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앞에 나를 바로 세우는 자세
뉘우침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몸부림
늘 새롭게 시작하는 심경으로 살아가야
이대로 살아도 될 것인가

이대로 살아도 될 것인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기자신을 뉘우치고 속깊은 눈물을 흘리는 때가 있기 마련이다. 비록 자신이 나타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아니했어도 어쩐지 허전해지고 자신의 걸어온 길에 대한 통절한 반성의 기회가 한번쯤 있음직한 것이 인간의 생리이다.
특히 종교인에게는 참회가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되어진다. 종교인이 요구하는 새 인간이 되는 길이 참회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참회(KS, ama)는 참(KS, ama의 음역)과 회(KS, ama의 의역)로 된 용어로 부처님이나 진리앞에 뉘우친다는 뜻고 고백한다는 뜻이 함께 포함된 단어이다.
이것은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완전자를 향해 자신의 불완전성을 뉘우치고 자기고백을 하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믿음의 시작이 진리를 향한 자신의 참회에서 비롯되고 믿음의 완성도 자신의 참회에서 맺어져야 함을 알고 있다. 참회는 진리를 향한 인간의 양심과의 마주침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간이 진리앞에 매달리는 양심의 눈물은 참회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그러나 어느때는 참회가 되어지지 않기도 하게 된다. 어쩐지 참회의 소심()을 저버리게 되는 때가 얼마든지 많아진다. 그때는 참다운 인간성을 상실하게 된 때요 종교인으로서 자기 발전이 정지해 버려진 때라고 보고 싶다.
자신이 어떤 경계에 휘말려서 인간성을 망각하면 참회하는 소심을 상실하게 마련이므로 여기서 몇 가지 참회인이 명심해야 할 금기조항을 제시하고자 한다.
자신을 너무 높여 생각하거나 너무 낮춰 생각하는 자신의 평가자세는 금물이다.
일찍이 서산의 선가귀감에도 밝혔듯이 원컨대 모든 수도자는 스스로 낮추거나 스스로 높이지 말지어다(  )라고 한 것과 달리 너무 높여서 아상이 다북찼을 때와 너무 낮아져 중생상이 다북찼을 때는 진정한 참회를 불가능케 한다.
어디까지나 우리 자신이 평범한 인간의 위치에서 살때만이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고백할 수 있는 마음이 살아난다.
인생을 생각할 때 일회적인 시간속에 사는 직선적 인생관을 갖거나 인생은 생활의 반복으로 활동이 한갓 연습적 인생관을 갖는 것도 금물이다.
자신의 인생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일회적 시간에 매였다고 하면 사실상 참회는 자신의 행위의 교정 때문에 할 필요는 없고 시간의 창조자에 대한 신앙고백을 넘어설 수 없이 된다. 그러므로 참회불능의 죄과만이 생길뿐 새로운 능력이 없는 메마른 비인간적 사회로 전락되는 수밖에 없다.
또한 인생이 다만 반복적이어서 생활이 한갓 연습이라면 세상은 실다움이 없는 장난의 세계요 현실에 대한 건전한 사고를 상실하는 결과가 될 뿐이다.
인생은 그 근저에 일회의 엄격성에서 순환작용을 하는 진리세계를 찾아야 되고, 반복성에서 인과적인 인간의 업(Karma)과 그 극복을 행하는 참회가 요청된다.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게 되면 비록 참회는 하나 죄업을 사면할 수 없다는 엄격론과 참회만하면 쉽게 죄업을 사면받을 수 있다고 보는 당연론은 모두 금물이다.
참회생활로도 자신의 죄업을 사면받지 못한다고 하면 참회는 자신의 잘못과 관계없이 무의미한 참회가 될 것이요, 쉽게 사면받는다면 인간행위에 대한 책임성이 희박해지는 것이므로 이것은 모두 극단론이다. 이상 세 가지 금기조항은 모두가 인간적 소심을 떠나 양심과 마주칠 수 없는 관계로 진정한 참회를 불가능케하는 요건이 된다.
진정한 참회
참회는 인간이기 때문에 자신의 거짓행위를 고쳐 보려는 몸부림이오 진리앞에 나선 소심이기도 하다.
그러나 참회는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하는 것이며 동시에 인간들이 염원하는 인간이상의 능력을 갖게하는 것으로 영원히 참회개과하는 정신자세로 능히 지난날의 잘못인 죄업을 벗어나고 죄복을 자유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하는 능력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영원한 참회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문제는 일차적으로 해석상의 문제이기는 하나 참회는 자기의 잘못이 있을때만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자기의 잘못이 물건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영원한 참회가 어떻게 모든 업력을 벗어나고 죄복을 자유로 할 수 있다고 하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영원한 참회는 일시적 참회와 구별되는 의미로 한번 잘못을 뉘우치고 난다음 또다시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정신이 들어있다. 그러면 또다시 저지르지 않는다는 보장속에 전일의 습관을 극복할 수 있을까?
일시적으로 모든 습관을 근절하는 것은 쉽지 않은 근기라고 보아진다.
전일의 모든 습관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능력이 간절히 요청될지언정 일시에 영원한 참회 개과는 쉽지 아니하여 참회를 계속하면서 잘못을 줄여나가는 것이 일반적인 상도이다.
그러나 흔히 생각하듯 잘못이 쉽게 줄어지는 것이라고 할 것인가, 물론 줄어지는 것이 이치에 당연하며 그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참회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잘못이 줄어들지 않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의 길인지도 모른다.
필자는 기숙사 학생들과 함께 있을때 학생들에게 년1차식 신분검사를 시켰다.
초입학생들은 자신의 당연등급 부당등급의 검사결과를 그리 잘못하는 것같이 쓰지 아니했다. 그러나 학년이 높아 갈수록 잘못하는 것을 더 혹독히 채점하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잘못해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잘못을 발견하는 축이 넓어졌고 잘못을 저질러서가 아니라 공부에 속깊어졌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그 속에도 잘못이 점점 줄어져 가는 대중이 있으면서 쌓아나가는 것이 바로 참회이다.
그러므로 무수한 번뇌속에 영원히 참회 개과하는 자만이 능히 모든 업력을 벗어나서 새 인간이 되는 길이라고 보고 싶다.
어제 매놓은 잡초밭에 오늘도 내일도 또 매지않고 자칫 잃어버리고 묵혀두면 어느새 또다시 잡초는 무성하게 된다.
이렇듯 영원히 참회 개과하면서 살아갈 때만이 눈같이 흰 마음, 순심()과 소심()이 살아나게 마련이다.
이 순심과 소심속에는 공부인이라면 다음의 볓가지 정신자세가 필요하다.
1, 참회자의 심경속에는 아무리 늙어도 어렸을때처럼 아닌 마음인 줄 알면 과감히 고쳐서 신선하고 명쾌한 새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자세이다.
고인의 말씀에 라고 했듯이 성자들의 마음자세 속에는 비록 늙었더라도 어린이에게까지 잘못을 고쳐가며 순심을 갖는 자세가 담겨있다. 그것이 참회자의 정신이라고 생각된다.
참회 개과하는 데에는 늙었다 늦었다가 있어서는 안된다.
금강경에 참다운 선행자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어서 안된다고 햇듯이 진정한 참회자는 자신의 모든 선인관념에 사로잡히지 말자. 다만 부끄러워말고 잘못을 정성스레 참회하고 인간다워질 때 건전한 참회인이 된다.
2, 참회인의 정신자세는 항상 시작하는 심경이어야 한다.
비록 자기의 법위가 성위에 올랐다고는 하나 아직 구경지에 오르지 못했다면 어중간한 공부인이 되어 잘하지도 않지만 못하는 것도 없는 상태가 되어 퇴굴심이 나기쉽고 중근기병에 걸리기 쉽다.
항상 시작할때는 누구나 순일한 구도의 심경이었다. 이 구도의 마음이 영생을 일관하기만 한다면 바로 큰 도인인 것이다.
3, 참회자의 심경은 묵은 마음을 근본적으로 없애고 새 마음이 살아나는 새 길을 찾아야 한다.
세상만물은 한번 낳으면 모두가 낡아진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속에는 항상 새롭게 해주는 싱그러운 힘이 있다.
이것이 우주와 함께하고 생명을 같이하는 수명이다. 그러므로 오늘도 내일도 매일같이 생일을 만들자고한 정산종사의 법문은 바로 그 의미이다. 그러나 어제를 죽여야 오늘이 생일이 된다. 그러면 어제를 죽이는 길은 무엇일까. 이것이 바로 참회이다. 과거를 죽인 생일을 맞는 참회다.
참회와 새 인간
참회를 통해서 인간이상의 특수인간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참 인간이 되기위한 몸부림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참회가 필요하다. 그러나 때로는 인간세계를 뛰어넘어가며 뉘우치는 때도 있지만 그것이 바로 인간의 할 일이다. 참회를 통해 갖는 자기고민은 인간을 성숙하게 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불타는 낳아서 죽는날까지 고해로 뒤덮인 인생을 달관하고 그 고해를 극복하는 원리는 자심을 극복하는 길밖에 없다고 관조하고 나서 비참회의 인생에 대해서 비심() 또는 연민심으로 고민했다.
그러나 소태산 대종사는 이같은 연민심까지 한걸은 넘어서서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길을 모색했다.
소태산 대종사가 제창한 훈련법에 보면 일하기전에 준비하고 일할때에 주의하며 일하고 나서는 참회 반성하도록 하여 정기훈련 상시훈련 교당내왕시 주의사항등 어느 곳에서나 일을 마치고 나면 참회반성을 하도록 하는 지도정신에 의미를 찾아야 한다.
인간인 이상 무슨 일이나 완벽이 없으며 설사 완벽하다 하더라도 그 상을 갖게되면 도리어 타락하고 마는 것을 알아서 크게 경계해야 할 일이다. 이제는 인간에게 무류의 행으로 신뢰하게 하는 종교적 영웅주의시대는 지났다.
도리어 지극히 인간다워져서 양심에 호소하여 잘못을 뉘우쳐가며 최대한으로 잘못을 없애려는 노력이 살아날 때만이 공감대를 이어가며 살게하는 시대가 되었다.
항상 참회하며 자신의 나갈 길을 설계하고 다시는 그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계속하게 되면 도리어 바르게 산다고 자부하는 사람보다 더욱 바른 인간이 될 것을 꼭 믿는다.
참회의 인간은 겸허해진다. 그렇다고 죄진 사람같은 심경으로 죄에 사로잡혀서도 안된다. 항상 새 사람의 자기혁명으로 살아가는 마음자세로 건정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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