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충고와 비판을
의외로 그 기회가 빨리 찾아왔다. 지난 9월 15일, 노환으로 자리하시던 도올 선생의 아버님이 열반에 드셨다는 소식을 듣고 문상을 간 것이다. 그 바쁜 와중에도 우리 일행을 자신의 서재로 안내하고 환담을 나누는 자상함을 보여 주었다. 형제 중에서 자기가 가장 유명한데 문상 온 손님은 제일 적다면서 그러나 질은 최고라고 우스개 소리를 하며 아마 조직이 없는 야인이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했다. 그러면서 원불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확 타올라 사그라지지 말고 향이 타서 향기가 스며들듯 이 세상에 그렇게 스며들어야 한다는 충고와 함께 존경하는 송천은 교무나 김재백 선생 같은 분을 뵈오면 그 인격에 자신이 왜소해지는 느낌이 들어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겸손해 한다.
확실히 학자라 그래서 그러지 맑은 기운이 느껴졌다. 상쾌했다. 명불허전은 이를 주고 한 말인 것 같다. 작년 언제인가 국립극장에서 그의 작품인 백두산 신곡이라는 뮤지컬을 보고 그 웅대한 스케일과 천재성에 감탄사를 연발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 여의도 교당 봉불식의 강연 3시간을 일추의 여지가 없이 들어선 1천5백여 청중을 압도하며 열강을 하는 모습에선 차라리 한 편의 대서사시를 보는 것 같은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깊은 자혜와 폭넓은 지식에서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원불교의 새로운 해석, 그리고 충고와 비판, 방향의 제시, 한 학자의 소박한 양심에서 터져 나온 외침은 일찍이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명강으로 우리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 주었다.
그런데 일부에선 이번 기 철학과 원불교의 해석이란 제목의 도올 선생 강연을 놓고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을 감추지 않는 것 같다. 원불교를 잘 알지 못하면서 교리를 지나치게 비판하고 욕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욕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입에 쓴 비판이었고, 몸에 좋은 충고였다. 원불교 학을 전공한 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만큼 일원상의 본질을 꿰뚫고 원불교 전반에 걸쳐 거침없이 해석을 내릴 수 있는 것은 한마디로 놀라움이었다. 설사 그 해석이 잘못되었다 할지라도 회상의 발전을 위하여 한 학자의 의견과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충고나 참고사항으로 받아들이면 될 일이지 그렇게 언짢아하거나 거부감을 나타낼 성질은 아닐 것이다.
강연이 끝난 며칠 후 열강에 대한 감사의 정을 표할 겸 또 다시 도올 선생의 봉원재를 찾았다. 86년 봄, 양심선언을 하고 학교를 뛰쳐나온 뒤에 30회 가까이 강연을 다녔는데, 이번 여의도교당 봉불식 기념강연 만큼 흡족한 강연은 별로 없었다고 술회하였다. 강연의 열기와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귀가 후 전 가족을 차에 태우고 한강 무너미 땅(고수부지)으로 달려가 한참 동안이나 상기된 마음을 진정시킬 정도였다고 하니 그가 이번 기념강연에 쏟은 준비와 정성, 정열을 가히 짐작할 만 한다.
여의도교당의 발전을 위하여 강연료까지 사양, 불전헌공을 고집하던 그 분의 순수성이 끝내 가슴을 세차게 부디처 왔다. 언젠가 원불교를 위해 큰 일을 해 보고 싶다는 그 분의 약속 곧 기와 원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판하였다. 봉원재 언덕길을 걸어 내려오는 발걸음이 마냥 가벼운 것은 오랜만에 진인을 만난 기쁨에서일까.
김덕권<교도여의도 교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