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진리의 등불을 나의 등불 삼아세존」

5월 8일은 불타기원2528년 「석존성탄절」, 음력으로 4월 초파일이다. 일찍이 서가세존은 우리 새 회상의 연원불로서 숭앙봉대 해왔고 따라서 부처님 성탄절은 우리교단이 제정한 4축2재중 한 경절인 것은 이제 새삼스럽게 말할것도 없다.
이날 오전 10시와 밤 8시를 기하여 중앙총부를 비롯한 전국 각 교당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선언하고 이어 삼귀의례 예참 사홍서원등 전통의식에 의한 경축 대법회를 조촐히 봉행하는 한편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를 기리는 연등에 불을 밝혔다.(도시와 농촌의 각 교당에서)
부처님 서가세존은 인류의 스승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이 인류의 스승인 부처님의 실체를 대종사는 자신의 대각을 통하여 명확히 증거했다. 대종사께서는 대각을 이루신 후 모든 종교의 경전을 두루 열람하시다가 「금강경」을 보시고 비로소 부처님과의 만남을 이루셨다. 「부처님께서는 진실로 성인들중의 성인이시라」고 선언하신 것은 부처님을 뵈온 대종사의 지극한 감명이었고 대종사께서 스승의 지도없이 도를 얻었으나 발심한 동기에서부터 도를 얻기까지의 경험을 돌아본다면 과거 부처님의 구도 배경과 행적 그 말씀에 부합되는 바가 많다고 회고하시고 대종사의 대각 연원을 부처님에게 정하며 나아가 장차 회상을 열 때에도 불법으로 주체를 삼아 완전무결한 큰 회상을 이 세상에 건설하리라고 투철하신 소신과 밝으신 경륜을 피력하셨다. 「불법은 천하의 큰 도라 참된 성품의 원리를 밝히고 생사의 큰 일을 해결하며 인과의 이치를 드러내고 수행의 길을 갖추어서 능히 모든 교법에 뛰어난 바 있나니라」하신 신념은 곧 부처님과 대종사께서 체득하신 일맥으로 상통하는 대각의 생명 ― 그 기틀을 재조명하신 말씀이라 여겨진다.
이와같이 우리 원불교는 전통불교 또는 종파적 교단적 종교의 분위기나 어떤 맥락에 잇지 않고 오로지 종합적 전체적 불법의 주체, 새 종교로서의 혜명을 잇는 늘 새롭고 생동하는 대혁신의 생명 진리의 뜻을 지향하는 새 회상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오늘 더욱 부처님 오신 날을 계기로 우리들은 부처님과 같은 순수하고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이것은 물론 원불교인에게만 한정되는 어떠한 자세를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원불교인으로 부터서 먼저 바르고 깨닫고 바르게 행하자는 것 뿐이다. 개인도 가정도 사회도 나라도 인류도 세계도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 그가 궁극적으로 일으켜 세웠던 평등의 실체, 대열반 대평화의 이상이 무엇이며 지금 그러한 공동체의 보편적 가치기준이 일체생령의 저마다의 생명으로 중생의 마음속에 우리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는가 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역사적 공동체의 양심으로서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스스로에게 내려진 지중한 명령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스스로 하고, 「스스로 하자」는 것이 전체로서의 양심이 내리는 「명」이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뜻이 무엇인가, 부처님의 궁극적인 이상은 무엇인가를 다시한번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된다. 불법의 일대 개혁자로서 또는 조용한 종교의 혁명가로서 대종사의 위대하신 한 특징은 전통을 함부로 버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새로운 바탕 새로운 입장을 떳떳하게 지니면서도 당당히 전통을 수용하고 계발해서 만유의 근원이며 만법의 체성을 항상 도도하게 흐르는 「源遠流長」의 그 끊임없는 흐름으로 열어주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부처님을 바라보는 새로운 正見의 방법 또한 대종사에게서 체득하지 않으면 안된다. 부처님 오신 뜻은 오직 「법신」의 이상과 진리를 몸소 시현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라고 부처님은 아난에게 遺敎했다. 「법의 등불로 나의 등불 삼아라」(法燈明 自燈明)는 부촉이었다. 이 뜻이 바로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뜻으로 구현되는 진리가 아니겠는가. 법신 그것은 일체의 전체, 공동체의 생명이며 중생의 참 모습 그리고 민중의 제얼굴이다. 우리 모두가 제 모습 제 얼굴을 다시 찾고 재구성하는 역사의 새로운 인식이 아니고는 오늘날 이 시대의 인류와 종교는 새롭게 살아나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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