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에 입는 옷 '설빔'

설에 입는 옷을 '설빔' 또는 '세장(歲粧)'이라고 한다. 한 해를 맞이하는 설날 아침 일찍 일어나 묵은 것을 떨어버리고 새롭게 한해를 맞이한다는 의미에서 미리 마련해놓은 설빔을 입고, 조상에 차례를 지내고 친지, 이웃에게 새해 인사를 한다. 넉넉한 집에서는 설빔을 새로 지어 입었으나, 여유가 없는 집에서는 평소에 입던 옷을 깨끗이 다듬어 입었다. 설빔은 겨울에 입는 옷이므로 의복의 소재는 견직물(단(緞), 명주(明紬))이나 무명이 사용되었고, 솜을 두기도 하였다.

남자 어른들은 바지ㆍ저고리ㆍ조끼ㆍ마고자ㆍ두루마기 또는 다른 포(袍)를 입고 버선을 신고 방한모를 착용하였다. 요사이는 바지ㆍ저고리 위에 배자만을 착용하기도 하나, 외출을 하거나 예(禮)를 갖추어야 할 때는 두루마기 또는 다른 포를 입어야 한다. 남자 한복을 입는 순서는 바지 위에 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조끼, 마고자, 두루마기 또는 포 순이다. 바지를 입을 때는 큰사폭이 착용자의 오른쪽, 작은사폭이 왼쪽으로 가도록 하고 바지허리의 여유분을 잡아 왼쪽으로 겹쳐놓고 그 위에 허리끈을 돌려 맨다.

허리를 맨 후 허리 위 여유분을 접어 내려 허리끈을 덮으면 허리끈은 덥혀 보이지 않고 바지도 흘러내리지 않게 고정된다. 대님을 맬 때는 바지의 마루폭 선을 잡아 발목 안쪽 복사뼈에 대고 남은 여유분을 바깥쪽으로 돌려 발목을 감싼 뒤 대님을 감아 복사뼈 안쪽에서 매듭을 지어준다. 대님을 매고 나서 발목 위 여유분을 정리해주면 풍성한 여유분이 생기고 대님은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남자 한복을 바르게 입기 위해서는 겉에 입은 옷 아래로 속에 입은 옷의 소매나 도련이 보이지 않도록 한다. 예를 들면 조끼 밑으로 저고리가, 또는 마고자 소매 끝으로 저고리 소매가, 마고자 도련 밑으로 조끼나 저고리 도련이 비어져 나오지 않도록 한다. 목도리를 착용한 경우에는 실내에 들어서면 벗도록 한다.

여자 어른들은 속옷 위에 치마ㆍ저고리를 착용하였다. 치마ㆍ저고리에 조바위, 남바위, 아얌 등 방한 또는 장식용 쓰개를 착용할 수 있고, 방한용 옷으로는 마고자ㆍ배자ㆍ두루마기가 있어 집안에서도 입고 외출할 때도 입는다. 여성의 경우 실내에서 어르신께 절을 올릴 때는 두루마기를 입지 않고 치마ㆍ저고리만을 입는 것이 예의를 갖추는 것이다. 과거에는 예복으로 미혼녀의 경우 노랑회장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고, 기혼녀의 경우는 남치마에 옥색 회장저고리나 다홍치마에 연두 회장저고리를 주로 입었으나, 현재는 대부분 본인이 원하는 색을 선택하여 입는다. 한복에 어울리는 장신구로 댕기ㆍ비녀ㆍ노리개ㆍ가락지ㆍ토시 등이 있다. 근래에는 각종 장신구를 계절과 복식의 색에 어울리도록 착용하기도 하는데, 목걸이나 너무 화려한 귀걸이는 한복의 맵시를 살리는데 좋지 않으므로 착용하지 않는 것이 좋으며 머리는 단정하고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좋다.

여성이 한복을 곱게 입기 위해서는 우선 겉옷의 실루엣에 맞게 속옷을 바르게 갖추어야 한다. 속에 속바지를 입고, 그 위에 버선목까지 내려오는 긴 바지(속곳)를 입고, 그 위에 속치마를 겉치마보다 약간 짧게 입는다. 브래지어(brassiere)를 착용하면 가슴이 두드러지게 보여 한복의 실루엣과 어울리지 않으므로 착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버선은 수눅선이 엄지발가락과 둘째 발가락 사이에 놓이고 수눅선이 서로 마주보이도록 신는다. 치마는 지역에 따라 겉자락을 왼쪽으로 여며 입기도 하고 오른쪽으로 여며 입기도 하는데, 치맛자락을 뒤에서 교차하고, 안자락의 끈을 조끼허리와 겨드랑이 사이로 빼내어 치마 안자락이 밑으로 쳐지지 않도록 한다. 치마허리의 끈은 앞중심에 매지 않고 약간 옆으로 하여 맨다. 속적삼이나 속저고리는 연한색으로 하고, 겉에 입은 저고리 밖으로 보이지 않게 착용한다. 속저고리 위에 저고리를 입고, 저고리의 동정니를 맞추고, 고름을 맨다. 고름을 맬 때는 오른쪽의 짧은 고름이 왼쪽의 긴 고름의 위로 가도록 놓고, 짧은 고름으로 긴 고름을 감아 위로 올린다. 긴 고름으로 고를 만들어 착용자의 왼쪽으로 놓고, 위로 올렸던 짧은 고름으로 고를 감아 구겨지지 않게 반듯하게 맨다. 고름을 맨 다음 고대와 어깨솔기가 뒤로 넘어가지 않도록 앞으로 숙여 입고, 진동선의 구김을 정리하여 저고리 모양을 잡아준다. 길을 걸을 때에는 치맛자락 끝을 잡아 올리거나 허리띠를 매어 치마가 끌리지 않도록 한다.

어린 아이의 옷에는 부귀영화를 염원하고, 벽사의 의미를 담은 색과 무늬, 그리고 세상의 아름다운 고운 색 옷감을 사용하였다. 남자 어린이의 설빔으로 바지ㆍ저고리ㆍ조끼ㆍ마고자ㆍ두루마기에 전복 또는 사규삼을 입힐 수 있고, 머리에 굴레나 전복 또는 호건을 씌우고, 발에는 버선 또는 양말에 신을 신긴다. 바지ㆍ저고리의 색은 곱고 밝은 색으로 하였고, 옷의 모양은 어른 것과 거의 같으나 어린 아이는 색동마고자나 색동두루마기(까치두루마기 또는 오방장두루마기)로 하기도 한다. 색동두루마기는 오방색(五方色; 홍색, 청색, 황색, 백색, 흑색) 천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다섯 가지 색 중 가운데 색인 황색을 중심의 섶에 사용하고 길은 연두색으로 하고, 소매는 연두색이나 색동으로 하였다. 다른 부분의 색은 남녀에 따라 다른데 남아는 남색 끝동ㆍ남색 깃ㆍ남색 고름ㆍ자주색 무를 달고, 여아는 자주색 끝동ㆍ자주색 깃ㆍ자주색 고름ㆍ남색 무를 단다. 안감은 남녀 모두 대개 분홍색으로 한다. 바지는 풍차바지를 입히는데, 풍차바지는 조끼허리가 달려 흘러내리지 않고 바지 배래가 터지고 밑이 달려 용변을 볼 때 편리한 것이다.

여자 어린이의 설빔으로는 여자 어른과 같이 치마ㆍ저고리ㆍ배자ㆍ두루마기가 있다. 과거에는 노랑 저고리나 색동저고리에 분홍치마를 입혔고, 요사이 저고리 위에 당의를 입히기도 하나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머리에는 굴레, 조바위, 댕기 등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어린이용 댕기로 도투락댕기, 말뚝댕기, 뱃씨댕기 등이 있는데, 뒷머리가 길지 않으므로 끈을 달아 뒤통수 밑에 바짝 달아주었다. 부속품으로 주머니나 노리개 등을 갖추기도 한다. 발에는 버선 또는 양말에 신을 신긴다. 어린이용 버선으로 타래버선이 있는데 버선볼 등에 각종 꽃무늬를 수놓고 버선코에 홍색 상모를 단 것이다. 누빈 것, 솜을 둔 것, 겹으로 된 것 등이 있으며 버선 뒤축에 끈을 달아 벗겨지지 않도록 묶었다. 여아는 홍색 끈을 남아는 청색 끈을 달았다.

우리 조상들은 옷 한 벌을 짓기 위해 직접 누에를 기르고, 목화를 따고, 실을 잣고, 천을 짜고, 염색을 하고, 손으로 바느질을 하였다. 과거 조상들이 착용하셨던 설빔을 지금 그대로 착용할 수는 없지만, 설날을 맞이하여 단순한 옷 한 벌의 의미를 넘어서 설빔의 의미와 한복의 아름다움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남경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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