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아직 교조시대에 살고 있다.
금년 6.1대재로써 우리들은 교조 대종사 열반40주년을 기념하게 되었다. 대종사께서 지금 세상에 살아계신다면 세수 93세라는 고령을 누리셨을 것이다. 대종사께서 돌아가신 해가 지금부터 40년 전인 원기 28년 서기로 치면 1943년이며, 암흑기의 질곡속에서 53세라는 길지 못한 생애를 마무리 짓고 거연히 떠나신 것이다. 물론 우리 대종사의 대열반상을 놓고 구태여 세속적인 판단으로는 자연사라 일컬어진다지만 참으로 범속한 심정으로는 헤아리지 못할 그러면서도 무엇인지 절실히 가슴에 와 부딪치는 일대 비극이었던 것이다. 그때 그렇게 갑자기 대종사께서 떠나심은 교단으로나 세상으로나 실로 예기치 않은 엄청난 상실이며 길이 잊혀지지 않을 충격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대종사께서는 이른바 임종을 맞은 자리에서도 한가지 유촉도 한귀절의 게송도 특별히 시사하시지 않았다. 그런식의 어떤 전통적 절차같은 것을 마련해야겠다는 필연성을 원치 않으셨다. 생활의 평상속에서 그의 유게나 유촉은 이미 다 유감없이 설시되었다. 생활의 장이야말로 일체생령 총화의 근본 바탕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 진리를 가지고 살며 그것은 당연히 보편화되고 생활화 하는 것으로 그 방향을 이끌어 주었다.
대종사는 그의 죽음같은 것을 예시하는 표현방법에 있어서도 그 장면이 너무나도 소박한 동화이고 또 우연적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가령 내가 이제는 깊은 곳으로 수양을 떠나랴 한다. 만일 내가 없더라도 퇴굴심이 나지 않겠는가. 스스로 반성하여 마음을 추어 잡으라는 말씀은 마치 우리네 아버지와도 같은 일상성과 애정어린 보살핌이 스며들게 한다.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정히 심판기라 믿음이 엷은 사람은 시들것이요 믿음이 굳은 사람은 좋은 결실을 보리라. 나의 법은 신성있고 공심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받아가도록 전하였으니 법을 받지 못하였다고 후일에 한탄하지 말고 하루속히 이 정법을 마음대로 가져다가 그대들의 피가 되고 살이 되게 하라이와같은 자비심절하신 법문도 의례이 하시는 시교인 줄로만 알았지 저 미묘하고 절박한 내용은 전연 터득할 수가 없었으리라. 금강산이나 혹은 지리산으로 정말 수양길이라도 떠나실 줄 알았다니 동화와도 같은 우연히 냉혹한 현실일줄이야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대종사는 일찍이 떠나셨다. 대종사의 모습이나 숨결 그의 낭랑하신 목소리는 이제 그 언제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고 들을 길이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은 대종사의 시대(교조시대)에 살고 있다는 자각을 저버리지 못한다. 대종사는 아직 백세를 넘기지 않으신 93세의 노장으로서 지금도 중앙총부 그 어느 곳에서나 뵈올수가 있고 대중을 직접 지도하고 계시리라는 것은 일종의 착각일런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게 믿고 그렇게 알고 언제 어디서나 대종사를 모시고 대종사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지복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들에게 참신하고도 드높은 긍지와 사명의식을 안겨주는 것은 우리들은 지금 교조시대에 살고 있다는 싱싱하고 순결한 신앙의 생명력이라 할 것이다. 그것이 아닌 일시적인 어떠한 자기도취나 기계론적인 논리도 우리의 시대가 추구해야 할 참된 보람이 못된다.
아직도 제2대 창립의 역정에서 백년대를 바라보며 나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언제나 흐리지 않고 때묻지 않은 싱싱하고 순결한 신앙심이다. 그것만이 모두이고 전체인 것이며 전생명력이라야 한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어떠한 부득이한 에서든 우리들이 선 근원의 바탕이나 본연의 것이어야 할 그 모습이 함부로 변질되어 간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현상이다. 대종사의 이 법을 붓으로 쓰고 입으로 말하여 후세에 전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몸으로 실행하고 마음으로 증득하여 만고후세에 이 법통이 길이 끊기지 않게 하는 것은 더욱 중한 일이라 하셨다. 늘 대종사를 모시고 사는 순일한 정성으로 보본과 보은의 바른 기틀을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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