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위해 무엇을 주어야 하나

대산 종법사는 11월 성업봉찬회 위원총회에서 교단창립 제2대와 대종사 탄생백주년을 앞두고 재가 ㆍ 출가 전 교도는 이 기간(원기 68년부터 76년까지)을 대신성 대적공 대보은으로 봉공하는 특별기간으로 정하여 교단과 세계에 크게 이바지해야 한다고 논시했다. 우리교단이 성업봉찬이 처음인 것은 아니다. 우리교단사의 맥락은 개벽의 여명기를 지나서 새회상 창립기를 맞았고 새 회상 창립 30년대부터 50년대까지 성업의 결실기로 이어져온 셈이다. 그래서 성업봉찬 사업은 원기 30년대의 창립 제1대 성업봉찬사업 개교반백년 성업봉찬사업에 이어 교단창립 제2대와 대종사탄생 백주년을 맞는 원기 76년까지 세 번째의 역사적인 발기를 갖게 되었다.
무릇 세상 일이라는 것은 어느 한 가지도 쉽게 이루어지고 함부로 되는 것이 없다. 「이 세상은 대소유무의 이치로써 건설되고 시비이해의 일로써 운전해 간다」는 「事理」에 비추어 볼 때 더욱 그러하다. 어느 일 무슨 일이든 일이었다. 혹은 일이 생긴다 하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와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반드시 우주적인 복합의 인과원리에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설사 그게 개인에게 한한 것일지라도 그 내면에는 공동체의 발자욱과 숨결이 얽히고 설켜 잇다. 하물며 작은 일이 아닌 큰 일, 개인의 일이 아닌 공공의 일, 대성업에 이르러서야 더 말할것이 없는 것이다. 큰 일, 공공의 일일수록 거기에는 그 역사적 계기가 분명히 작용해야 하고 그가 수용하는 입장의 공정성, 그가 성취하고 기여하는 방향의 원만성에 대하여 공감하고 예기하는 인식이 뚜렷함으로써 그것은 그 누가 그 어디에서 바라본다 하더라도 항성 정당한 것이 아니면 안된다. 그 동기와 과정 결과라는 것이 한결같이 공변되고 공명하며 마침내는 공정해야 된다는 것이 그 귀결이다.
우리 교단으로 하여금 교단 창립 제1대와 개교반백년을 기념하여 벌여온 성업봉찬사업의 결신은 어떤 것이었던가. 두 번을 이어 치룬 성업봉찬사업에 대한 평가는 이제 자명한 것이다. 우리 교단이 교화 교육 자선의 3대 지향 목표를 정하여 그 터전과 기틀을 여기에 정착시키는 한편으로 대종사와 교단창립 선진에 대한 보본과 보은을 위한 기초도 아울러 닦게된 것이 제1대 성업봉찬 사업을 통하여 이루어졌고 개교반백년을 기념하는 교단창립 50년대에 베풀어진 성업봉찬 사업은 이미 창립 제1대에 다져진 터전에서 「성업의 결실」을 이루어낸 결실기 교단사적 과업의 수행이었다. 그 일이라는 것은 그 때를 따라 발천이 되고 이루어지는 것이 순리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대범스런 이치에서 우리 교단사는 개벽의 여명으로부터 새 회상 창립의 시기를 거쳐 성업의 결실기를 이제 마무리 지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미 그 때를 알고 그 때에 따라서 그 일을 하고 있고 또한 그 때를 위하여 그 일을 준비하고 예비해야 하는 여유속에서 교단발전의 총체는 기동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점검되고 확인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들은 제3차 성업봉찬 사업을 일으키면서 다만 한줄기 자체 반성이 없을 수 없다. 우리들은 과연 오늘날까지 이 교단의 역사를 이끌어 오면서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 우리들 자신은 어떻게 되어 있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되어갈 작정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어떠한 물량적인 평가에도 어떠한 차원의 가치평가에도 자부할 수도 자족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절대 진리의 정신 그것만이 우리들을 우리답게 바로 세우고 바르게 지침하는 그 전체적인 삶의 표준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날의 교단사적 과정에서 이루어온 내외의 모든 일들이 내실을 기하는 과업으로 확충되는 것이라면 지금부터의 방향은 68년간 길러오고 쌓아온 이 교단의 저력을 통하여 이 사회 이 나라 이 세상을 위하여 과연 무엇을 이바지할 것인가 하는 것으로 집약되어야 하고 교단내의 향상과 발전이 곧 이 나라와 세계의 향상과 발전으로 그 뜻을 함께하는 것이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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