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화현장
촌음도 아껴쓰는 숨가쁜 일정속에
일본교화 사명감 불타는 교역자들

흔히 말하기를 한국과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한다. 이는 양국이 지리적으로는 현해탄을 사이에 둔 근린국이면서도 민족적으로는 서로가 친근감보다 소원감을 지니지 않을 수 없었던 지나간 역사적 사건들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바야흐로 전개될 태평양 시대에 있어서 양국은 상보적 관계에서 손을 잡고 새로운 역사를 함께 창조해 나가야 할 숙명 적 관계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교단에서는 일찍이 대종사 당시부터 박대완 교무를 「오오사카」(대판)에 파송하여 일본교화를 개척하게 했던 것이다. 그와같은 교화가 8.15광복을 전후하여 중단된채 지내오다가 최근 수년사이에 김정관 법사님의 피땀흘린 노력의 결실로서 관서지방에 원불교 재단법인니 설립되고 그것을 발판으로 지난 2월에 관동지방 교화를 위하여 박제권 법사님과 박삼순 교무님을 파송하였다.
나는 9월2일부터 8일가지 이론 板木縣 鹿沼市에 소재한 後生年金體?센타에서 한 ㆍ 일대학 출판협회 세미나에 참가하고 본회의가 끝난뒤 다른 여정을 그만두고 이곳에서 개척교화에 땀흘리는 관동교당을 찾았다.
동경 상야역에서 품천역까지 열차로 와서 다시 京浜특급열차로 횡빈시 金( )八景역에 하차하여 역부근에 위치한 상생맨션에 도착하였다. 6층 한쪽에 조그맣게 「원불교 관동교당」이라는 문패가 초라했지만 반갑게 보였다.
금( )팔경이란 野鳥夕照 內川暮雪 瀨戶秋月 小泉夜雨 稱辭晩鏡 平瀉落雁 乙ㆍ海岸帆 洲崎晴( )을 일컫는다고 한다. 인근에 鎌 倉 大佛과 장곡사등의 관광명소가 있다.
원불교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타국에서 황무지 개척교화에 두분께서 너무나 노심초사하고 계셨다. 두 분 교역자는 우리 교단에서 다 아는 바와같이 세속적으로는 학력으로나 가정환경으로나 경력으로나 비교적 유복한 모범적인 분들임을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며 교단적으로는 국내에 계신다면 안정된 교당에서 교화와 수행에 법락을 누리실 처지에도 불구하고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정신을 특히 물질문명이 앞서 개벽된 일본인들과 재일동포들에게 정신개벽으로 삶을 열고, 법신불 신앙으로 안심입명을 얻도록 노력하며 일본교화야말로 법신불께서 자신들에게 맡겨주신 소명으로 알고 열심히 땀흘리고 계신다.
어려서 불우한 환경으로 도일하여 지금은 경제적 기반을 잡은 일부 교도들을 방문하면 특별히 볼일이 없으면 찾지 말아달라는 뿌리침이 마음에 걸리기도 하지만, 이 땅에 일원대도를 뿌리내리게 하는 것을 여생의 보람으로 알고 더욱 열과 성을 다하고 계시는 것이다.
개인적인 권리와 명예와 사리는 일찍이 젊어서 출가시부터 불고하였지만 년로하면서 넘어서기 어려운 안일과 대우에 대한 상마저도 불고하시고 황무지 일본교화에 힘겨운 그러나 보람있는 나날을 실현해 가고 계심을 볼 때 후진으로서 한편 감사하기도 하고 한편 죄송스럽기도 하였다.
이곳 관동교당에서 지금 정기적으로 「원불교신보」를 구독하는 교도는 동경도의 오치정 교포, 재일거류민단본부 김광승 국제부장(교포 ㆍ 교당고문) 신호의 이간희 영사(주일 공무원), 茨城의 한정양 교포(교당 주무), 횡빈의 한국교육원 이임주 원장(공무원), 沖繩 김삼인화(한인의 부인)등 6명뿐 그밖에 한국인으로서 일본에 와서 회사원 사업가 은행원 연구교수등의 인연으로 틈틈이 연락을 주고받으며 교당을 내왕하는 경우가 교무님들에는 큰 힘이 되고 있다. 김영종 교무(筑波대 교환교수) 서원주 교무(경도불교대 대학원 재학중) 차광신 교무(경도불교대 재학중) 신철호씨, 정재환 교수, 김송정씨, 김정선 ㆍ 배성전 부부, 赤坂에서 아리랑 식당을 경영하는 안현덕 교도등이다.
또한 일본 관서지방 교화의 주역인 沖德滿 선생은 초청자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매사에 수시로 연락하고 상의하며 어려운 형편에서도 관동교당에 대한 정신적 후원을 神奈川 한국종합교육원 원장과 사무국장이며 교단 초창기 유공인이셨던 유산님의 자제분 유성렬시(일본교화 추진위원장)는 과고 재일공직 생활의 인연을 찾아 교당에 인연을 맺어주기도 하였다.
현재 위치한 교당 입주와 유지에 빼놓을 수 없는 분으로서는 박득천 사장(63세)를 들 수 있다.
박사장은 전남 나주 출신으로 어려서 직장을 찾아 도일하여 지금은 관광사업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사업을 겸행하고 있다. 한국인에 대한 편견이 적잖은 일본에서 자수성가하여 최근에는 고향에 도로포장 사업도 하고 노모님에게는 효심을 다하고 있다고 한다. 이분이 주택난에 비싼 땅값의 현재 관동교당의 숙소를 무료로 제공하여 교무님들의 숙식에 최대의 편의를 제공하는 보살심을 발휘하기도 하였으며 부인 정진성씨도 알뜰한 주부로서 원불교에 대한 흥미를 갖고 이해해보려고 노력중에 있다고 한다.
일본인으로서 후원인은 須永三樹夫 常盤千鶴子 猪坂長昭 佐藤涉 新地衿 谷口孝子 澁谷利雄 선생등이다.
교무님들은 이국타향의 어려운 생활에서도 이같은 국내외 유연동지들의 성원과 협조에 용기를 갖고 교민들이 보다 많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교당을 마련할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놓고 시간을 쪼개어 교민들의 모임에도 열심히 참석하면서, 지난 8.15광복절 행사에는 물론 9월 1일 동경대진재희생자 합동위령제에 참석하여 원불교 대표로 심고 성주 분향 독경(일원상 서원문)까지 하였으며 횡빈시 노인복지대학 일반강좌에도 등록하여 수강함으로써 현지인들과 교류를 넓히는 한편, 민단 부인회 현부인회 천기시부인회 횡빈부인회 등에도 참석하는 열의를 보이고 있으며 예회도 자주 보고 가정법회도 빈번히 보고 있다.
또한 8월 1일부터는 법인정신을 계혼하려는 1백일 기도를 거행하고 있으며, 틈틈이 교도입문서등을 일본어로 번역하여 일본인들에게 참고교정을 의뢰함으로써 교리이해의 기반을 삼는 한편, 일본어를 모르는 교포들에게는 일본어를 가르치고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일본인 대학생등에게는 한글을 가르치면서 원불교의 간접교화에 힘을 쓰면서 교당유지에도 도움을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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