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 삶의 자발적인 표현

봄이 오고 있는 길목은 평온한 상황이 아니다. 한 겨울동안 굳어질대로 굳어져 버린 두터운 얼음장이 아직 이 거리 저 거리, 이 골목 저 골목에 그 스산한 회색의 잔해를 녹여내지 못하고 있다. 기상은 연 20여일을 영하권에 머물은 채 매서운 추위를 떨치고 있다. 입춘을 넘긴지가 벌써 10여일이 지난 요즈음에사 날씨도 어쩔수가 없다는 듯 차츰 풀리기 시작하여 정상기온을 되찾게 되었다.
아닌게 아니라 한 길에 나서 잠시 눈을 들어 먼 하늘 먼 산을 바라보노라면 저 봄의 신기가 아른거리고 수런대는 소리를 느끼게 한다. 진정 봄의 여왕은 지금 이렇듯 어느 먼 천궁의 층계를 내려서서 그 훈훈한 자락을 서서이 펼치며 발자욱도 사운 사운 가벼운 걸음으로 오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실은 그런것이 아니라 봄의 그 참하고 아릿다운 처녀는 이미 저마다의 신부로 맞이하였다. 봄은 저마다 저절로 하는 그 발상이다. 새 생명의 탄생이다. 새 생명의 실체 그대로의 작용이다. 봄은 벌써 우리들의 품안에서 우리들의 거리에서 우리들의 이웃에서 우리들의 거실에서 우리들의 한길에서 우리들의 발밑에서 觸ㆍ의 눈망울에서 옥토끼의 뿔에서 진흙소와 돌게집의 궁둥이에서 끊임없이 사라지고 있고 탄생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온누리는 그대로가 다 온통 봄소식, 봄의 계절인 것이다.
눈 덮인 저 언덕에 올라가 문득 아래를 살펴보면 눈 속의 깊은 지심에서도 한줄기 일렁이는 청순한 햇빛에 응답하여 파아란 새싹이 수줍은 속살을 들어 내놓고 있는 그 싱그러운 한떨기의 자태와 만나게 된다. 냉이니 쑥갓이니 하는 귀여운 이름을 지닌 봄의 향긋한 숨결, 봄의 새 생명들. 여기서 곧장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산자락을 타고 산중턱 산골짜기에 들어서서 또한 청렬하고 정려한 봄의 운곡을 듣게된다. 두터운 어름장 밑으로 좔좔좔 흘러내리고 있는 산골 물소리에 귀를 기우리고 있노라면 온 산중이 그 산골 물 흐르는 소리로 가득차 있는 것을 느끼면서 그것이 비로소 적정의 화음인것을 깨닫는다. 여기가 봄의 모습 그 실체가 아닌가도 싶은 성급하고 부질없는 생각, 그러나 대자연의 순환과 순리는 참으로 눈물겹도록 고맙기만한 것이다. 언제 어디서 듣고 본다하더라도 그 자태 그 목소리는 우리들의 고향으로 되돌아온 자기자신에 대한 조명에 스스로 경이할 따름이다. 경이란 곧 삶의 천진, 그것의 자발적인 표현일 따름이다.
이제 우리들은 이상 더는 움츠리고 있어서는 안된다. 이제는 겨울이 끝나는 마당이다. 움츠리는 것은 일면 자연스런 작태이기도 하지만 생명의 기상이라고는 볼 수가 없다. 겨울의 냉혹한 맹위가 만상을 얼어붙게 하고 마침내는 겨울 자신의 그 품안으로  일체만물을 모조리 「肅殺」하여 버리지만 여기가 대자연의 헤아리지 못할 오묘한 뜻이라는 것이다. 일체만물을 온통 속속들이 살려내는 은혜와 상생의 한 바탕이 이렇게도 엄청나게 개벽하는 새봄의 동산에서 톡톡톡 겨울 落塵을 다다 털어버리고 우리들은 정말 움츠렸던 양어깨를 활짝 펴고 이 새 천지 우주의 대기를 마음껏 내뿜어 보자.
생명에 대한 존엄성은 목이 쉴만큼 외쳐대지만 한 생명과 한 생명의 탄생에 있어서의 외경과 경의로운 눈빛은 어디에다 잃어버렸는지 그리고 봄을 기다리는 우리네의 무구하고 순수한 마음과 함께 사람 세상의 이 인정의 봄철은 활짝 펼친 탄탄한 양어깨위로 파아란 봄의 햇살이 내리고 여기에서부터 새 천지의 새 생명의 새로운 탄생이 그야말로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 스스로의 지엄한 메시지를 우리들의 소중한 마음에게 이웃에게 전해주고 일깨워 주어야할 것이다. 물이 얼어서 얼음이요, 얼음이 녹아서 물일진대 이 세상 긍정 부정은 반드시 상대개념으로 끝나지 않는다. 부정속에서는 반드시 긍정을 발견하고 긍정속에서는 반드시 부정을 찾아내여 상극과 독단을 지양, 병행하고 조화하는 진리정신 여기에 삶의 공동체가 살아있고 행복의 원천이 늘 샘솟는다. 이제 머지않아 대동강과 임진강 한강과 낙동강에서 절벽처럼 얼어붙은 얼음이 봄 햇살을 받아 시나브로 무너질 것이다. 인류와 남북 우리겨레의 역사의 업장도 이렇듯 무너지는 날을 다같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기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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