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개조운동

 취 재 부
일속에 공부 길 있고
진리연마가 곧 즐거움
 원불교는 호남지방의 가난한 농민들이 일치의 생활을 통해서 창립 발전 시켜온 한 국의 새 종교이다. 선농일치 사상에 입각한 영육쌍전 이사병행의 산업활동으로 생활종교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일반적으로 종교는 처음 창립할 때에 영혼구제를 우선적으로 앞세운다. 그러나 원불교는 영혼구제와 일상생활을 다같이 중요하게 생각했고, 생활의 향상 발전을 가져오기 위해서 창립초기부터 산업활동에 역점을 두었다.
 소태산 대종사는 당시 한국사회에 있어서 종교의 역사적 사명은 산업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여 인간개조와 사회개혁에 앞장서는 것이라고 믿었다. 가난한 조국의 나태한 민중을 이끌어 국권을 되찾고 부강한 나라로 발전시키는 길은 곧 산업부흥에 있다고 파악한 것이다. 산업부흥을 통해서 을 계발하고 무지몽매한 농민들을 자력 생활하는 깨어있는 국민으로 개조할 수 있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소태산 대종사는 구인제자들과 더불어 저축조합운동을 통하여 근검저축절약절식공동출역 등으로 교단 창립의 터전을 닦았고 영산 방언공사로 간석지를 개간했다. 또한 익산총부 건설직후부터 산업 부라는 기관을 두어 산업활동에 주력하였다. 산업 부는 주로 농사짓는 일을 관장하였다. 당시 한국은 농업 이외에는 산업화가 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농사짓는 일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농사짓는 일에는 총부 대중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총동원되었다. 처음 전무출신을 서원하고 출가한 사람은 기본훈련과정으로 산업 부에서 분뇨 통을 짊어지게 하였다. 초창기 총부에서는 비록 분뇨 통을 지거나 나뭇짐을 지거나 마당을 쓸면서도 법열에 넘쳐 나무아미타불을 염송 했고, 물욕 충만 이 세상에 위기 따라서 구주이신 대종사님 탄생하시사라는 불법연구회 회가를 흥겹게 불렀다.
 이와 같이 산업 부는 원불교 창립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고 영육쌍전이사병행의 정신이 확산되어 갔으며, 교단의 발전과 함께 그 정신이 계승되어 갔다.
 원기 2년(1917)에 시작한 저축조합운동과 익산총부 건설당시 엿장수밭갈이 등의 선농일치 운동은 원기 13년(1928)에 서울에서 절약절식운동, 영광에서 공동작농운동, 총부에서 공동양잠, 각처에서 근로작업 등으로 전 교단에 확산되어갔다.
 이로부터 총부에서 복숭아 과수원을 시작했고, 이어서 만덕산에 감나무 과수원, 황등과 총부에 밤나무 밭, 영산에 복숭아밭 신흥에 이흥과원, 삼례에 수계농원, 이리에 보화당약방 등의 각종 산업기관을 설립 운영하게 되었다. 이처럼 초기의 교세에 비해 산업활동은 매우 활발하였던 것이다.
 총부에서 직영하는 산업 부에는 각종 묘목약초야채를 재배했고, 양계양돈양토 등의 축산활동도 전개했다. 이때 생산된 계란은 멀리 만주에까지 수출하였다.
 당시 산업 부의 생활표어가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밥을 먹지 말자.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불법의 진리를 연구함으로써 낙을 삼자는 것이었다.
 원기 20년(1935)을 전후하여 원불교의 산업활동은 전 교단을 산업도량으로 만들었고, 총부를 모범 새마을로 만들었다. 사회의 많은 주목과 기대를 받았고, 시찰이나 견학하러 오는 단체나 사람들도 많았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라고 까지 불리게 되었다. 들에서 일하다가 농구를 메고 들어오는 산업부원들을 보고 저 사람들이 원불교의 부처님이라고까지 말한 대종경 성리품 29장의 법문도 이 무렵에 나온 것이다.
 원불교는 불교혁신운동예법개혁운동과 함께 영육쌍전의 인간개조운동을 전개하였고, 최초법어사요병든 사회와 그 치료법 등의 교리를 통하여 사회개혁운동도 전개하였다. 소태산 대종사는 당시의 사회를 병든 사회라 진단하였던 것이다. 당시의 한국은 개화시대였고, 혁신과 개혁운동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각 종교단체와 사회단체에서 인간개조운동, 사회정화운동, 생활개선운동, 농촌계몽운동, 계급타파운동, 여권신장운동, 신문화운동 등을 전개했던 것이다.
 초창기의 이러한 인간개조운동사회개혁운동이 오늘의 한국사회 나아가 현대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어떻게 새롭게 대응하고 새로운 운동으로 승화하느냐에 따라 원불교의 개교정신이 세계정신으로 발전해 가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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