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만남

 우리의 첫 만남을 알려면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보아야 한다. 국민학교 4학년 때쯤 될까. 모내기가 한참 시작되던 초여름으로 기억된다.
 농번기인 만큼 가족들 모두 들판에 나가고 나는 동생과 함께 집을 보며 놀고 있는데 마룻장을 두드리며 주인을 찾는 소리가 들려 왔다. 손님 이러니 하고 문을 열었는데 순간 아찔할 만큼 놀라움에 반사적으로 문을 닫아걸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며 문구멍으로 그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빨리 동냥을 달라고 소리치는 너무도 무섭게 일그러진 얼굴, 그리고 몽당손, 알 수 없는 아픔 같은 것이 심하게 느껴왔었다. 그래서 광에 들어가 큰 됫박으로 쌀을 가득 담아 마루에 내밀고는 고맙다며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었다.
 그들의 이름은 문둥이로 통했다. 날이 가고 달이 가고 그들은 이미 내 곁에서 떠났는데 내 머리 속에는 한가지 의 문이 남아 떠날 줄을 몰랐다.
 왜 그처럼 일그러진 불구자가 되었을까 하는 …그러면서 또 다른 의문은 나는 왜 이 집에 태어나야했을까? 세상은 엄청나게 잘나고 잘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왜 나는 이러한 시골에서 언니 오빠도 없는 집에 내가 먼저 태어나 이렇게 외롭게 살아갈까 하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내 자신의 문제를 놓고 번민하기 시작했었다.
 교회에 가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한다고 하셨는데 차별만상의 세상을 바라보며 그 사랑이 잘 이해되지 않았었다.
 쉼 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 세월은 가고 나 또한 사회인이 되어 있던 어느 날, 우연히 나에게 다가온 어떤 만남이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내 인생의 방향을 정해준 필연적인 만남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분은 나에게 「네가 왜 그렇게 살아가는지 아느냐」고 물었고, 대답을 찾느라 망설이고 있는 나에게 인과보응의 진리를 던져주었다. 그때야 나는 차별만상의 세계와 내 자신에 대해 가졌던 모든 의문들이 눈 녹듯 풀려났고 누구의 허락을 얻을 것도 없이 곧장 출가의 길로 들어섰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만남, 그 첫 만남을 통한 의문의 씨앗이 나를 출가의 길로 인도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소록도를 알게 된 것은 출가하여 원불교학 공부를 하던 시절 매스컴을 통해서이다. 당시 퍼스트레이디였던 육영수 여사가 소록도를 찾아 그들의 손을 맞잡고 따뜻한 마음을 전하던 모습을 보고 내 어릴 때 기억을 찾아낼 수 있었다. 나의 삶의 한 부분은 불구자와 가난한 사람을 위해 무언가 베풀고 살아야 한다는 꿈을.
 그 해 여름 소록도로 향했다. 그들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마음 하나만을 가지고… 그런데 병동을 둘러 보여 그들 가까이 다가설 수 없는 이방인 같은 내자신을 확인하며 얼마나 부끄럽고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난 아직 시방일가 사생일신이 되어있지 못하구나. 한 포태에서 나온 한 형제임을 머리로만 알고 있지 진정한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는구나 생각하며 허전한 마음으로 돌아왔었다.
 그 후 10여년이 흐른 지난 초가을에 다시 찾아본 소록도.
 나이 탓일까. 진리에 대한 믿음과 수행이 조금은 깊어진 것일 가? 발길 닿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가슴 저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을 전할 수 있었고, 은혜 속에서 한 형제임을 알기에 소중한 인연으로 다가왔다.
 병동에서 만난 사람들, 비록 육신은 이지러졌어도 그들 내면을 가득 채우고있는 신앙심은 맑고 평화로웠다. 주어진 삶에 안분하며 생과 사를 편안히 받아들이는 모습, 그 마음은 누구를 헐고 속이고 할 수 없는 깨끗한 마음 그 자체이며 그러기에 서로 돕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삶이었다.
 그들은 우리 일행을 반기느라 병동벤치에 모여 앉아 환희에 찬 모습으로 하모니카 합주를 들려주었다. 듣는 사람마다 그 아름다운 멜로디를 노래가 아닌 영혼의 소리로 듣는다고 했다. 분명 그랬다. 혼신의 힘을 다해 무아지경에서 들려주는 그 노래는 투명한 영혼의 소리였다.
 이 세상 모든 일들이 원인이 있고 그에 따른 결과가 있다지만 사람은 어려운 역경 속에서 진리와 더 가까워질 수 있고 참 존재의 의미를 파악하며 좀 더 인간답게 성숙해 가는지 모른다.
 원불교가 왜 소록도에 자리했고, 교역자가 왜 그곳에 머물러야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이미 그들의 아픔과 기쁨과 하나되어 잇는 해 맑은 모습 속에서 한 가닥 진리의 소식을 체득한 한 성직자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다. 내가 줄 수 있는 작은 도움이지만 그들에게 위안과 사랑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고귀한 선물인가.
 하늘빛 맑은 날 나는 그곳에 더 머무르지 못하는 어떤 아쉬움을 남긴 채 서울로 향했다. 어느 날 다시 찾으리라는 막연한 생각을 접으며!
 그리고 순박하고 고독한 그들이 더 평화롭고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교무ㆍ종로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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