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주축 놓는 일

요즈음 도하 각 신문들은 5월의 가정의 달을 맞아서 한결같이 가정의 소중함을 여러면에서 일깨워주고 있다. 그 언제 그 어디에서나 가정이라는 것이 소중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고 상식중에도 상식이어서 도리어 새삼스러운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러면서도 가정에 관한 저 번다한 문제들은 백번을 말하고 백번을 들어도 결코 남의 이야기나 남의 일 같지가 않고 때로는 깊은 생각 깊은 번민에까지 잠기게도 한다.
인간에게 가정은 삶의 근원적인 터전을 제공하고 있다. 그 시작이야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그 누구든 사람은 가정에서 태어나게 되고 자라게 되며 또 생장해서는 이 가정을 보살피고 꾸려나가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여기에서 숨을 거둔다. 애당초에 가정이라는 것이 별다른 것이 아니라 거저 그렇고 그런 것이려니 하는데 이는 사실상 어쩔수도 없는 것이다.
어쩌면 가정이라는 그 자체의 존재의의와는 상반되는 행위로 여겨지는 출가라는 것도 물론 그것은 집을 넘어서가는 길이라고는 하나 가정을 부정하고 버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온 인류 온 세상을 한 권속 한 집안 만들자는 사뭇 뛰어난 뜻이 앞을 서고 있다. 그래서 말하자면 세계를 축소한 것이 가정이고 가정을 확대한 것이 세계다. 가정 사회 국가 세계일즉다 다즉일의 서로의 모든 것이 저마다 다른 것 같으나 실은 한 판도에 지나지 않은 것이며 이것은 분명히 한 울안의 질서다. 그러면서도 항상 그의 이상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자기의 집으로 귀일하고 있는 그 자신을 저버리지 못한다.
이렇듯 우리네 가정은 인간 기초의 바탕으로서 이러한 가정의 바탕으로 사회를 이루고 국가를 이루고 있다. 우리네 가정은 사회와 국가를 조명해주는 거울이며 바로 그 자신의 얼굴이라는 것을 항상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자기라는 내면적 실체를 자각하는 공동체이어야 한다. 건전한 가정은 곧 밝고 활기에 찬 사회로 나타난다. 참되고 슬기로운 가정은 또한 유연하고 전진하는 국가로 그 모습을 나토게 된다. 가정으로서의 기능이나 구실조차 다하지 못하고 우리네 가정이 기울어지고 말때라는 것은 물론 있을수도 없지만 있다면 그것은 한 개인만의 그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 국가 전체의 불행이라는 것을 명심해두지 않으면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네 가정은 해체의 위기에 직면해 잇다는 사실을 감출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노릇을 어찌해야 하는가. 그 해체의 원인이야 안에 있든 밖에 있든 다만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재구성재창조라는 새 생명의 작업이다. 이미 축이 무너져 내리고 기체가 다 삭아버린 것이다. 어느 정도의 수리보완이라는 것은 초조한 상황논리지 근원적인 해결책이 못된다. 이제 새 가정의 튼튼한 기초는 정신주의적 낡은 화석이나 물질주의의 기계적 조립구조가 그 중심에 들어설 수 없다는 것은 새 시대의 양심이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증언을 들어서도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원래 가정은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답게 살기위하여 이루어진 인간의 기본적 라 하였다. 새 가정의 기초는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사는 길을 스스로 여는 데에서 다져지는 것이다. 이제 새 가정의 정신적 주축을 하나씩 하나씩 올바르게 세워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새 가정의 정신적 주축은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통하여 새 시대의 양심을 불 밝혀주는 곧 마음의 등불이다. 바로 이일 아니면 사람은 사람답게 살 수 없고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들이 설 한 치의 땅도 없다. 만유가 한 체성, 만법이 한 근원인 진리적 공동체의 자각도 보은하고 창조하는 보람도 효도하고 우애하고 화합하고 협동하고 조화하고 나아가서는 세계  인류가 하나되는 기쁨도 새 가정의 품안에서만 양성된다. 진리를 신앙하는 가정, 도덕훈련으로 거듭나는 그러한 생동하는 가정에서 새 역사의 정초는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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