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在라는 회오리 속에서

5월의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뜰 안, 이제 또다시 가정의 달을 맞는다. 가정은 그 누가 어떻게 생각해봐도 가정일 수 밖엔 없다. 우리가 가정을 떠나서는 살 수 없기 때문에 가정은 소중하다. 그래서 평범한 말로 가정은 인생의 보금자리라고도 한다. 보금자리가 없이는 양육도 생장도 그리고 사람답게 사는 행복도 누릴 수 없다. 가정에는 나를 낳아주신 부모가 계시고 형제자매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 혈연공동체로서의 전통적인 뿌리가 숨쉬고 있다. 이런 것들은 물론 가정이 이루어지는 제일의적 요소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 씨족 부족등 군거집단 사회의 대가족, 祖與父母와 자손상속의 중가족, 그리고 부부중심의 핵가족 사회인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네 가족의 역사(혹은 가정사)는 실로 헤아릴 수 없는 변화무쌍의 소용돌이 속을 헤쳐 나왔다.
그러나 가정은 어디까지나 독립자존하는 제1차적인 가족공동체인 것이 사실이며 동시에 사람답게 사는 그 본질적인 바탕이 보장되고 계승 발전하는 권리가 지켜져야 하지만 한 가정 한 가정이 저마다 다 외로운 섬인 것처럼 고립되는 것도 아니고 또 고립되어서도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국가」라는 말을 쓰고 있다. 가정이라는 것은 다른것이 아니라 그대로가 곧 나라라는 것이다. 한 나라를 축소하여 놓은 것이 가정이요 한 나라는 한 가정 한 가정의 여러 가정을 모으고 펼쳐놓은 것이니 한 가정은 곧 작은 나라인 동시에 큰 나라의 근본이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대종사께서 평소 말씀해주신 원불교 「가정관」의 일단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우리네 가정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오늘날의 가정의 실체는 무엇인가를 한번 다시 돌이켜 보고 생각해봐야 할 게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다. 우리네 가정에서 지금 노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어린이들은 또한 어떻게 자라나고 있는가. 부모와 자녀간 부부간 형제간의 가족관계나 윤리적 가치기능은 정상적이고 원만하게 행해지고 있는가. 신앙 교육 생산의 체계와 친애 대화 이해 양보 솔선수범 합의 봉공 협력등 가권적 총의, 그 질서의 여건은 잘 이루어지고 있는가. 외형적 형태로 봐서는 그럴듯할 수밖엔 없다. 그런대로는 체면을 지키려 하고 있고 안으로 간직한 것도 희미하나마 간신히 자체유지를 시도하여 가는 형편이다. 현하 우리네 가정은 이 산업사회의 미증유의 격동과 격변속에서 종래에 간직하여 온 보편적 가치기준을 지탱하고 계승해야 할 어떠한 새로운 방법도 찾아보기 전에 또는 정작 새로운 시 시대의 가치관을 정립하지도 못한 채 저렇듯 낡은 서까래와 기둥이 불시에 무너져 내리듯이 그것은 이미 어쩔수도 없이 속수무책인채 명멸되어가는 종말적 현상을 바라다 보고 있을 따름이다. 이것은 어찌 가정사에만 한한 문제이겠는가. 기존의 종교와 기성의 윤리 도덕 문화등 일체의 낡은 질서 낡은 가치들은 지금 심한 갈등과 극도의 불신 분열을 심화시키면서 마치 그것이 성장발전의 원동력이나 되는 것같이 그것은 저 석양의 노을처럼이나 화끈히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우리네 가정은 해체돼버린 것이나 다름이 없는 「不在」의 벌판에나 놓여 있다. 이는 어느 특정종교가 목이 쉬도록 외쳐대는 종말의식에서가 아니라 과연 그런것들끼리 실은 그런것을 자체의 종말선언 그대로지 도대체 우리들이 무엇 때문에 이 부재에 절망하고 좌절할 까닭이사 없는 것이다. 우리의 궁극적인 입장을 말한다면 이 정향이 없는 부재라는 회오리 속에서 설레이고 조급하고 초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들은 충만한 기쁨과 밝은 미래를 전망하는 창조적인 시간속에서 여유작작한 것이 우리자신의 태도가 아니면 안 될 것이다. 없어지고 또 없어져야 할 것은 캄캄한 밤을 한낮이라고 우리고 절대의 신이 마침내 현인신으로 둔갑하는 따위 기득권자들의 비리와 독단이라는 사실이다. 무너지는 것은 이미 진리의 생명이 다해버린 낡은 집이다.
한 가정이 한 세계의 실상이라면 한 세계는 또한 한 가정의 거울이다. 이러한 원리와 원칙에서 새 가정의 맥은 이루어져야 한다. 정신개벽이 저마다의 가정으로 정착함으로써 비로소 새 가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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