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명선 교도 / 안암교당
두둥실~!
짜잔!!
눈부신 경인년의 새해가 밝았다.

소태산대종사께서 참 진리를 깨치신 뒤 95번째의 새해가 밝은 것이다.
서가모니께서 다녀가신 뒤로는 2554번째, 예수께서 태어나신 뒤로는 어언 2010번째의 눈부신 새해를 맞이한다. 그런데 새삼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왜 사람들은 성자의 탄생, 깨달음, 입멸 등을 기준으로 년도를 정하기 시작했을까?'라는 것이다.

당연히 사람들에게 성자들의 깨달음이 주는 의미가 그만큼 중요하게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성자들께서 다녀가시면서 사랑하는 중생들을 위해 여러 말씀들을 남기셨는데 그 핵심은 '은혜를 알고 감사하고 보은하라', 또는 '사랑과 자비를 베풀라', 마치 우리들에게 '나눔의 실천'을 강조하는 것이다.

원불교 교리도(敎理圖) 거북이 그림만 보아도 등판의 반은 사은에서 출발하고 있다. 또한 교당에서도 가장 많이 듣는 단어 중 하나가 은혜이다. 가만히 삶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 순간 이대로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은혜임에 감동을 받는데, 경험상 은혜를 아는데도 집중력이 필요하다. 순간 방심하면 은혜는 까맣게 잊고서 마음대로 안 되면 나도 모르게 불평불만이 나오기가 쉽기 때문이다.

정산종사께서는 이렇게 은혜를 잘 잊는 청년 중생에게 '효가 곧 보은의 시작점'임을 알려주셨다. 경의편에서 "그 부모의 은혜를 모르는 이가 어찌 다른 은혜를 먼저 알며 널리 천지와 동포와 법률의 근본적 은혜를 알게 되리요. 그러므로 효의 실행은 부모은으로부터 시작하여 이 모든 은혜를 발견하는 데에 있나니, 사람사람이 이 모든 은혜를 발견하여 어느 처소 어느 시간을 막론하고 천만 경계를 오직 이 감사 하나로 돌리는 것이 다 효의 활용 아님이 없는지라"라고 하셨다.

'효'라고 하면 요즘 시대에는 유교시대 전통처럼 낯설게 들리지만, 부모님께 효도하는 친구들치고 잘못된 길로 빠지는 친구들이 없는 걸로 봐도 효의 실행만 충실히 하여도 보은의 반은 성공할 것이다.

나도 한 때 마음이 거칠어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고 세상에 불만만이 가득할 때가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한테 화를 내고 자다가 새벽에 깼는데 어머니께서 찬 공기가 도는 방에서 나에게 이불을 다 덮어주시고 당신은 등을 다 내놓고 내 옆에 돌아 누워계신 뒷모습에 가슴 찡하게 참회했던 기억이 난다.

올 한해는 그 동안 받은 은혜를 갚는 알찬 시기를 보내고자 다짐을 했는데 마침 종법사님 신년 법문에 '보은하는 부처되기 3 Step'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나 같은 의대생은 번호순으로 정리하는 일명 '넘버링'에 익숙한데, 자비로우신 종법사님께서 법문마저 간단한 넘버링을 해주셨다.

'시시때때로 마음비우기, 주인 되기, 은혜생산.' 한 눈에 쏙 들어와서 외우고 실행하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성자께서 진리를 밝혀주신 뒤로 수천 번의 새해가 밝아졌는데 나의 마음은 이번 새해에 얼마나 밝혀 세상을 밝힐 것인지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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