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은 매 36년을 1代로 하여 교단발전단계를 설정한 전통에 따라 교단창립 제3대를 시작하는 첫해입니다. 본사에서 3대를 여는 뜻 깊은 원기73년을 실질적인 책임과 학술적인 책임을 담당하고 있는 6인 선정, 교단 3代를 맞이하는 현싯점에서 각 분야별로 과제와 전망들을 들어보는 특집을 꾸몄습니다.   
박장식(법사ㆍ수위단 중앙단원) 류기현(법사ㆍ원광대 대학원장) 김인철(법사ㆍ교정원 부원장) 심도정(교무ㆍ원광대 교수) 양현수(교무ㆍ원광대교수)


올바른 信仰을 확립
▲박장식법사= 개교정신하면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정신문명의 굳건한 기초위에 찬란한 과학문명의 꽃을 피워서 평화 안락한 세계를 건설하자는 뜻이 대종사님의 뜻이라 생각합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사리연구를 통해 진리와 사물을 같이 통달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대신심 대봉공 대단결 근검절약 이소성대 이러한 정신이 대종사님께서 우리에게 끼쳐주신 거룩한 유산이며 우리교단이 앞으로 길이 계승 발전해갈 창립정신입니다.
불교에서는 무변중생을 제도하자는 서원아래서 한량없는 법문을 배워서 무량불도를 이루자는 것이 사홍서원이죠. 우리의 목적은 재생의세 아닙니까. 3대의 방향이라고 할 때 여기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재생의세의 서원아래 일상수행의 요법을 암기하고 좌선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일상수행의 요법을 그저 읽고, 하나의 형식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모두 반성해야합니다.
앞으로는 교단적으로 일상수행의 요법 강조 월간을 설정해서 1조는 1월에 2조는 2월에, 이런식으로 9조까지 강조 월간 설정하여 그때그때 예회를 통해서 연마해 간다면 우리가 대종사님의 크신 뜻을 받들어 나가는 길이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10월이나 11월은 일상수행의 요법 9조에 대한 실행여부를 반성하고 일원상에 대한 진리연마를 하고, 12월 달에는 새해부터 실행해 나갈 것을 계획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일상수행의 요법은 자타력을 병진하자는 것이죠. 공부의 요도 3학8조는 자력적인 수행이라 할 것 같으면 사은은 타력적인면 사요는 자타력을 모두 겸전해 나가는 이러한 면으로 볼 때 자타력 병진에서 내외가 쌍전하고 안으로 내 자신과 밖으로 이 사회가 함께 아우러져 나가자는 것이 일상수행의 요법이 갖는 근본정신이라 생각을 합니다.
총부와 지방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총부가 더욱 내실을 기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단으로 말하면 경제적인 기초도 대단히 중요합니다만,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재입니다. 사람보다 소중한 것은 없죠.
일전에 우리나라의 큰 기업가 이병철 회장이 열반했는데, 그분은 오늘의 삼성그룹을 인재위주와 실적위주로 성장시켰다는 애기를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인재양성이 가장 절실히 요청되는데 인재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대단히 중요한 문제지요. 또 우리 전무출신은 자기가 재직할 동안만 책임이 있다는 생각보다는 일생을 통해서 교단에 책임을 진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교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앞으로 여생을 어떻게 이 교단에서 책임을 질 것인가. 제가 원의원에 있으면서 나는 호강을 하고 있는데 다음에 온 분들은 어떻게 우리 교단에서 책임을 질 것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합니다. 조계종을 예를 들면 승려 몇분있고 재가교도를 활용하니 뒤 책임이 없다고 그래요. 과거 총부에 있을때 보면 사람 몇분 없었지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앞으로 총부에서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할 것인가. 너무도 다급한 오늘의 실정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교당에서 자선기관과 교육기관을 운영해야 하지만 원체 형편이 없으니까 사람이 가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저는 이렇게 생각해봐요. 현재는 정부의 지원아래 운영하면서 많은 발전을 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것이 오래 갈 것이냐를 생각해 볼때 앞으로 혼란기가 온다든지 해서 경제적인 큰 어려움이 온다면 국가에서 어떻게 뒷받침해줄수 있겠는가 정관에는 교단에서 투자하여 자선기관과 교육기관을 설립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실제 그렇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편 기강확립이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데 우리는 종교기관이요 도덕을 항상 앞세우기 때문에 교단에서 제일 어려운 문제가 앞으로 어떻게 기강을 확립할 것인가, 사회와 우리 교단은 다르지 않느냐, 이는 아까도 언급이 됐습니다만, 위에서 뜻하신 바가 아래에 잘 전달되고 아래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위에 잘 전달될 수 있는 이런 체제가 되어야 합니다.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어려운 문제들이 앞으로 우리 교단의 큰 문제가 될 것 같고, 아까 교화부장께서 교재에 대한 말씀을 해주셨는데, 특히 3대를 향함에 있어서 다각적인 면에서 유년교재나 청소년과 장년교도를 위한 교재 특히 외국인 교화를 위한 교재를 3대에는 꼭 발간해서 활용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교도수효에 있어서 많은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출가는 현재 상당수 증가되어 가는데 재가교도 수효에 있어서는 너무나 미약한 상태에 있지 않느냐. 일전에 시내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서 식당엘 갔는데 그곳에 선화도와 선에 대한 글씨도 있고해서 주인 되신 분이 불교에 관계가 있는가해서 물어보니 자기는 절에 다니지만, 글자를 배우지는 않았다고 해요. 그래서 원불교를 아느냐고 했더니「원불교는 어려워서 못 다닌다고 하데요」이런 애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주 단적인 것입니다만, 우리는 훈련을 너무 강조해서 그런 면을 모두 흡수하지 못한 면도 있지 않겠는가. 저는 이런 면을 언듯 생각해보면서 우리가 재가의 훈련법과 출가의 훈련법을 잘 고려해서 여하하튼 3대에는 재가 출가의 수효를 확보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를 창출해서 저변확대를 도모해야할 것이며, 교화나 교육기관의 효율화라고나 할까. 가령 보화당을 예로 들면 각기 다른 기관을 모체로 운영하고 있는데 같은 관리체계하에서 통합 운영되어야 하며 신용금고 같음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총부에서 해야 할 일은 지방교구에서 대신하여 효율적으로 운영해 나가는 교화 활성화방안을 제시해줄 수 있어야 할 것이며 총부와 지방간에 적극적인 합력교화의 방향을 모색해야 될 줄 압니다. 그리고 아까도 언급이 됐습니다만, 불교와의 관계에 있어서 대종사님 당시와 지금과 너무도 거리가 멀어졌지 않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불교정전이라해서 당시의 교리도를 보면 지금의 교리도와 대동소이합니다만, 그때에 부처님하면 법신불이 참 부처님이시다. 또 禪하면 무시선이다.「육근이 무사하면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양성하며 육근이 유사하면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양성하라」이렇게 분명히 말씀해주셨거든요. 정할 때의 좌선과 동할 때의 무시선을 겸전해 나가는 것이 우리 선인데 특히 외국교화에 있어서는 선을 하지 않고는 도저히 교화할 수 없는 실정에 있는 것도 많이 보고 왔습니다. 대종사님의 일원대도 특색이 무엇입니까. 정할 때의 선과 동할 때의 선 이것을 우리가 참으로 중지해야하고 또 불공하면 음식 등을 올리고 그 앞에 기원하는 것으로 아는데 대종사님께선 사은밑에다 처처불상 사사불공 보은 즉 불공이란 말씀을 하셨거든요. 제가 대종사님께서 교리도 만들때 그랬지요. 처처불상 사사불공이 있으니까 위에다 따로 그렇게 하실필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아 위에 사은이 있고하니, 보은 즉 불공이란 이 말이 얼마나 중요한 말이냐」고 하신 말씀이 지금도 귀에 쟁쟁합니다. 이처럼 소중한 것을 예회시간에 설교하는 것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실천과제로 삼고 대종사님께서 깨우치신 그 진리의 본체자리가 법신불진리라 하는 것을 누구나 수긍하도록 해야 합니다. 입으로만 우리가 주세불 주세불해서 대종사님께서 주세불이 될 수가 있겠는가.
대종사님 당시에 제일 많이 말씀하신 3학8조 사은사요요 다음에는불교의 혁신에 대한 말씀을 가장 많이 하셨습니다. 우리가 일원대도와 UR운동과 세계평화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재생의세를 위해서는 교운융창 세계평화가 우리교단의 모토가 돼야지요. 평화운동을 전개한다면 우리가 안으로 3독심을 제거해 마음의 평화를 이룩하고 밖으로는 모든 전쟁이나 군비경쟁 또 종교간의 경쟁이라든지 자연파괴문제, 자원빈곤, 무지 등 그런 인류공통의 문제에 하나하나 관여를 하고 그러한 운동에 우리가 경제적인 여력은 없지만 힘껏 노력하는데서 UR의 활동이 교단적으로 대단히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따라서 일원대도의 이념아래서 정립된 세계관 가치관이 필요하며 이는 원광대학교 교학대 교수들이 특히 이런 면에 관심을 갖고 원불교 외의 다른 분야교수들과 늘 대화하면서 이런 면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정립해 나가야겠습니다.
3대에 하나의 과제로써 이루어졌으면 하는 것이 교역자의 제복문제입니다. 여자 교역자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만, 남자교역자도 제복이 있으면 스스로 행동에 있어서도 자제할 수 없는 힘이 있을 것이고 다른 사람이 볼 때 교역자다 해서 존중하는 면이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대종사님의 크신 뜻을 잘 발현하기 위해서는 의식보급에 있어 절반이 됐든지 2/3가 됐든지 지역내에 있는 양로원이나 고아원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총부에 어느 정도 경제적인 확고한 기초가 확립되어서 복지사회건설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교단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信仰定立과 경제력확충이 선결과제
「生命을 지켜나가는 작업」을 전개해야
「生의 근거」제시해야
▲류기현법사= 한국의 종교학적인 이해가 시급하며 그것을 보급해야 합니다.  현재는 서구에서 종교학이론을 공부한 사람들 특히 미국식 종교학은 과학적 조사방법을 가지고 어떤 가설을 세우려하고 구조화시켜 거기에 맞추려하는 종교학적 객관성을 가지고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일반과학에선 가능하나 종교학에서 진행되고 이루어지는데는 이런 합리성만 가지고는 종교를 맞출수가 없고 종교학만큼은 체험되는 보통사람들로서 잘 모르는 심증이 있어야하고 객관성 있게 들어간 상태에서 이루어져야합니다. 또한 종교학이 하루빨리 종교지도자들에게 필수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하고 다가설 수 있도록 보편화시키는 작업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일본의 경우 신흥종교가 아주 발달된 종단에서 역사적 지역적 인종적으로 많은 학자들을 포섭, 인류가 종교성을 어떻게 전개해 왔는가를 여러 각도에서 조사하고 논문을 쓰게 하여 발표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기들의 교리체계화에서 찾으려는 과거적 종교와는 달리 요즘 신흥종교들은 종교이해를 위한 투자를 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를볼때 시급한 것은 교단도 종교학적 소양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다른 종교의 비교문제라든지 어떤 시대의 종교현상에 관해서 이해한다는 것은 앞으로 세계가 하나되는 시대를 향해서 그 종교의 교리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롤 중요한 문제입니다. 즉 새종교로 나타나면서 계속 무시하고 자기체험과 자기교리만을 절대화 보편화 시키려하는것은 16C종교현상처럼 보여져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어떤 서양종교가 저항성을 가지고 다른 종교를 비판하려 들어오더라도 우선 그 종교에 반항하지 말고 한국인의 종교혼을 되살릴 수만 있다면 그 사람들을 만나줄수 있는 열린 마음을 한국의 고대성에서 개발해 내자는 것입니다.
원불교는 표방하는 상징자체가 진리 표방이고 진리라도 말도 너무 추상적인 일원상진리라고 표현했습니다. 일원상진리라고 할때 일원상이라는 상징이 어느 모퉁이도 없이 전부가 포섭되지고 화통 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진리로서 의지를 가르치는 것이 원불교 정신이기 때문에 「일원상의 상징은 테두리가 없는 원상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 고해서 원불교는 우월종교이며 원불교에서만 가르치는 것이라 하면서 나간다면 개명되고있는 다양한 시대에 한계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불교 자체에서 이러한 격차현상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를 하면서 새롭게 탈바꿈해야 합니다.
원불교가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일원상 진리에 접근시킬수 있는 많은 책들 중에서 잘 선정하여 보급하고 읽히는 것이 가장 시급한 제1의 과제라 생각합니다. 그렇게하다보면 심안이 열려서 원불교 일원상진리에 입각해서 어느 면에서든지 편파되지 않는 자기 깨달음을 글로 쓸 수 있고 내놓는 사람들이 나오도록까지 진행해 주어야 합니다. 또하나는 종교학을 강조하듯이 원불교가 앞서가는 교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교리에 만족 성실하게 바치고 지키면 된다는 정도에서 좀 더 종교학적 소양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이러한 책들을 보급하고 출판하고 읽히게 하는 것이 원불교 성향을 확산시키는 즉 세계화를 위한 과업이며 이를 위해 해석학의 문제도 시급하게 도입해야 합니다.
해석학이 서구에서는 기독교인들이 변호학으로 발전하면서 철학을 이용했습니다. 철학을 이용하면서 스스로 자기 철학이 있다고 하면서 신학이 아니라 적어도 어디에도 통할 수 있는 논리적 전개를 할 수 있어야하므로 누구에게도 철학이라고 내놓은 분야를 해석학이라고 하여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해석학계도 오늘날에 와서 철학 중에 중요한 길이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들을 우리는 심각하게 받아들여 원불교 해석학이라고 하는 분야를 위해서 철학자들이 내놓은 해석학으로부터 신학자들이 내놓은 해석학 등 큰 두조류를 받아들이자는 것입니다.
원불교 해석학 전개에 있어서는 일원상진리를 변증법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서양사람들과 가장 여러방면에서 만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며 그것을 저는「유무상통의 변증법」이라 표현한적이 있습니다. 공산주의의 유무변증법이라는것은 有의 변증법이며 불교의 空사상을 내놓은 열반의 경지로 공의 자리를 체험한다고 하는 것은 공의 변증법, 無의 변증법입니다. 선종에서 선의 경지를 체험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라든지 하는 것 전부가 공의 변증법이지요. 그러므로 대종사님의 일원상진리의 전개에서 유무상통의 변증법을 발견하는데 이것을 해석학으로 도입시켜 궁극적으로 따져나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원불교 교단이 앞으로 3대를 맞이하는 방향은 역시 생명을 지켜나가는 작업으로 정착해야 합니다. 이것은 인간존중이라는 간단한 표현으로 하지만 생명을 지킨다는 방향에 뚜렷하게 서야 하지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은 목적의식을 갖는데 그것은 개인주의적 이기주의를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가 생각하는 최대 포화상태의 설계가 위대한 목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이상 넘어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원불교가 앞으로 지켜줘야할 방향은 자기 삶을 분석해 들어가서 자기 생의 근거가 무엇인가를 낱낱이 대조해서 자기 삶의 근거를 우선 분석적으로 점검해 줘야합니다. 
교화위주 체계개편
▲김이현법사= 교단 2대를 결산하고 3대를 열면서 원불교 교화에 대한 점검은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현안 문제라 생각합니다.
72년의 교화현실을 돌아보면 그야말로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사무여한의 혈성 그것이었습니다. 그 힘이 하나 하나 씨를 뿌리고 꽃을 피워 하나씩 열매를 맺어 오늘의 교단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눈물겨운 선진님들의 혈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바탕 위에서 힘차게 교단 제 3대를 열고 나래를 활짝 펴서 세계적 교단으로 키워나갈 막중한 사명을 지니게 됐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단 제3단을 여는 교화의 기본 방향에 대하여 몇 가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교화위주의 체제 정비입니다. 이제 우리는 모든 역량을 교화에 총집결해야 할 시점에 와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중앙총부의 제반 기능이 교화가 위주 되도록 재정비되어야 하겠습니다. 총부의 분위기와, 총부의 조직이, 지방에서 총부를 볼 때  모든 것이 교화에 우선하는 행정이 될 수 있도록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서 각 기관과 각 교당이 교화의지로 넘치고 힘이 하나로 모여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둘째는 교구 단위의 교화체제 확립입니다. 앞으로 교화의 기초 행정단위는 교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총부는 교구를 관할하고 교구는 교당을 관할하여 자율적이고 지역실정에 맞는 활발한 교화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구장의 권한이 대폭 강화되고 총부 업무 중 일부가 교구로 이관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입교와 교도성적, 법인과 인사권의 일부라 할 수 있습니다. 만일 현교구가 너무 세분화된 상태라면 몇 개의 교구를 연합한 대교구 형태의 교구 행정 단위도 검토해 볼만한 방안이라 생각해 봅니다. 셋째는  원불교 교리정신에 맞는 원불교적 교화 방법의 정착입니다. 이제 우리 교단은 새시대 새종교로서 새로운 교리 정신에 입각한 교화법이 정착돼야 합니다. 각 기본은 교화단과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위단을 정점으로, 재가 출가의 모든 교도를  정기와 시시로 철저히 훈련시키고 훈련하는 체제가 확립돼야 합니다. 또한 그러한 훈련법은 법위를 기준해서 체계적이고 단계적인 방법론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며, 그래서 원불교에 입교하면 교화단에 편성되어 훈련받는 것이 교화의 정형이 되어야 하고, 그 공덕은 먼저 가정에서 나타나져야 합니다. 대종사님께서 염원하신 구경의 목적은 생활시불법 불법시생활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불법이 생활화될 때 참다운 교리의 실천이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원불교 예법이 생활에서 토착화될 때 불법의 생활화는 더욱 가속화되고 뿌리내려지리라 봅니다. 넷째는 교화현장에서의 남녀 교역자 활동의 활성화입니다. 대종사님께서 남녀 교역자를 두루 양성하여 활동토록 하심은 시대에 적합한 훌륭한 선견지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교단의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하여 그간 교당 교화는 여자 교역자가 대부분 담당하다시피 해왔음도 또한 사실입니다. 때문에 남녀 교역자를 함께 활동하도록 하신 대종사님의 뜻이 교화현장에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장점이 있음과 더불어 단점도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단 제3대에는 남녀 교역자가 균형 있게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과 더불어 적극적 권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우리 교단은 타종교가 갖지 못한 훌륭한 교역자 제도로 세계 인류를 선도해 나갈 본분을 충실히 이행해 나갈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남녀 출가 교역자뿐만 아니라 남녀 재가 교도도 훌륭한 교화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 양성과 활용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끝으로 교화 연구 기능의 강화입니다. 급변하는 사회 현실에 대응하면서 원불교 교리를 다양하게 사회에 펼쳐 나가기 위해서는 교화 연구 기능이 대폭 강화되어 명실공히 교화의 구심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해서 현장의 여러 가지 정보가 교환되고 새로운 자료를 공급해주고 현장에 맞는 프로그램이 계속 개발되어 늘 신선한 원천수의 역할이 될 때 교화현장은 늘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이외에도 청소년교화 통일에 대비한 이북교화의 준비, 사회교화 산업체교화 군 교화 등 특수교화에 대한 관심과 문화교화의 확충 등 여러 가지 과제의 해결이 제 3대 교화의 방향이 될 것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제반 정책을 실현 해 나갈 좋은 인재가 많이 들어오고 교화를 중심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정신을 재 충전할 수 있는 훈련이 잘 이루어져야 교역자의 실력이 향상되고 사기와 사명감이 충일할 것이라 생각하며 또한 그렇게 되기를 염원합니다.


敎區단위의 교화체제확립이 요청돼
歷史와 社會에 참여하는 敎政을 수행
역사와 社會에 참여
▲김인철법사= 지난날의 교정을 회고할 때 긍정적인 면으로 보면 격변하는 시대와 복잡하다난한 근대화 산업화 과정에서 출가ㆍ재가가 합심합력하여 교단적 위기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으며 성장 발전해 왔습니다. 한편 부정적 측면에서 보면 성장과 발전에도 불구하고 안으로는 모순과 갈등이 심화되고, 역사적으로 해결했어야할 문제는 산적해있고, 많이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제자리 뛰기만 한 부분도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한계상황까지 느껴지기도 하니 무엇이 참 성장이고 발전하기를 재검토해야할 중대한 시점에 와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3대에는 이를 시정하고 좀더 폭넓은 교정을 지향해야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교단운영방식의 합리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다른곳은 재래의 품종을 갖고도 현대적 과학영농을 잘하여 많은 수확을 거두는데, 우리는 신품종을 갖고도 영농방식이 합리화 과학화되지 못하여 수확을 제대로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철학자가 현대종교, 특히 신종교가 안고있는 과제중의 하나가 교단제도와 운영의 합리화인데 합리화해야할 부분은 합리화 못하고 합리화될 수 없는 신앙문제까지 합리화를 주장하여 순수한 신앙의 영역을 상실해 가는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는 교정합리화의 방법으로 ①신앙으로 해결해야할  부분과 합리적으로 운영해 나가야할 부분을 혼돈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②교단의 理念政策提示와 그 수립의 합리화입니다. 교단 각 부분과 사회문제에 대한 이념과 방향은 물론 政策目標를  분명히 제시함으로써, 각계각층에서 사상적인 갈등과 혼란이 없이 일체감을 가지고 각자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해야합니다. 일체감을 갖기 위해서는 정책수립기구를 통일하고 종명과 공의 종교적 직관방법과 과학적 분석적 방법이 아울러 나가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연구기획행정를 강화하여 어떠한 문제라도 消化해 낼수 있도록 하지 못하면 급변하는 오늘날의 세계사적 조류에 밀려날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적 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세계적 연합기구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③제도와 조직의 합리화가 되어야 합니다. 중앙기구의 권한과 책임의 한계를 보다 분명하게 하고 통합과 분화, 통제와 자율, 자주와 평등을 제도적으로 확립해야 합니다. 종교가라고 해서 적당히 해두고 도덕적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생각만으로는 안됩니다. 道家이고 道人일수록 분명히 할 것은 분명히 해서 혼란과 낭비를 최소화시키는 것이 대종사님의 사상이요 정신이라 믿습니다.  둘째는 합리적 교정을 할 수 있는 인재 교재 경제의 기반조성을 더욱 튼튼히 하는 일입니다. 인재의 수효도 중요하지만 수효못지 않게 다양한 인재육성과 재가 출가를 망라한 인재개발 활용정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한 교재도 교서에 근본을  두되 보다 참신한 표현으로 대중이 호감을 갖고 소화할 수 있는 다양한 교재가 필요한데 이에 응답해야 합니다. 경제와 사업에 있어서도 창립정신과 합리적경영방법으로 교화와 연관시켜 국가적으로도 모범사업체가 되게하는것이 대종사님의 정신이라 믿습니다.
셋째는 원불교적인 교화와 문화의 창조 보급입니다. 원불교적인것이란 한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대종사님께서 새시대에 맞는 새로운 제3의 문화, 원의 문화를 창조하시기 위하여 진리와 사실에 맞고 동정과 영육을 쌍전하는 원만 평등한 방향을 제시하여 주셨습니다. 또한 새로운 문화는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시대성과 대중성 조화성과 세계성을 가져야한다고 봅니다. 문화는 一朝一夕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3대부터는 교화방법과 儀式 藝術 建築 文學 生活 모든 면에서 착실하고 신중하게 하나하나 원불교적인 것, 바로 제3의 세계적문화를 창조해나가는 意識을 갖고 더욱 努力해야합니다.
그리하여 과거 문명과 문화의 몰락에서 방황하는 인류가 우리의 새로운 문명과 문화에 의해서 안심을 얻고 방향을 찾아 救濟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장점과 특색과 매력과 자랑이 있어 이를 보고 찾아오게 해야 합니다.
넷째는 역사와 사회에 참여하는 교단이 되어야 합니다. 역사와 사회의 요구에 응답하지 못하고 기여하지 못할 때 그 단체는 페쇄되고 존재의 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단의 사회기여도를 물량적ㆍ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나는 종교의 본래목적과 본교의 개교의 동기인 정신개벽의 측면에서 볼 때는 창립이래 훌륭한 활동과 공헌을 해왔다고 봅니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인 인류사회에의 참여와 기여를 위하여 나는 앞으로 두 가지 운동을 전개해야한다고 봅니다.
그 하나는 국민정신운동 또는 사회윤리회복운동입니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비극은 지난 가치관의 상실과 새로운 가치질서에의 방황입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인류문명의 일대전환기에 나오시어 온 인류가 나아갈 새로운 정신적 좌표를 제시해 주셨습니다. 교단이라는 조직의 틀 속에 들어온 교도만을 상대로 하는 교화는 일정한 한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 3의 방계조직과 단체를 육성하여 사회운동으로서의 미래를 전망할 때 우리는 물질적으로 기여하는 것보다 정신적으로 공헌하는 것이 더욱 근본적이고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또 하나는 스승님들의 경륜을 받들어 종교연합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일입니다. 역사적으로 종교간의 화해와 합력이 없는 세계평화는 공상에 불과합니다.
모든 종교가 근원적으로 만나 참다운 평화를 이 지상에 건설하는 역할은 일원주의사상을 가진 우리가 사명감을 가지고 추진해나가야 합니다. 이 운동을 바로 국제적인 종교로 성숙하는 길이기도하기 때문입니다.
3大事業병진 중요
▲심도정교무= 우리교단 초창기 어려움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종사님의 뜻을 실현시키면서 제 1대와 제2대를 마감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단 2대는 8ㆍ15와 6ㆍ25라는 역사적 전화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8ㆍ15와 더불어 우리교단이 그 이전까지는 하고자 했어도 모든 외적인 불리한 여건 때문에 못한 일들이 해방 후에는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상황을 맞이했다는 것과 그 상황 속에서 과연 무슨 일을 어떻게 착수하고 우리 교단의 교화사업 프로그램을 내놨던가를 3대를 맞이하면서 하나의 모델로서 받아들여야 할 상황이라고 보아집니다.
사업 면에서 보았을 때 교화 교육자선의 3대사업을 교단에 사업목표로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외적으로 특히 원불교 교단의 성격을 표방하고 원불교 교단의 성격을 표방하고 원불교가 사상적으로 정책적으로 펴나갈 구체적인 사업계획내용을 요약해서 원불교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 3대요소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교화기관과 교육기관 자선기관을 출범시켜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3대요소는 서로 균형을 맞추든 못맞추든간에 항상 대외적으로 원불교를 나타날 때 이 세 가지 중에 어느 것도 빼놓고 이야기될 수 없습니다. 즉 3대사업은 교단의 체재로서 개인의 인격을 갖추는데 있어서 덕 지 체를 구비하는 것처럼 교단도 이와 같은 3대사업의 병진은 역사적 당위성으로 교단을 대외적 면목을 세우는 면이라 하겠습니다. 기관으로 볼 때도 교화기관은 교화를 위주로 하되 교육사업과 사회봉사적 기능을 잊지 말아야 하고 교육기관은 교육의 본래적 사명을 대행하되 교화와 사회봉사적 기능을 잊지 말며 자선기관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자선기관이 본래 사명이지만 수용어린이나 노인 부랑인들을 상대로 교화와 교육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즉 교화 교육 자선사업은 한 세트이지 따로 따로 포장된 분리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교단은 현실적인 생활 속에 존재하는 빈곤 무지 질병의 3대악을 퇴치하는데 소홀히 해왔으며 우리들의 모든 물질적인 수입이나 소득은 아주 빈약하고 때로는 망각되어졌습니다.
최근 재가교도들이 이러한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청운회의 보은동산운동과 청년들의 사회문제에 대한관심들은 출가교역자들로 하여금 부족한 점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주며 이러한 현상은 교단적으로 매우 다양한 일이지요,
우리가 맞이해야 할 3대는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고령화 사회라는것과 정보화사회라는 것인데 특히 정보사회에 있어서 사회여건은 산업사회에 있어서 물질적 가치가 존종되던것이  정보화사회가 되면 시간적 가치가 존중된다고 합니다. 또한 물질적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는 소비욕구가 기본바탕이 되고 시간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는 성취욕구가 중심이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시대를 맞이해 어떤 프로그램을 제시할 것이냐 특히 기능적 측면으로볼때 전통적 빈곤 무지 질병 등의 결핍상태는 해결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어느 단계에 가면 이런 불평등 문제도 해결됩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새로이 해결해야할 빈곤 무지 질병이라는 것은 다분히 불평등적인 것에서 심리적인 것으로 정신적인 것으로 나타나게 되며 이에 대하여 봉사해야할 자재와 방법을 준비하기에 노력해야 합니다.
특히 유념할 점은 지금까지의 현상을 가지고 모델을 만들어 프로그램을 개발해 현장에서 교화하려고 하면 이미 연구했던 내용을 실행해보기도 전에 변해버림으로써 변화하는 템포에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박자에 있어서 객체와 주체가 서로 맞지 않음으로써 우리교화 효능이 격감된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자면 물질적 양적 가치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 생명적 창조적 가치가 중요시되기 때문에 이런 측면에서 우리교단은 새롭게 자신을 변화해갈 뿐아니라 상대의 변화와 보조를 맞추어 우리의 본래사명을 성취해야 하겠습니다.
복지사회건설에 있어서 과거의 정치는 이것을 위배함으로써 종교가 그 일을 대부분 맡아서 다했는데 오늘의 종교는 어느 정치 스타일이든 간에 복지국가를 지향하지 않는 나라는 없습니다. 복지 지향적인 측면에서 복지와 정치는 만나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치는 정치 특유의 스타일과 방법이 있기 때문에 그 소명을 다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정치는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종교가 들어서 해야할 분야가 다분히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교단이 3대를 맞이해서 결국 3대사업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일을 교정원에서부터 추진해야하며 교학대학의 인재양성에 있어서도 이것이 병행되어야만 하겠습니다. 또한 교역일선에서 교역자들이 어느 기관 어느장소이든간에 이러한 사명감을 결여치 않을때 밖으로부터 원불교를 인식하게 될것이고 나아가서는 존경하게 되고 원불교에 동참하려고 할 것입니다. 
최근 기독교의 신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을 보면 내적인 계획적 발전의 노력도 있지만 한편으로 민중 서민들의 빈곤과 질병의 아픔에 동참하고 그들의 어려움을 대신해 대변하고 개척하는 일에 과감하게 뛰어들고 있는 등 민주화운동과 인권회복운동에 앞장서 일하므로 어려운 자들을 대변하며 일하고 있기 때문이란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의 깊게 생각해야할 것입니다. 


敎化ㆍ敎育ㆍ慈善事業을 균형 있게 발전시켜야
國際的 안목 갖추고 敎理ㆍ思想을 새롭게 인식
국제적 안목 가져야
▲양현수교무= 원불교사상을 묻는 다면 대종사님의 깨달음에서 시작되고 그 깨달음에 의해서 전개된 교리사상이 중심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대종사님의 깨달음과 교리사상이 무엇이냐는 것도 중요하지만 원불교사상을 앞으로 어떻게 전개해야할 것이냐가 더 큰 과제라 보여집니다. 이런 점에서 세계 학계의 동향 특히 불교학을 중심으로 말씀해 보고자 합니다. 
한국사회에서 대종사님의 사상이 위대한 사상으로 평가되려면 한국의 문화ㆍ사상계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체성의 문제, 즉 원불교 본질이 무엇이냐와 많은 종교인들과 회통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입니다. 그리고 가장 문제되는 것은 불교학과 혹은 불교와의 관계가 되리라고 봅니다. 즉 불교학의 문제 불교화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때 세계화의 장벽을 넘지 못한다는 결론이 되겠지요.
교단을 살펴볼 때 제 1대까지는 대종사님께서 깨달음을 제도사업에 나투신 모습입니다. 그리고 제2대는 교단의 체제정비와 교리요강 등이 정비되었으며 원불교사전이라든지 한국의 종교사상 불교사상을 정리함으로써 원불교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작업들을 해왔습니다. 2대까지 본다면 교단이 역사문화등 한국사회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의 요청, 다시말하면 우리가 대사회적으로 부응할 수 있는 시기가 3대가 아닌가 보며 3대에는 이것을 세계화시키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정체성을 파악함과 동시에 대외적으로 만나는 2가지 작업이 동시에 수행돼야 한다는 결론이 됩니다만 특히 그 중에서도 불교학과의 관계는 우리교화와 관계 혹은 교단과의 관계와 함께 우리 사상의 관계들을 아울러 갖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 교단의 교화에 관련된 교단의 존재에 관련된 불교계와의 관계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불교계의 신성한 흐름이 원불교에 존재한다는 막연한 관념으로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20여년전부터 교단이 대외적인 활동을 교단에서 부지런히 해옴에 따라 교화가 질적이나 양적인  팽창과 아울러 불교계에서는 이 교단이 무엇이냐고 주목하게 된 것입니다. 이 경우 원불교는 불교인가 아니면 신종교단체인가 하는 문제가 요즘 첨예화되고 있습니다. 불교계에서 그것을 물어올때 원불교에서는 적절한 대답을 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해나가면 그 속에서 모든 것이 해결된다, 교화를 충실히 해가다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면과 함께 우리 교리적으로 거기에 대응할만한 전개가 부족하지 않았느냐는 면도 있을 것입니다.
한국의 불교학계에도 어떤 경우에는 참여하고 어떤 경우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조만간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교단적인 해답을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교단적해답은 교화적 측면과 함께 공존하는 다원종교사회에서 우리교단이 마땅히 해야할면과 또한 사상적으로 어떻게 어필할 것이냐 하는 면을 같이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교단은 사상적으로 불교와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으므로 제3대에는 우리가 할 것은 커다란 흐름, 세계의 문화사상사에 맥맥히 흐르는 불교사상의 흐름을 우리가 감싸 안는 작업들이 우리 교학개설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작업들이 교단이 앞으로 활동하는데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어떠한 움직임은 반드시 사상사적 작업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정치적인 움직임밖에 되지 않습니다.
한국학의 방향은 지금까지의 개별적인 연구가 종합화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종합화란 말속에는 지금까지의 연역적 방법에서 비교ㆍ고증ㆍ학계간의 연구 등을 병행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한국학 하나를 연구하는데 국제적인 안목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원불교의 경우도 지금까지는 대종사님의 말씀과 교리의 기본 강령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방향에 서 있는데 앞으로 비교 고증이라든지 혹은 귀납적인 방법 또는 학제간의 연구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하는 방법 혹은 사회과학적인 방법이 동원되어야 할 시기가 도래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국제학적인 관점을 갖지 않으면 불교사상을 펼쳐나가지 못합니다.
국제사회의 입장에서 볼 때 동양 사상 혹은 한국사상을 모두 감싸안으면서 유교 불교 도교 등 삼교사상을 포섭하여야 학문적으로 앞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세계에서 주목하는 불교학을 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국제학술회의라든지 혹은 국제학계에서의움직이는 우리의 학자들 교육자들의 움직임 등, 이런 세계적인 안목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앞으로 한국에서도 국제적인 학술회의가 많이 열릴 것입니다. 교단의 모임도 열릴 것이며 이때를 위해 교단에서도 국제적인 안목을 가진 사람을 키워내야 하는 것이 우선 입니다. WCRP라든지 ACRP라든지 혹은 우리가 이룰 UㆍR에 관계된 회의를 한국에서 개최한다고
할경우에 국제적 안목을 가진 인재를 기를때 가능할 것이고 그때 크게 부딪치는 것이 불교와의 관계, 불교학자들과의 관계라는 말이지요.
우리는 앞으로 우리의 이상을 전개해 나갈 때 바로 불교의 큰 흐름을 감싸 안으면서 혁신불교로서 대종사님께서 말씀하신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라는 가르침 등 다른 학자들이 갖지 못하는 관점들까지 포함할 때 교화와 더불어 사상계 문화계의 참여가 가능할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정리 = 유용진기자ㆍ김동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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