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중앙총부가 있는 이리시와 익산군이 통합되어 익산시로 발족됨에 따라 원불교 중앙총부의 명칭을 원불교 익산총부로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중앙총부가 위치하고 있는 익산()은 영산 변산과 함께 원불교의 성지일뿐 아니라 대종사 심상 가운데 신룡전법상()과 계미열반상()이 이곳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우리의 관심이 특별할 수 밖에 없다.
원불교 성가에도 영산 변산 익산 각지 가시밭길 헤치고(선후진 경애가), 익산총부 건설 당시 엿장사이며 / 만석평에 밭길기도 눈물겨워라(공덕탑노래)등 익산총부와 관련된 내용이 들어 있다.
원불교 중앙총부를 익산총부로 변경해야 하는 까닭은 원불교 중앙총부가 자리잡고 있는 이곳은 원기 59년(1974) 7월 1일 이리시에 편입되기 전에는 전북 익산군 북일면 신룡리였기 때문에 불법연구회 총본부 또는 익산총부로 불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익산시 발족과 함께 중앙총부의 옛 이름인 익산총부의 명칭을 되살려 교단 운영의 심장부, 원불교 성지로서의 의미를 새롭게 함으로써 교단발전의 전기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원기 9년(1924) 9월에는 건설된 익산총부는 새 시대 새 종교인 원불교가 이곳에 제생의세의 이념 실현을 위한 전무출신들의 공동생활이 시작되었고 이들의 생계유지를 위해 만석평의 소작농사 짓는 일과 엿을 만들어 내다 파는 등 평지조산의 간고한 창립의 역사가 이곳에서 이뤄졌던 것이다.
이와같은 교단창립의 역사와 함께 교법의 제정과 훈련 면에서도 익산총부가 시사()하는 바가 큼을 알 수 있다.
원기 10년(1925) 대종사께서는 정기훈련법과 상시훈련법, 일기법 등을 제정하시어 제자들을 훈련시킴으로써 주경야독의 모범을 보여주셨던 것이다.
교리훈련은 당시 어려운 상활속에서도 동하기() 3개월씩 정기훈련을 실시하여 공부와 사업을 병행하게 하신 점은 소태산 대종사의 탁월한 지도력을 보여주는 예라 할 것이다.
이처럼 교단의 창립, 교법의 훈련과 함께 익산총부의 또 하나의 역사적 의미는 불교정전등 원불교의 기본 교서가 대종사 재세시에 이곳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곳 익산총부는 당시 재가 출가 전 교도들의 피와 땀이 어린 곳이며 희망과 보람의 성지요, 기본 교서 발간의 산실이었다.
원불교 중앙총부를 원불교 익산총부로 명칭을 변경하자는 제안에서 <중앙>이란 글자를 제외한 것은 원래 명칭이 익산총부였다는 점도 있으나 우리 교단의 특성상 여러개의 총부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구태여 <중앙>이란 말을 강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중앙총부를 비롯하여 중앙중도훈련원 중앙상주선원 중앙문화원 중앙박물관 중앙수도원 중앙수양원 중앙남자요양원 중앙여자 요양원 등 <중앙>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도 될 경우에는 이를 생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튼 이번 익산시 발족을 계기로 원불교 중앙총부의 명칭을, 우리 교단의 역사와 의미가 담긴 옛 이름을 되살려 원불교 익산총부로 변경하는 문제를 함께 검토해 보고, 필요하다면 관계 회의를 소집해서라도 중지를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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