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된 세력에 매달려 온 허위의식

최근 도하 신문들은 문화공보부가 경제기획원에 의뢰하여 전국의 상주인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각 종교인구의 실수집계를 보도한 바 있다. 신문보도에 따르면 각 종교단체가 문화공보부에 보고한 교세는 전체인구의 86.45%에 해당하는 3천3백만명이나 되었는데 작년가을 정부가 광복 후 처음으로 조사 실시한 종교인구는 총 인구의 39.29%에 지나지 않아 그동안 종교인구의 조사 집계가 얼마나 허술했는가를 입증한다고 종교인구가 종교계의 자율적 보고와 정부의 공식적 조사 사이에 무려 45%나 차이가 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경제기획원의 종교인구 조사 내용이 대체적으로 정확성을 기하였다고 덧붙였다. 말하자면 행정기관(시 ㆍ 도)을 통하여 실시한 이번 종교인구 조사는 「가족끼리 서로 다른 종교까지 조사했다는 것, 종파분류의 범위는 수계나 영세받은 사람만이 아니라 절에나 성당에 다닌다는 사람은 모두 포함시켰다는 것, 유교의 경우도 마찬가지. 유림단체나 향교에 가입한 사람은 물론 유교의 법도를 철저히 따른다는 사람까지 포함했다는 것, 천도교 원불교 역시 교당에 다니는 사람은 모두 포함시키는」등 매우 포괄적인 조사방법으로 종교인구를 수용 집계한 것이라고 한 신문은 그 경위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작금의 정부 조사결과는 종래 교계가 주장해온 내용들과는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현상으로 나타나서 여기 관련있는 종교계가 스스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간 우리나라의 민간이나 공공기관 또는 정부기관에서 제시한 소위 「통계」라는 것에 대한 공신력을 우리들은 과연 어디까지 인정해야 되는가에 대해서도 일종의 단연한 의문이 없을 수 없다. 앞에서 말한것과 같이 종교 인구조사에 대한 정부의 포괄적인 기준이 일선 조사요원을 통해서 유감없이 활용되었는가의 여부에 있어서도 가위 만족할만한 긍정으로 반영되기 어려운 실정이며 당국의 조사에 각 종교인 모두가 얼마만큼 의식적으로 성실하게 대응하고 협조해 주었는가에도 역시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면 우리들은 지금 이 마당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우리 교단 또한 이번 종교 인구조사에서 지적을 받게 된 당사자의 일원이기 때문에 그간의 옳고 그르고 하는 어떠한 원인행위 이전에 먼저 종교인으로서 자괴심을 떨쳐버릴 수 없고 자성을 금치 못하는 것이다. 더구나 교화의 제일선에서 온갖 애로도 가시밭길도 마다하지 않고 오로지 무아의 헌신으로 소리없이 구도와 봉공의 이 한길 닦아 가고 있는 출가 재가 모든 도반동지들께 무엇이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 것인가. 어찌되었든 우리교단 70년 교화가 이번 일로 하여 스스로 깊은 반성을 하고 더욱 분발하여 이것이 발전과 전진의 시금석이 되어야 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종교인구의 집계 ㆍ 통계에 대한 공신력 문제에 있어서는 객관적인 입장인 정부의 노력을 신뢰해야 되고 주관적 객관적 입장을 모두 넘어서서 교계나 당국은 이번일뿐 아니라 금후 자체의 여러일에 있어서도 사회와 세상의 신뢰도 ㆍ 공신력의 기반을 확립하는데는 正敎同心의 한결같은 공동협력이 요청된다 할 것이다.
다시한번 생각해 보자면 종교교단에 있어서 몇 백만이다, 몇 십만이다 하는 「숫자」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과장된 세력에 매달려 살아온 이른바 허위의식이 이 얼마나 허황한 물건이냐 하는 것이다. 우리들, 우리의 것, 그리고 우리 교단은 자신에 대한 긍지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어찌하여 소중한 것인가를 항상 새롭게 깨달으며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자기에 대한 자신이 없고 그의 안에서 깨달음의 혼이 사라졌을 때 밖으로 구하는 것은 저 허위의 울타리일 뿐이다. 우리 교단 최초의법인사도인 9인의 선진은 불과 아홉사람의 혈심을 모아 새 회상 만대의 정신기반인 「법인성사」를 일으켰고, 정관평 허허너른 갯벌땅의 방언공사도 이루어냈다. 더욱 왜정때 한탄 주재소 순사의 호출에도 응하여 역사악의 구조를 잠정적이나마 누그러뜨린 외로운 대종사, 새 부처님의 落草慈悲를 우리는 오늘날 우리의 마음에 어떻게 새겨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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