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밖에 있으면서도 원불교에 대한 속 깊은 애정을 가진 지성인으로서 김용옥 박사와 최준식 교수가 있다. 그런데 이분들의 발언 가운데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김 박사는 원불교는 촌스럽다. 이 촌티를 빨리 벗어야 발전한다하는 주문이고, 최 교수는 원불교는 촌스럽다. 세월이 흘러도 이것만은 길이 간직해라하는 주문이다. 얼핏보기에 원불교가 촌스럽다는 데는 공감하면서도 정반대의 주문을 하는 것으로 보여 시쳇말로 헷갈린다 싶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두 사람의 말한 바 촌스럽다는 소기()가 다르고 그래서 주문이 정반대로 나온 듯하다.
 재래 불교에는 이판과 사판이라는 것이 있다. 이판은 속세를 떠나 수도에 전념하는 일이요, 사판은 수도를 뒷전으로 하고 절의 살림과 사무에 전념하는 일이어서 같은 출가승이라 하여도 그 구실에 따라 이판승과 사판승으로 역할분담이 돼 있었던 것이다.
 다시 앞의 두 분의 발언으로 돌아간다면, 김 박사가 말한 바 빨리 촌스러움을 벗어나라는 것은 사판이 세련도지 못함을 나무란 것이요, 최 교수가 말한 바 촌스러움을 길이 간직하라는 것은 이판에서의 순정성을 유지하라는 격려가 아닐까 한다. 그러므로 두 분의 충고는 결코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보적인 것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원불교 전무출신을 이판승과 사판승으로 양분할 수 있는가? 혹은 교무, 도무, 덕무으 기능적 분류를 그에 준하는 것으로 볼 것인가? 물론 기능에 따른 역할 분담은 어느 단체, 어떤 조직에서나 필요하다. 그러나 대종사의 사상적 특징(원불교의 종교적 특징)을 통합주의와 병진 사상이라고 볼 때 이사의 병행과 도학과 과학의 병진은 필수적이지 결코 양자택일적인 것이 아니다. 요컨대 이판적 촌스러움의 유지나 사판적 촌스러움의 탈피는 교단이나 개인이나 간에 동시에 성취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판은 제쳐놓고라도 사판적 촌스러움을 탈피하기 위하여 교단이 할 일은 무엇인가, 방안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다음과 같은 방향에서 접근해 보았으면 한다.
 첫째, 기획력을 높이자는 것이다. 무슨 사업이든 계획과 실행과 평가가 주밀하게 이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피드백이 이루어져야 할텐데, 하는 일들을 보며 즉흥적이고 주먹구구식인 느낌이 없지 않다.
 둘째, 전문인력을 살려 쓰자는 것이다. 현대는 어느 분야든 일류가 아니면 살아 남기 힘든 경쟁시대다. 이류는 벌써 촌스럽게 비쳐지고 외면 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감히 말하건대 현재와 같이 출가가 주인이고 재가는 손님으로 겉도는 이 제도적, 관행적 부조리를 시정하지 않고는 해결이 요원하다고 본다.
 셋째, 시대의 흐름을 수용하자는 것이다. 초기 교단은 시대를 앞질러 갔는데 지금은 시대의 뒤를 따르기도 버겁다. 이렇게 되면 원불교는 촌스러운 구닥다리 교단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교구자치제, 청소년 교화, 예비교역자 교육 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아쉽다.
<도봉교당> 이혜화(율곡교원연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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