하게 산 것이 아니요, 정신에 있어서 예측이 없는 생활은 영원한 생명으로의 향상을 기약할 수가 없다. 내가 진실하게 살고 더욱 잘 사는 길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얼마나 진실하였고 사랑과 선의를 다하여 살아주었는가에서 열려오는 것이다.
하물며 종교인은 누구인가? 정신과 육신 물질을 온통 다 바쳐서 저를 잊고 중생을 화익한다는 여기에 종교의 그 전면적인 존재 의의가 있다. 더욱 한 걸음 나아가서는 「불보살은 함 없음에 근원하여 함 있음을 이루게 되고 상 없는 자리에서 오롯한 상을 얻게 되며, 나를 잊은 자리에서 참된 나를 나타내고, 공을 위하는 데서 도리어 자기를 이룬다.(有爲爲無爲 無相相固全 忘我眞我現 爲公反自成)」하는 차원을 지니는 자다.
그러나 오늘날의 종교인은 결코 그러한 차원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못 되었을 뿐 아니라, 도리어 훌륭한 세속인보다는 비교도 안될 만큼 성과 속이 뒤바뀔 정도로 엄청나게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이 얼마든지 종교라는 짙은 그늘 속에서 도사리고 있다. 이네들은 제법 큰소리로 감히 중생이라는 호칭을 남용하며 「참회」하라고까지 외치는데 과연 누가 누구를 향하여 할 소리인지 모를 일이다.
과연 이 세상에 참회하는 종교 행위가 있다면 그것은 마땅히 오늘날 죄 많은 종교인으로 부터서 스스로 행할 것이다. 종교인은 진정으로 이 진리 앞에서 이 중생 앞에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자기 앞에서 자기의 위선을 돌이키고 집단이기주의를 진리인양 변장하여 독선과 이기로 오만불손해 버린 중죄를 진정 참회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이 세상에 진리· 정의 평화라는 것은 한낱 거짓 구호로서 세상을 기만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참으로 진리와 정의· 평화의 새 면목을 증거 하기 위해서 낡은 종교의 그 어둔 그림자는 당연히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진리와 정의, 평화의 상징이 곧 종교여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물질의 노예, 기술 사회의 노예가 돼버린 종교, 세속의 뒷전이나 기웃거리며 뒤따라 다니는 종교, 이 세상을 전쟁의 불길 속으로 이끄는 종교가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다. 입으로는 그렇게도 똑똑하게 진리, 정의, 평화를 부르짖으면서 하는 일은 자기중심의 독선과 이기주의의 전쟁행위이니 과연 그 누가 이러한 종교를 진정 자비와 사랑의 그 산 품으로서 신뢰하고 맞이할 것인가. 지금까지도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역전쟁치고 종교전쟁 아닌 것이 없다니 그 누가 이 싸움을 과연 그 어떠한 명분으로 말하고 그치게 할 것인가? 우리나라의 종교 인구가 전체 인구의 80%에 가깝다고 하는데 이는 놀라운 숫자이다. 이러한 종교인구가 정말 자각이 있는 의식적 종교집단이라면 시급한 의식 개혁이 있을 법한 일이라는데 의심할 여지가 없다. 지금은 일체가 참회해야 할 때다. 우리 모두가 다 탐· 진· 치의 죄인으로 참회하는 것이니, 뜨거운 참회가 없이 새 생명으로서의 거듭 남은 바랄 수도 없다. 일체의 종교가 참회하지 않고는 참된 종교, 진정한 평화는 탄생될 수 없다. 참회는 참으로 죽는 일이며 참으로 죽지 않고는 참으로 살아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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