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마무리하고 무엇을 정립하는가

원기 67년의 한해도 다 저물어 버렸다. 이제 더 넘길것도 없는 달력 앞에서 사람들의 심정은 공연히 바빠지는 것 같고 초조해지는 것 같고 아쉬움만 남는 것 같다.
가는 해를 묵은 해라 하고 오는 해를 새해라 한다지만 이것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이정표이지 바쁠것도 초조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는 것이 세월의 흐름이 아니겠는가. 그 흐름은 쉬임없이 유장하고 끊임이 없으므로 영원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시간에 쫓기어 조바심을 부리고 세시에 매달려 갈길을 재촉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노릇이다. 생명의 대하와 그 흐름을 함께하고 그 근원을 같이하는 것이 순리요 자연일진대 조급한 때일수록 마음의 여유를 챙기고 불안에 처할수록 경계를 헌거로이 넘어서는 슬기를 찾는 것이 인생을 살아나가는 마땅한 도리일 것이다.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것은 누구나가 다 하는 일상인의 풍속이요 관습이겠지만 순리와 자연이 기용()하는 바탕에서 진리의 뜻으로 묵은 해를 슬기롭게 마무리하고 새해의 밝은 지침과 참된 설계를 마련한다는 것은 우리들의 혜복을 불러오는 한 관문이 여기 있음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별로 하는 일도 없이 별다른 것도 아닌데 남이 하는 대로 덩달아 바빠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찌하여 초조해지는가. 왜 아쉬움만 남는가. 일상적인 말로는 이게 다 살림살이의 탓이라하고 이런것이 다 세상사가 아니겠느냐고도 한다. 불시의 변수작용으로 격변하고 줄달음치는 산업화 기술문명이 빚어낸 여독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형태로 나타날 수 밖에는 없다. 물질의 노예생활이라는 것도 이에서 다를 것이 없겠다. 무한정으로 치달아 가는탐욕 추구의 결과가 종당에는 나를 이런꼴로 만들어 버렸다. 나만이 이 세상것을 온통 다 차지해야 되고 나만이 끝까지 살아남아야 직성이 풀린다는 식의 이기적 개인본위의 경쟁의식이나 집단적 이기주의의 가치관이 어떠한 술수의 방법을 써서든지 활개를 치게되는 한 이렇듯 병들고 소외되고 잃어버린 인간을 다시 회복하기란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닌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겁래로 인류의 역사는 스스로 하나 되는 뜻(일원진리)을 세계 공동체의 큰 이상으로 간직하고 궁극적으로는 진리와 평화 자유와 정의의 기틀을 지향해 왔고 추구해 왔다. 역사라는 것은 그 동기부터가 인류의 자각적 과정을 보여주는 도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하나가 되는 뜻으로 사람이 타고난 저마다의 본래의 바탕은 반드시 일진의 맑고 시원한 바람이 먹구름을 시나브로 흩어버리고 밝은 태양이 중천에 솟아올라 삼라만상을 한 아름 가득히 안아서 비춰주고 화육하듯이 저절로 그렇게 드러나고야 말 것이라는 염원과 그 믿음이 또한 우리들의 가슴속에는 알게 모르게 흔연히 그리고 조용히 꿈틀거리며 살아 있다는 것이다.
역사의 뜻은 이렇게 되어가는 과정을 의미를 스스로 증거하고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이 역사의 대행진에 참여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투철한 해석과 밝은 이해에서 그 뜻을 참되게 파악하고 이끌어감으로써만 그 산 역사의식은 마침내 창조와 발전으로 이어져 나가는 것이 되고 일체생령과 더불어 자기를 실현하는 생명의 궤도를 묵묵히 열어나가는 점진적인 기여를 통하여 보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류공동체의 이상을 통한 올바른 자각을 저버린 결과는 상극과 투쟁의 씨앗으로나 남아서 불행과 멸망을 자초하는 악순환을 되풀이 하다가 그마저 지치면 별수없이 인과의 쓰레기로 쌓일 수 밖에는 없다.
우리들은 지금 묵은해를 마무리하고 곧 바로 새해의 문을 열어야 하는 새로운 계기를 맞이하고 있다. 우리들의 마음은 진정 그 어느때보다도 차분해지고 가라앉아야 하겠다. 어떻게 마무리를 하고 무엇을 다시 정립하자는 것인가.
거리낌없이 속속들이 성찰해야하고 크게 뉘우치는 것으로 큰 깨달음이 있어야 하겠다. 그 지난날들의 가지 가지의 일들을 되새기면서 그것이 역사의 거울이 되는 작업이면서 어떠한 악순환도 무명과 번뇌도 부정이나 비리도 그리고 어떠한 불행도 다시는 똑같이 되풀이되는 일이 없도록 새해를 향한 결의는 더욱 새로워야겠고 진리의 표준으로 새해 설계 또한 찬란한 빛의 화신이어야 하겠다. 일체만유와 일체생령이 낱없이 오로지 하나되는 뜻을 찾아서 저마다 스스로 참회하고 감사하고 이리하여 화광동진하는 그 한결같은 사랑의 세계 공동체이상을 우리들의 가정에도 직장에도 사회집단에도 나라에도 교단에도 거듭나는 새 인간의 지침으로서 세워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때가 바로 지금으로부터이며 여기에서부터 인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늘 참회하고 감사하는 생활이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자라나야 한다. 그것은 곧 전체생명이 자라나는 일이며 생명이 자라나는 데에서 하나의 세계는 자라난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