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26: 대종사님은 대처승이신가요?

대답: 세속말로 결혼을 하셨느냐고 묻는다면 결혼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전세계의 모든 종교의 교조가 처음에는 다 결혼을 하셨다는 측면에서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천주교의 신부들이 결혼을 안 하고 불교의 스님들도 비구승으로 결혼을 하지 않으시지만, 예수님도 결혼을 하셨고 석가여래께서도 결혼을 하셨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부처님의 아들로 남이 보든 말든 자신의 수행을 묵묵히 행했다고 해서 밀행제일(密行第一)로 불리셨던 라훌라존자가 바로 부처님의 아들이십니다.

기독교인들이 반발하고 있지만 2003년에 출판되어 전 세계적인 흥행을 거둔 추리소설 〈다빈치 코드〉에서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의 실제 아내이며 그 사이에 아기까지 두어 그 혈통이 이어진다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원불교 교조이신 소태산 대종사(少太山 大宗師 1891년 5월5일~1943년 6월1일)님은 지금부터 120년 전인 1891년 3월27일(음)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의 영촌 마을에서 아버지 박성삼과 어머니 유정천의 4남매 중 셋째로 농촌 평민의 아들로 탄생하셨습니다. 대종사님의 본명은 중빈(重彬),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처화(處化), 호는 소태산(少太山)이십니다. 15세에 부모의 명으로 결혼을 하고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고 장남은 원광대학교 초대 총장이었던 박길진님이십니다.

지금은 완전히 해결되었지만 세속을 떠들썩하게 하던 불교의 대처승과 비구승의 투쟁은 일제의 민족 분열과 관계가 있는 일입니다. 우리 전통 불교는 이두문자를 발명하신 설총의 아버지로 알려진 원효대사 같은 대처승이 있었지만 대부분 스님은 비구승이었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의례, 비구승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해방이 된 어느 날 불교 고찰에 방문하셨던 이승만 대통령은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절에 여인네가 있고 어린애들이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수행원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어찌된 일인가를 묻자 그 수행원이 이 절의 주지 스님이 대처승이며, 이것은 일제 잔재라는 설명을 부쳤다고 합니다. 일본의 모든 절의 스님은 대처승이며 절을 세습하는 습관이 있다는 사실을 말한 것입니다. 1954년 당시 한국불교의 승려 분포를 보면 대처승이 7,000명이었는데 반해 비구승은 200여 명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독립운동가이셨던 이승만 대통령은 일제 잔재라는 설명에 앞뒤를 가릴 생각도 없이 1954년 불현듯 정화유시를 내리게 되는데, 그 내용은 '처자를 거느린 사람은 승려가 아니므로 사찰에서 물러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3차례에 걸쳐 정화유시를 내리게 되고, 불교계는 '수행사찰 분배요구'에서 '종권인계'로 비약했던 것입니다. 1960년에 4·19혁명으로 이승만이 물러나자 대처승의 권토중래가 재연되었으나 박정희 대통령의 정화노력으로 비구 대처 통합종단인 조계종이 한국불교를 대표하게 되었습니다.

한양대·중곡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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