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이 지배하는 사회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지배해온 원리는 경제 성장을 목표로 둔 능률 제일주의였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결과를 얻고자 하는 경제원리가 가장 우선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경제발전의 과도기에서는 당연한 원리다.
 그러나 분배측면에서 보면 특히 근로자 입장에서 공정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가 부의 공정한 분배가 아닌가 본다. 사람이모여 사는 사회는 룰이 지배한다.
 어떤 위정자의 즉흥적 결단이 아니고 목소리가 큰 사람의 소리도 아닌 규칙이 조직사회의 규율원리여야 한다.
 성장의 과실은 공정하게 거기에 기여한 자에게 룰에 다라서 배분돼야 한다.
 경제는 과실을 열게 했지만 골고루 나누고 합리적이성적으로 행동하게 하는 정신적 요소에는 책임이 없다. 이것을 해결하는 것은 능률이 아니라 원칙이며 규칙이다.
 모두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행동하고 어기는 자에게는 불이익이 가야하며 거기엔 누구든 차등이 있을 수 없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과연 원칙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어 왔던가? 아니 그런 확정된 원리라도 있었던가? 이제 바야흐로 우리 사회도 물적으로 이룬 결과를 규칙에 의하여 정리해 가는 성숙도니 곳으로 정리해 가는 성숙된 곳으로 이행을 해야 할 것이다.
 한 해가 다시 저문다.
 이제 한 달을 남겨둔 입장에서 지난 일년을 뒤돌아보면 크고 작은 일들도 많았지만 국민의관심사가 집중했던 것들 중에서 비리 관련 국회 청문회와 토지공개념 문제를 빼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두 문제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 해를 넘기기 전에 오공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겠다는 것이 정치권의 의도인 모양인데 지켜 볼 일이다.
 토지 공 개념 문제는 많은 논의를 거듭하고 이제 법률안으로 정기 국회에 상정돼서 국회의 처리에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상태이다.
 근로자들의 공정분배 욕구의 분출과 치솟는 부동산 값으로 야기된 문제점은 금년에도 역시 명쾌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로 사회불안의 요인으로 심화됐을 뿐이다.
 정치야 그렇다 하여도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와 닿는 의식주 중에서 하나인 주거 문제에 대해 보면 다른 시각에서 볼 때 모두가 국가에 불만스러움을 표출하고있음을 어찌하랴!
 본래 자본주의 사회는 사적 공유물에 대해서 그 소유자에게 절대적 권리가 있으며, 국가나 법이 간섭할 수 없음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빈익빈부익부의 악순환을 거치면서 드러낸 모순을 시정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면서 대두된 개념이 공공복지이다.
 신성시 됐던 개인의 소유권보다 상위에 공공의 복지가 자리를 차지하게된 것이다.
 다라서 사회질서나 공공의 복지 증진을 위해서는 개인의 소유권도 제한을 받게 될 수 있음을
또한 제도적으로 확립하였음을 의미한다.
 특히 부동산은 다른 재화와 달라서 그 양은 한정되어 있으나 이용은 증가되고 인구의 증가에 따라서 그 부족은 심화될 수밖에 없으니, 개인의 사용이 제약을 받기 마련이다.
 이런 특수성 때문에 부동산의 경우만은 개인의 소유에만 그대로 맡길 수가 없는 공공성을 갖는다는 것이 부동산의 공 개념이다.
 우리나라이 부동산은 토지와 건물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토지 쪽이다.
 위의 이론에 따르면 궁극적으로 부동산의 소유는 국가나 공공기관이 하고, 국민은 사용권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부의 편재에 따라 부동산의 소유도 왜곡되고 모두가 골고루 부동산을 이용할 수가 없게 되므로, 일반 대중을 보호할 수 없어서 사회 불안의 요인으로 작용하므로 이 경우야말로 공의 이익을 위하여 자본주의 원리가 수정돼야 한다는 논리다.
 물론 초기자본주의의 입장에서는 사적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므로 자본주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하지만, 보다 상위원리의 지배를 받음을 알아야 한다. 정도가 문제겠지만 국가는 완전한 부동산의 공 개념화를 위해서는 모든 개인소유의 부동산을 매입해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를 부담한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공 개념 도입은사실상 불가능하므로 택지의 개인소유 상한선을 정하고 토지 과다 보유자에게 증가세하고, 주변토지가 개발되어서 발생하는 이익을 국가가 환수하여 그 재원으로 부동산 개발, 서민주택 건설을 하는 등의 중간적인 방안을 택하겠다는 것이 이 법의 의도인 듯하다.
 그러나 사실은 과다 보유된 토지는 그 대부분이 택지가 아니고, 상업지역은 이 제한에서 제외되므로, 택지에만 소유상한선을 정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으며, 기업이 설비자금이나 차입금 등으로 많은 토지를 비업무용으로 보유하고 이를 담보로 또 금융을 얻고, 특히 증권회사나 투자신탁 등이 증자나 기타 모은 돈을 지점신설을 이유로 중요도시의 큰 땅을 마구 매입하여 부동산 투기 조장의 결과를 초래하는 현실에서 이런 피상적인 법률로 어느 정도 투기억제 효과를 거둘지 심히 의심스럽다.
 년 간 수십 조원에 달하는 부동산 상승차액이 불로소득으로 발생한다니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건전한 근로 의욕은 상실되기 마련일 것이며, 상대적으로 성실한 직업인에게 빈곤 감을 심어주므로 사회 기층을 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쉽게 번 돈이 과소비로 왜곡돼서 나타나고 어느 근로자의 이야기처럼 형무소에 갈 각오로 싸워서 몇 만원의 급료인상을 실현시켰으나, 집세나 물가는 그보다 훨씬 뛰니 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난감한 처지라는 것이다.
 폭력적 노동운동을 공권력으로 막아서 막아질 수가 있을 것인가.?
 최루탄으로 학원이 안정돌 것인가.
 이런 악순환과 모순, 혼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서두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로의 회귀만이 이와 같은 난제들을 풀 수 있을 것이다.
 <원광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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