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체대비의 참 모습 보여줘야

한반도 남단 한점섬 소록도에 원불교 소록교당이 세워졌다.   이 아름다운 소록의 섬마을에 세워진 교당의 낙성봉불 행사에는 지난 7일, 그곳 광주교구를 비롯하여 서울 부산 마산 대전 이리 제주 등 전국 각지의 교당에서 45대의 버스를 몰아 장장 천리길을 달려 1천7백여 법형제들이 참여, 흐ant한 정의와 축복을 보내 주었다.
교당이 세워진 곳은 공식 지명으로는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 소록1리로 불리우고 있는 요지중에서도 중심부요, 지세나 경관으로도 단연 이 섬의 제일 급지에 해당하는 자리라는 것은 한번 와서 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을만큼 마음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여기에서 필요 요긴한 땅을 골라 대지 300여평의 새 터전을 닦아 건평 56평의 단층 연와조의 단아한 법당을 앉혔다.   법당이 들어선 땅은 말할 것도 없이 국유지로서 이곳에 새집을 짓고 교화를 일으키는 데에는 국립소록도 병원 당국과 보건사회부 문교부의 허가 아래 이루어졌으니, 이에는 당지의 주무관할자인 소록도 국립병원 당국과 신정식 원장의 원불교에 대한 공정한 행정적 배려와 나아가서는 차원높은 호법의 향의가 아니었던들 이 일은 가위 불가능 했을런지도 모른다.
불과 50여평의 집, 여기에다 총 건축 비용이라야 2천여만원 정도의 투자액이라면 소록교당의 규모로써는 장관일것도 없고 초라하다 할 것도 없는 적정가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소록도 새 교당이라 할 수 있다.   이만한 교당으로서는 소록도에 알맞은 것이며, 따라서 건축에 소요된 액면 또한 한 교단적인 차원에서 바라다 볼 때 크게 부담이 되는 출연도 아니다.   그러나 소록도에 답지된 교단적인 이러저러한 정성이야말로 우리들 모두가 한결같이 주고 싶고 무엔가는 바치고 싶었던 순수한 마음의 정재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이 크든 작든 개인적이든 공적이든 전교단적인 소망과 한 보람의 표현이라는 데에도 크게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소록도 교화의 출범, 소록도 교당의 발족은 지금 새삼스럽게 말한다거나 떠들것도 없이 그것은 매우 획기적인 사실임에 틀림이 없다.   더구나 제생의세라는 원불교 교화목적이 진실로 다양한 세계적 현실과 역사적 국면을 수용하고 체험하게 되는 것이지만 소록도라는 병든 세월, 병든 세상 그의 원색적 현장을 맡아 거기에다 삶의 뿌리를 내려 이제 정착을 다지게 됐다는 것은 우리의 교단사에 있어 자못 뜻있는 장면이 될 것이다.   제생의세의 이 일은 물론 어느 특정한 사람의 힘만으로 더구나 단시일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전체 인류와 역사적 사명이 다해야 할 공동의 어장으로 끊임없이 지속돼져야 할 영원한 생명의 과업이 아닐 수 없다.   제생의세의 당면 과업에 있어서 기독교는 근세의 선구자였다.   가위 천형으로 알려진 나병환자 집단수용지인 소록도에 복음을 전하러 이 섬에 발을 붙이게 된 것이 1920년대였으니 이러한 구원의 역사는 한국 근대화에 공헌한 이모 저모의 업적과 함께 선교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이 마당에서 크게 부각돼질 일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이와같은 역사적 공동사명과 영원한 생명의 작업 그 구원의 발자취를 깨닫고 이 뜻을 구현하기 위하여 원불교는 새 시대 진리의 사도를 이 섬에 파견하게 되었으니 그때가 운기60년, 1976년이었다.
그러니까 소록도 교당의 탄생사는 이미 6년전에 시작되었고 동시에 김혜심 교무(현 소록도 교무  소록도 국립병원 약사 봉직중)의 소록도 헌신의 갸륵한 서원이 또한 함께 이룩되었다.   말하자면 오늘날 소록도 교당의 탄생은 전적으로 김혜심 교무의 그 순일무구한 서원과 그의 숭고한 헌신, 그 일관된 정성이 가져다 준 필연적 보람이며 교단으로써는 마땅히 그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는 의무적 시행이 마침내 일단의 결실을 보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소록도 교당의 신축의 모든 행사나 그에 얽힌 그러 저러한 배경에 있어서도 혼연일체가 되어 안과 밖이 서로 호응하고 성원하면서 스스로가 그렇게 요청하는 터이라 매사와 일체가 순조로웠고 헌거롭게 이루어졌다.
물론 소록교당은 기성교단의 기반에 비할 바 못되지만 여기에서 원불교는 무슨 교세확장에 부심하고 분주해야 하는 말초신경적 작태가 아니라 진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체대비의 실체를 몸소 보여주는 생활을 끊임없이 일으켜 내야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진실이 곧 낱없고(너  나가 없는) 그리고 쉬지않는 나의 성찰이요 나의 헌신이다.   도무지 일호의 바램도 없이 일체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요 모두의 불행이 나의 불행임을 스스로 깨닫고 나는 바로 여기에서 그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서기 2천 몇 년대에 소록도는 물론 이 나라에는 나병전멸의 사실이 통계상 나타났다.   미래의 소록도는 병든 섬이 아니라 신선한 태양을 맞아 새 생명으로 거듭나는 장이 될 것임을 일깨워 주는 일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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