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교구 하당교당

"몸을 원불교에 맡겨라 의심하지 말고 두 마음 없이 믿어라"

지금이야말로 스스로 깨어나 정신을 차려야 할 때
오직 지켜야할 도리 지키며 살아가는 외길인생

새해 들어 전국에 내린 폭설이 녹지 않은 가운데 목포행 KTX에 올랐다. 경인년을 맞아 기획한 범띠생 교도회장인 광주전남교구 하당교당 김성수(85) 교도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하당교당에서 처음 만난 김 교도회장은 "황희정승의 심법으로 교도들을 두루두루 살피며 귀감이 된다"는 신봉은 교무의 칭찬처럼 마치 닫혀있는 마음을 활짝 열게 하는 따뜻함이 전해졌다.

그에게는 세상 어느 곳에 있든지 흐트러진 생각을 다소곳이 감싸주고 달래주며 바른 길로 인도해 주는 성자의 심법이 보였다.

"직장생활 62년 7개월이라는 세월을 가는 곳마다 친목과 화합을 위해 힘을 쏟았어요. 숭고한 교육이념과 투철한 사명감으로 설립정신 구현에 솔선수범하여 학원 발전을 위해 노력했고 직장내외에서 근면 성실하게 근무했다고 자부해요."

대부분 교육계의 행정업무를 담당한 그는 특히 조경사업에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지금도 아침마다 아내가 싸주는 도시락을 자랑스럽게 들고 목포 대불대학교 캠퍼스 환경조성을 위해 출근한다.

그는 사람이면 누구나 갈망하는 재물, 권세, 지위, 명예 등의 세속적인 가치를 외면하고 오직 청렴, 정직, 근면, 성실이란 지켜야할 도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외길인생을 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교법정신에 바탕하여 실천에 앞장서고 있으며, 항상 사은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은 봉공의 길을 정성스럽게 닦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는 원기88년 11월9일에는 인도실천상을 수상했다.

- 일상수행과 건강비결은 무엇인지

40년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4시에 기상한다. 라디오 '지금은 실버시대'를 경청하면서 '일원상서원문, 청정주, 영주, 염불' 등을 반복하면서 눈 코 입 귀 등 온 몸을 골고루 마사지하며 40분 동안 요가를 한다. 5시 정각이 되면 아내(박현성·82)와 함께 아침수양 정진시간으로 심고와 좌선, 독경, 교리공부를 한다. 다행히 아내가 살뜰하게 잘 따라준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일원상에 합장하고 서랍에서 부모님의 영정사진이 붙은 노트를 꺼내어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지금은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라는 문안인사를 올린다. 이런 인사도 30년 넘게 했다. 30년 묵은 노트에는 부모의 영정사진은 물론 선산의 위치, 가는 방법, 도착하면 몇 보를 걸어야 도착하는지까지 소상하게 적혀 있다.

이런 습관은 '나이 40이 되면 죽어가는 보따리를 쌓아야 한다'는 법문을 받들고부터 나름대로 실천해 오고 있는 것이다. 하루 일과는 당연히 일기를 통해 참회 반성하고 마무리한다.

종종 건강비결을 묻는 주변 사람들에게 "조석심고 잘 모시고 몸을 원불교에 맡겨라. 의심하지 말고 두 마음 없이 믿어라. 그것이 나의 건강비결이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 생활신조는 무엇인지

'사람은 쓸 때 잘 쓰고 만약 쓰고 나면 원망도 탓도 하지 말고 내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평소 소신이다. 또한 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남에게 물질적으로 많은 자선은 베풀지 못했지만 내가 손해 보는 한이 있더라도 남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는 자세로 일관해 왔다. 게다가 분에 넘치는 욕심도 가지려고 하지 않았다.

구타원 이공주 종사의 〈구도역정기〉와 구인선진님들의 일생을 접하면서 원불교의 위대한 사상을 발견했다. 이소성대, 무아봉공, 근검절약의 정신을 닮고자 노력했다. 특히 사무여한의 정신은 감동 그 자체였다. '말보다 행동'을 몸소 보여준 선진님들의 일생을 닮고자 따라한 것이 지금의 생활신조가 되었다. 모든 일에 있어서 공것을 바라지 않았고, 공사는 단독으로 처리하지 않았다. 정직을 가장 큰 자산으로 알고 떳떳하게 살다보니 현재 재력은 없지만 그 대신 건강을 얻었다고 자부한다.

- 신앙생활 중에서 잊지 못할 일은

대종경 교의품 17장에 "심고의 감응은 심고한 사람의 정성에 따라 무위자연한 가운데 상상하지 못할 위력을 얻게 된다"라는 법문이 있다. 이 법문처럼 생사고비에서 기적같은 큰 위력을 얻은 적이 있다.

원기75년과 76년에 일종의 암세포인 치루가 척추로 타고 올라가 위험한 수술을 두번 받았다. 그 즈음 원기76년 8월17일, 고조부모님 산소에 벌초할 준비를 하고 선잠이 들었다. 그때 대종사님께서 꿈에 나타나셨다. "너희 고조부모님 산소에서 약 50m 밑으로 내려가면 들국화꽃(구절초)이 피어 있을 것이다. 그 꽃을 뽑아서 오른쪽으로 좀 내려가면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을 것이다. 그 물에 꽃을 흔들어 씻어서 다려 마시고 치질 부위에 바르면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참 신기한 현몽이었다. 기도를 올리고 산에 가서 벌초를 하고 50미터를 내려가니 진짜로 꽃이 피어있었고, 20년 만의 가뭄이라는데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는 것이었다. 의심없이 그대로 했더니 1주일 만에 완치되어 지금까지 건강한 몸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 한번은 정산종사님께서 주신 기적 같은 위력이다. 목부위와 어깨부위가 원인 모르게 시려서 큰 고통을 당한 적이 있다. 솜, 털 등을 이용해 따뜻하게 해 보고 병원에도 가 보았으나 낫지 않았다.

원기81년 1월1일 새해 아침에 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너는 할 일이 많이 있으니 아직 세상을 떠나서는 안 된다. 건강해야지. 아카시아 잎 80%, 소나무 잎 20% 비율로 베개를 만들어 베고 자면 건강이 좋아질 것이다." 잠에서 깨어 즉시 준비하여 꿈에서 시킨대로 베개를 만들어 베었더니 감쪽같이 완치되었다.

- 남은 여생 어떤 준비를 하는가

하당교당은 원불교100년 비전구호로 '만천(滿天, 11,000, 하늘이 가득함)의 원불교가 원기100년에 전 세계에 빛나리라'고 정했다. 개인적으로는 하늘이 가득하다는 뜻으로 100년 성업회 통장을 아내와 함께 원기93년도에 각각 만들어 매월11,000원씩 성금을 적립하고 있다.

교법대로 살다보니 내세를 준비하는 마음도 조급하지 않고 오히려 차분하다. 다만 우리 부부는 특별한 재력이 없기 때문에 은혜심기운동본부에 안구기증서약을 나란히 했다. 또한 건강하게 살다가 병원신세 지지 않고 평상시처럼 잠을 자듯이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이 공부 이 사업을 할 뿐이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지금은 대의를 위해서 교단의 정책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다. 소태산대종사님뿐 아니라 목숨을 내놓는 신심으로 기도해 백지에 혈인을 찍고 맨몸으로 바다를 막았던 우리 선진님들의 정신을 생각할 뿐이다. 이와 더불어 우리 교도들 스스로 각성이 이어졌으면 한다.
지금이야말로 깨어나 정신을 차려야 할 때이다.

다행히 하당교당은 화합이 으뜸인 교당, 가족적인 교당, 오고 싶은 교당, 마음공부 분위기가 잘 되어 있는 교당,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법정을 두터이 하며 화기애애한 일원가족을 만들어 가고 있기에 원불교100년 교화대불공도 문제없다.

김성수 교도회장은 …

- 62년 7개월 교육계 봉직
- 원기71년 박현성 연원으로 원불교 입교
- 원기77년 12월28~(현재) 하당교당 교도회장
- 원기80년 1월 광주전남교구 교의회 초대 부의장 역임
- 원기80년 1월 목포지역 교화협의회 초대회장 역임
- 원기83년 4월28일 성산(聖山) 법호 수증
- 원기88년 11월 9일 인도실천상 수상
- 원기90년 10월 목포지역 교화협의회 의장 역임
- 원기90년 10월 광주전남교구 상임위원회 의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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