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따라 물따라 도반의 정 나누는
고적답사는 끊어진 전통의 맥 잇는 작업
문화재 전문가 황의수 회장 안내로 안목 키워

 요근래 고적답사의 붐이 불면서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원기79년 3월 첫 답사를 시작한 이래 교도들을 중심으로 매월 1회의 답사를 통해 도반의 정을 나누고 있는 운수회 15차 정기답사(9월18~19일)에 동행했다.
 이번 답사는 경북 안동하회마을과 영주 부석사를 중심으로 한 인근 유적지를 둘러보았다. 이번 답사는 안동을 중심으로 한 유가의 유적과 영주를 중심으로 한 불가의 유적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이날 답사에 참가한 회원 26명은 18일 아침 9시 양재 서초구민회관 앞에서 출발했다. 버스가 출발하자 회장(법명 , 강남교당)은 이번 답사의 일정과 의미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충주를 지나면서 황회장의 구수한 설명은 끝없이 이어진다. 차창 너머 주변의 역사와 전설 등을 재미있게 설명, 회원들의 눈과 귀를 쫑긋 세우게 한다. 수안보를 지나 이화령을 넘으면서는 군사용어인 보의 의미, 왕건과 견훤의 싸움터였던 이곳을 해박한 역사적 지식과 안목으로 설명한다.
 황회장이 이렇게 자상한 설명을 덧붙인 것은 답사가 일제와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끊어진 우리의 전통을 잇는 작업이라는 신념에서이다. 그는 회원들에게 답사를 통해 우리문화를 사랑하고 볼줄아는 안목을 키워주고 싶은 것이다.
 지나는 곳마다 무슨 사연이 그리도 많은지 정말 우리 국토 전체가 문화유산이라고 한 말이 실감됐다. 메모지 한장없이도 자상한 설명을 하는 황회장의 오랜 이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KBS문화센터 전통문화답사반에서 만난 회원 한 분은 황회장의 이런 매력에 반해 대구에서까지 이 답사에 동참했단다.
 운수회는 황회장이 서울 청운회장을 맡았던 원기 79년 창립됐다. 당시 서울동ㆍ서부교구장이셨던 ㆍ 교무님의 적극 후원으로 청운회원들을 중심으로 창립됐다. 이름은 운형수제에서 따왔다. 황회장은 바람과 물을 벗하는 말과 답사회의 이미지가 딱 맞지 않아요라고 묻는다.
 황회장은 지난 1983년 민학회 총무로 첫 답사를 시작한 이래 수백번의 답사를 통해 안목을 키워온 문화재관리 전문가이다. 건축공학과를 나온 황회장이 건축을 전공하게 된 것은 첫 직장을 고건축설계사무소에 들어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이 길에 들어선 것은 민학회 총무를 맡으면서부터. 이제는 눈을 세계로 돌려 인도, 중국, 일본 등을 답사, 비교연구를 하고 있다. 현재는 한국문화재보존기술진흥협회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차는 문경, 예천을 지나 오후 1시 30분 하회탈박물관에 도착했다. 점심은 이곳의 제사음식인 헛제사밥을 먹었다. 늦은 점심이라 먹을만 했다. 답사는 보는 것 못지않게 먹는 재미도 빠뜨릴 수 없다. 황회장은 이런 면에서도 상당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하회탈박물관은 하회탈과 별신굿으로 유명한 이곳의 특성에 맞게 한국탈 19종류 2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드디어 하회마을에 도착했다. 물돌이동으로도 불리는 이곳은 바다물이 굽이굽이 도는 영산성지처럼 수태극 산태극의 절묘한 형상과 깨끗한 백사장, 만송정의 푸른 솔숲 등 빼어난 자연경관과 함께 한국민족문화의 한 전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풍수지리학상으로는 연화부수형의 명당터이다.
 원래 하회는 허씨와 안씨가 터를 잡고 살다가 고려말에 류씨가 이주하면서 17세기 이후 류씨의 집성촌이 됐다고 한다.
 우리는 이곳의 대표적 종택으로 솟을대문을 자랑하는 양진당과 충효당을 찾았다. 양진당(보물306호)은 입향시조인 전서공이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이다. 하회에서는 드물게 정남향을 향해 있다. 현재는 겸암 종택으로 13대 종부가 거주하고 있다.
 황회장은 이 건물은 1600년대 건물로 ㅁ자모양의 안채와 안채에 이어져 북쪽으로 행랑채와 나란하게 지은 ㅡ자모양의 사랑채가 있다며 종택답게 실용성보다 관습성을 존중한 이 마을 의 집이다고 설명하자 회원들은 아하는 탄성을 자아낸다.
 우리는 발길을 의 종택인 충효당(보물414호)으로 돌렸다. 충효당은 전면에 보이는 화천과 원지산의 경관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도록 서쪽을 향하고 있다. 황회장은 이 종택도 양진당과 마찬가지로 행랑채와 사랑채, 안채, 사당으로 구성됐다고 소개한다.
 나오는 길에 현대식 한옥건물을 둘러보았다. 어느 부호가 어머니의 7순기념으로 지은 건물로, 전통한옥의 현대적 적용의 모범이 될 만한 건물이라고 한다. 외관은 전통한옥에 내부는 현대적으로 꾸몄다.
 우리는 하회를 나와 안동시 법흥동에 위치한 안동 임청각(보물 182호)을 찾았다. 낙동강 강변에 위치한 이 집은 행랑채가 어찌나 큰지 압도당할 정도이다. 황회장은 조선초기 사대부의 권위와 특징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고 설명한다.
 오늘의 마지막 답사지는 안동 신세동 7층전탑(국보 16호)이다. 유가의 고택들만 보아오다가 탑을 보니 웬지모를 편안함이 느껴진다. 이 탑은 한국 최대 최고의 전탑이다. 전탑은 석탑과 달리 판석으로 벽돌 쌓듯이 지은 탑을 말한다. 황회장은 이러한 전탑이 유독 안동지역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고 한다.
 이튿날 아침, 우리는 서둘러서 아침을 먹었다. 고유의 한정식에 숭늉까지 마시니 괜시리 포근하다. 차는 도산서원으로 향한다. 잔뜩 찌뿌린 하늘이 걱정됐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선생 사후 4년만인 1571년 사액서원으로 하사한 공립 고등교육기관이다.
 우리는 유물전시관을 둘러본후 서원의 중심건물인 (보물 제210호)을 찾았다. 스승과 제자가 함께 모여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다. 이어 퇴계선생이 머물던 도산서당을 둘러보았다. 퇴계선생의 숨결을 느낄만큼 작은 집이지만 기품과 구조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회원들은 마루에 걸터앉아 일어날 줄을 모른다. 황은진 회원(영동교당)은 여기저기 핀 목단을 보며 서원의 분위기와 퇴계선생의 이미지가 딱 맞는다고 말한다.
 우리는 영주 부석사로 방향을 틀었다. 영주는 경상북도 북부의 거점도시로 예전에는 영주를 거치지 않고는 강원도 쪽으로 갈 수 없었다고 한다. 풍기인삼과 영주사과가 유명하다.
 오전 10시30분 부석사에 도착했다. 말끔히 개인 하늘 사이로 주렁주렁 열린 사과를 바라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부석사는 소백산맥이 휘어돌아 거대한 울타리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위치하여 뭇산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봉황산을 향하여 읍하고 있는 형상에 자리잡고 있다.
 부석사는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갈 수록 공간의 위계가 높아지도록 배치되어 있다. 소위 기승전결의 구성이다. 태백산 부석사라고 쓴 편액이 걸려있는 일주문을 지나면 당간지주와 마주치게 된다. 황회장은 당간은 없어지고 지주만 남아있다고 설명한다.
 당간지주를 지나면 경사지에 쌓은 석축이 시작된다. 황회장은 일주문 위부터 무량수전까지 석축들이 모두 9단으로 크게 나뉘어져 정토사상의 3배9품왕생 교리를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그 설명을 들으니 극락에 오르는 심정이다. 종교에는 이런 종교적 심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묘하게 쌓은 대석단을 지나 범종각 아래 통로를 지나 안양루로 오른다. 안양루 오르는 길은 직선길이 아니라 옆으로 한 번 돌아 올라가게 돼 있다. 황회장은 이는 산을 외경하고 의지하며 자연경관과의 조화를 강조한 우리 문화의 특징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설명한다.
 안양문을 지나니 그 유명한 무량수전이 숨을 막히게 한다. 여러 건물을 보았지만 무량수전만큼 나의 마음을 일시에 사로잡은 건물은 처음이다. 활달하고 당당한 모습에서 고구려식의 웅장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수덕사 대웅전의 섬세한 백제풍과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무량수전(국보 18호)은 부석사의 금당으로 아미타여래를 모신 전각이다. 무량수전은 봉정사 극락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오래 된 것이다. 그러나 규모와 구조방식, 법식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무량수전을 한국 최고의 건축물로 꼽는 이들이 많다.
 이 건물은 고려시대 작품으로 정면5칸 측면3칸의 팔작지붕 형식을 가졌다. 우리는 그 유명한 배흘림기둥에 서서 소백산맥을 정원으로 삼았던 선인들의 기상을 느껴보았다. 초창기부터 꾸준히 참가하고 있는  회원(강남교당)은 전에도 몇번 왔던 곳이지만 그때는 보이지도 않았고 느끼지도 못했다며 꾸준히 참석하니 문화를 보는 안목이 높아진 것 같다고 말한다.
 무량수전 내부에 들어서니 소조 아미타여래좌상(국보 45호)을 서쪽에 모셨다. 황회장은 서방정토극락을 상징하는 아미타여래의 특성에 따라 서쪽에 모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부는 수덕사 대웅전이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 의상대사를 모신 조사당 등 각종 건물과 불화 불상 등을 둘러보았다.
 산채정식으로 점심을 먹고 우리는 사립교육기관으로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을 들렀다. 사적155호인 이 서원은 선생이 1542년 이곳 순흥 출신인 의 위패를 봉안하고 백운동서원을 창건하면서 비롯됐다. 사료전시관을 들러 유교문화, 특히 서원과 관련된 사항을 엿볼 수 있었던 것도 큰 소득이었다.
 황회장은 원불교의 사적과 문화도 교단발전과 더불어 사회적으로도 공인을 받아 일반사회인들도 찾아올 수 있도록 가꾸고 다듬는데 힘을 쏟아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황회장은 다음달에는 일본 나라, 교토지역을 답사하고 11월답사는 지리산 실상사. 송광사 일대를 1박2일로 둘러볼 계획이라며 회원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바랬다. 연락처 02-816-5131 서울청운회 박고은, 휴대폰 황의수 011-307-1920
문향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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