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동윤리 사상 실천도량
생활 속에서 성리가 나타나도록

 이리에서 국도로 57km, 시간으로 1시간 10분 걸리는 삼동원은 논산군 벌곡면 양산리 산 35-1번지에서 위치해 있다. 삼동원이 이곳으로 이전하기까지는 기나긴 역사가 숨어있다.
 우리나라 최대의 신흥종교 취락지대인 신도안에 소태산 대종사는 원기 21년 4월 이공주전음광 두 제자를 데리고 다녀간 일이 있었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곳에 수도도량을 마련하도록 당부했다.
 이 유시를 받들은 정산종법사는 원기 43년 4월 성정철조갑종 두 사람을 보내 신도안을 답사하게 하고 상황을 조사했다. 그리하여 이듬해 10월 이 새겨진 논산군 두마면 부남리, 바위 옆 초가 1동을 매입하기에 이르렀다.
 이로부터 정산종사는 신도안 개척에 강한 의지를 가졌으나 병환중이라 대산종법사에게 강력히 촉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대산종법사는 이 뜻을 받들어 신도안 개발에 정성을 기울였다.
 그러다가 7년 전인 원기 68년 6월 20일 정부의 620사업이 공포됨에 소태산 대종사의 성적이 어리어있는 것이요 역대 종법사들께서 정성을 기울인 곳이므로 자리를 지켰으면 하는 뜻이 모아져 교구장 연서 건의서를 제출하고 지킬 수 있는 방도를 알아보았으나 그 길이 어려웠다. 그래서 한편으로 남대전 오선교 회장이 중심이 되어 여러 곳을 알아보았고 한편으로 시설추진위원장인 조대진 회장이 중심이 되어 훈련 도량을 물색했다. 그러던 중 조회장이 광산 김씨 종친회 산인 벌곡면 양산리 4백 21번지를 매입하기에 이르렀다.
 양산마을과 한삼천 마을을 조금 걷다보면 삼동교가 눈에 뜨인다.
 원기 72년 12월에 준공한 삼동 교를 거쳐 삼동원까지는 도보거리로 25분 정도이다.
 정면에는 삼동원임을 알리는 비가 서 있는 우측에는 삼동원 가건물이었던 동산원(1백1평) 1동과 종법실(27평)1동이 있다.
 삼동원 비뒤편에는 해발 4백미터 높이의 천호산이 우뚝 서 있다.
 천호산은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 할 때 후백제 견훤의 아들인 신검과 천호산 앞 벌 전투에서 힘겹게 승리한 후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 하늘이 돌보아서 이겼다 하여 명명한 것이라고 전해온다.
 그 은덕을 기리기 위해 개태사라는 절을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이처럼 불연이 깊은 이 일대 39만평의 부지 위에 총 건평 1천1백12평의 훈련관과 정진관 조실 종각 등이 있다.
 훈련관 정문에 들어서면 환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묵언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새벽 좌선부터 점심까지 말없는 가운데 대적공하는 훈련이 되고 묵심 심통으로 성리를 요달 하기 위함이다.
 성리는 모든 법의 조종이 되고 모든 이치의 바탕이 된다는 성리품 9장의 내용과도 부합된다.
성리 훈련의 동기
 정부의 620 사업으로 인해 원기 69년 6월 30일 정원수 이식작업과 벌곡땅 측량까지 마치고 벌곡 가건물로 이사를 했다.
 가건물에서 생활하면서 일원대도의 법음을 전하기 이해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의지들을 모아 훈련에 임하게 되었다.
 원기 69년 8월 13일-15일 3박4일간의 원불교 벌곡 어린이 여름훈련을 시작으로 총 24회에 이르는 훈련은 성리훈련의 간접적 동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원기 72년 가을부터 도로 확장과 교량공사를 착수, 부지정리를 원기 73년에 마치고 원기 74년 3월에 삼동원 건물을 착공하여 동년 12월에 완공하였다.
 원기 76년 5월 9일 1시 삼동원 낙성봉불식 및 만일기도 대법회를 가졌다.
이때 삼동원에서는 봉불식 선물로 참석한 1만여 명의 출가재가교도들에게 2가지 화두를 주었다.
 사람이 깊이 잠들어 꿈도 없는 때에 그 아는 영지가 어느 곳에 있는가.라는 의두요목 10조와 무음양지일편 / 무음향지일곡 / 무근수일주(음양 없는 땅 한 조각, 메아리 없는 한 골짜기, 뿌리 없는 나무 한 그루)의 화두 선물을 준 것이 삼동원 성리 훈련의 직접적 기연이었다.
성리훈련의 특징
 만덕산 훈련이 일원상 진리 강의를 중심으로 사상 선을 체험하도록 한 것이라면 하섬훈련은 의두의 생활화와 의두연마를 통한 진리적 수행에 중점을 두었다.
 이와 상관적으로 삼동원 성리훈련은 성리를 어렵고 멀게만 생각해 왔던 종전의 인식을 바꾸어 누구나 성리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생활 속에서 성리가 살아 숨쉬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그 수칙을 보면 오직 성리에 바탕한 생각과 행동 훈련도중 퇴원할 수 없으며 편지 및 TV라디오를 보거나 듣지 않고 필기를 하지 않으며 느낌 발표 외에는 묵언을 하며 시계지갑을 완전히 거두어들이는 것으로 되어 있다.
 특히 프로그램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 특이하다.
 번뇌를 일으키는 요소를 모두 없애고 성리훈련에만 전념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진리를 신앙하는 마음이 살아나고 진리를 증득하고자 하는 마음이 샘솟게 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프로그램 진행은 성리단련의 기초, 성리 적인 식사법, 성리연마, 성리공부의 자세 대종경 성리품 강의를 중심으로 참회기도를 통한 마음 청소에 중점을 둔다.
 또한 회화훈련은 단으로 나누어 성리를 스스로 체득케하며 깔깔대소회도 성리자리를 부각시킬 수 있도록 했다.
 강사 선정은 젊은 교무로부터 법사, 종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성리를 나이가 많은 사람만 한다는 의식을 보통 의식으로 내려놓았다.
성리훈련의 효과
 원기 76년 12월 15일 제1회 성리훈련을 시작으로 6회까지 2백94명이 훈련과정을 이수했다.
 반복하여 훈련을 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고 외형상 프로그램의 협소함에도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훈련을 받은 이유라면 성리는 지식유무나 문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극한 정성을 들이면 통하는 이치를 체득했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성리 속에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얻어 가는 느낌은 각각 다르나 성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한다.
 이와 같이 성리공부는 나도 하면 되는구나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한 것이 훈련의 큰 수확이라 할 수 있다.
 어떤 경우는 자기 삶을 완전히 전환시킨 경우도 있고 신심이 더욱더 살아나기도 한다.
 제3회 성리훈련을 받은 부산동부교구 명륜교당 교무를 비롯한 초입교도 6명이 훈련을 받았는데 어엿한 주무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있다.
 이 자리에는 안다고 하는 것, 보았다고 하는 것, 읽었다고 하는 관념이 없다.
 제6회 성리훈련에 참가한 영주교당 이우철 교도는 이번 훈련은 내 마음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 후 이 한 생 죽은 폭 잡고 사중보은으로 영생의 빚을 갚는 심경으로 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도원교당 강남덕 교도는 나도 이런 공부를 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을 가졌고, 요인이라면 누구나 한번 거쳐가야 할 훈련이라 생각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정성을 들이 만큼 염원한 만큼 변화되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참다운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각오가 체험과 자각에서 우러남을 알 수 있다.
앞으로의 방향
 서로 서로가 한마음이 되어 공부에 희열심을 느끼게 하는 삼동원 성리훈련은 본래 취지에 부합되게 활용되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가족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하고 1차 훈련을 받은 사람에 한해서 2단계 훈련을 계획 중이다.
 1단계에서는 정진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중점을 두어 정말 무언가 해봐야 겠다는 각오로 공부, 훈련에 새로운 희열심을 느끼게 했지만 2단계는 의두연마 프로그램을 계발해 가동할 계획이다.
 교단에 성리의 바람을 일으키고 성리에 관심을 가지며, 의두연마의 궁극의 자리에 가기 위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대외적으로는 훈련관을 활용해 시설만 대여 받들 수 있고 위탁훈련을 병행하기도 한다.
원불교교도뿐 아니라 타종교인, 일반인들의 연수 및 훈련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실질적으로 지금가지 1백 40여건의 대외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삼동원은 가건물이었던 벌곡면 양산리 4백24번지 6천여평에 청소년 훈련장을 개설하여 청소년들의 정서 함양 및 청소년 건전 육성을 위한 장 단기 계획도세우고 있다.
 육관응 기자
교단내 기관 및 단체, 교당들의 현재 활동의 모습과 미래지향적인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교단의 맥박이란 제목으로 기획 연재합니다. 펀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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