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사 선정 훌륭한 어머니 상 받아
최여사는 1904년 광주 양림동 태생으로 김용환 의원(5대 국회의원 69년 작고)의 미망인. 광주 수피아학교 고등과에 재학하던 15세때 3.1운동에 참가, 독립만세를 앞장서 외치다 일경에 체포 심한 고문을 당하고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 후 서울정신학당(정신여고 전신)을 2년 졸업했다. 방학등을 이용해 야학을 하면서 문맹퇴치와 농촌계몽으로 애국운동에 앞장섰다. 졸업후에는 수피아학교 교사로 근무했고 결혼후에도 광주유치원, 광주사립학교 등에서 2세 교육에 힘써왔다.
시어머니가 90세로 별세할때까지 지성으로 봉양했으며 또한 5명의 시동생과 시누이를 알뜰히 보살펴 일본의 명치대 중앙대 경성의대등에 진학시키는 등 시가에 대한 정성이 남달랐고 특히 광주고보 독서회 사건으로 에 체포 3년간 옥고를 치른 시동생 김용준(74 독립유공자)의 뒷바라지에 갖은 고난을 겪기도 했다.
훌륭한 며느리로 내조의 공이 큰 아내로 어머니로도 모범을 보인 최여사는 슬하의 5남2녀를 모두 훌륭히 키웠다. 장남 선균씨는 한국탄산 대표이사, 연균씨는 외과병원장, 3남 양균씨는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4남 남균씨는 태평양화학 제7연구실장이며 장녀 의정씨는 제주은행 전무의 부인이고, 2녀 의신씨는 인천대 강사.
이와같은 최여사의 훌륭한 모습은 평소 그의 검소한 차림과 겸손한 태도로 주위의 교도들 조차 설마 그가 그렇게 숨은 훌륭한 어머니인줄을 몰랐을 정도, 시상식에서도 상받을 자격도 없는 저에게 이런 큰상을 주시니 무어라 감사의 말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겸손해 마지 않았다.
원기 43년 6월 광주교당에서 입교하여 신앙과 수행에 남다른 적공으로 교도의 모범이 되면서 현 서울교당의 11단 단장으로서의 역할을 팔순을 바라보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성실히 수행, 단원들은 단장의 지시라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믿고 따르며 지시에 순응하여 서울교당에서 가장 단결되고 모범적인 교화단을 이끌고 있다.
원기 63년 6월 화타원이라는 법호를 받았고 항상 검소하고 단정한 용모에 자비스런 어머니의 덕상을 갖추어 주위의 모범은 물론 서울교당 교도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원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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