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기 희생자들, 우리 모두가 치루어야 할 이 시대의 죄값

이 충격 이 비극을 무슨 힘으로 감당하고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9월1일 새벽, 「사할린」근처에서 대한항공 소속 보잉 747여객기가 소련공군 전투기의 미사일 공격으로 피격 추락, 승객과 승무원 269명이 희생된 세계항공사상 초유의 일대참변은 마침내 전 세계인류를 경악과 비탄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단 말인가. 사람사는 세상에 어떻게 그럴수가 있단 말인가. 도무지 어처구니가 없고 믿어지질 않는 사실이다.
더구나 정보소식통에 따르면 소련전투기는 대한항공 여객기가 떨어지기 두 시간전부터 이를 이미 뒤쫓아 오면서도 하등의 사전경고 조치도 없이 공대공 미사일로 요격했다는 것은 어느모로 보나 의도적인 행위로서 이것은 결코 그 누구의 어떠한 변명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인천이 공노할 비인도적 만행이라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 잇다. 우리들은 지금 이 시각까지도 이러한 끔찍스런 참사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가해 당사국의 계획적 의도에서가 아니고 지역적 일부 군부의 피해망상적인 망동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의 지혜와 노력의 결실인 과학기능의 증명앞에서는 어떠한 은폐의 수단이나 거짓은 벗겨지기 마련인 것을 어찌하랴.
이렇듯 용서받을 수 없는 극악의 죄과를 저질러 놓고도 일단의 사죄는 커녕 그 진상규명마저도 거부하고 나서려는 소련당국에 대하여 국내는 물론 전세계 사람들은 이 세계악을 규탄하는 처절한 함성을 터뜨리고 있다. 희생자를 낸 피해당사국은 말할것도 없고 진리와 정의 자유를 사랑하는 온 세계 민중과 중공을 비롯한 여러 사회주의 국가에서까지도 분연히 궐리하여 소련의 만행을 정죄하고 있다. 지금 진리의 눈이 소소히 밝고 정의의 말씀이 역력히 울려오는 이 마당에서 소련은 언제까지나 자신의 양심의 명령마저 거부하고 그 거창한 짐승의 몸부림으로만 도사리고 있을 작정인가. 겨우 한다는 소리가 KAL기를 격추시킨 그 검붉은 마수를 저으면서 「그런 일이 없었다」또는 「미국의 첩보용 비행기였기에 격추시켰다」는 등의 뉘우침없는 무쇠같은 변명은 어디에도 통할 수 없는 허위의식의 독백에 지나지 않는다.
백보를 다 양보하고 설사 비무장의 한 민간 항공기가 자기네 나라의 영공에 좀 들어섰다 치더라도 이를 적절한 제재를 가하여 유도 착륙시켜 놓고 그 다음 합리적인 책임추궁을 하는 것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할 공법적 관행이며 인도상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요즈음 말로 이른바 「초강대국」이라 자처하는 나라의 처사라는 것이 고작 일말의 인간적 양심마저도 찾아볼 수 없는 반문명적 약육강식의 야수적 작태를 노출시키고야 말았으니 이것은 분명히 말세적 현상과 함께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집단이기주의의 그 종말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스스로의 몸부림이라 할 것이다.
우리들은 이제 불시경각에 269명이라는 존귀한 생명을 저 북태평양의 망망한 허허공중 벌판에 날려버리고 허탈 충격 비탄에만 사로잡혀 있을 수만은 없다. 우리들은 반드시 이 처참한 생명의 현장에서 혼비백산하여 사라져버리고 없는 이 생명들, 이 생명의 존엄성을 되찾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을 물질적 전쟁도구로 밖에 여기지 않는 저 붉은 물질의 노예들의 막된 행패가 분명히 이것으로써 마지막임을 증거해 주는 소중한 계기가 되게 해야 한다. 이제 비명에 간 269명의 인명은 진리를 저버리고 생명을 경시해 온 우리들 모두가 치러야 할 이 시대의 죄값을 대신 치르고 희생했다는 뼈아픈 자각을 온 인류의 마음에 일깨워준 것이다.
그래서 이번 KAL기의 피격사태는 단순한 정치적인 문제의식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이것은 본질적으로 생명과 도덕의 차원에서 인류공동체 그 피흐름의 원류에서 전체적으로 감싸고 다스려지지 않으면 안 될 이 시대의 중대한 「표식」으로서 보다 선명히 아로새겨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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